“사랑스러운 마음도 그대로 다 굳어져. 내 어제야 늘 마음 아파하는 마음 그대로.” – ‘굳은살’ 중에서

초여름 밤거리를 산책하며 미지근한 온기와 시원함이 공존하는 바람을 맞는다. 늘 찾아오지 않는, 일상 같은 비일상의 짧은 행복이 마음 깊숙이 그만의 풍경을 남긴다. 언뜻 모진 말을 뱉더라도 그 한 마디가 따뜻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일상의 언어를 말해도 그것이 왠지 스쳐 지나가기 어려운 시의 한 구절처럼 다가오는 이가 있다. 최유리는 여러 인터뷰에서 종종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고 말한다. 억지로 위로를 노래하지 않는다고, 좋은 목소리를 타고나지도 않았다고 얘기한다. 그래도 별 수 없이 사람들은 그의 가사와 목소리를 통해 위안받는다.

싱어송라이터 최유리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악기를 연주했지만, 막상 고3이 되어서야 처음 음대 입시를 준비했다고 한다. 출발은 늦은 편이었지만 두각은 일찍부터 나타났다. 대학교 2학년 시절,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 ‘푸념’으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것. 이후 볼빨간사춘기, 스웨덴세탁소, 김지수 등 싱어송라이터 분야 좋은 선배들이 즐비한 쇼파르뮤직에 소속되어 빠르고 착실하게 인지도를 쌓아갔다. 곡도 부지런히 썼다. 2020년 정식 음원 데뷔 후 만 3년 동안, 5곡 이상 신곡을 수록한 EP만 6장을 발표했다. 주요 라이브 콘텐츠에 두루 출연하고, 점차 큰 무대에 단독 공연을 올리며 팬들과 만났다.

“가난하게 사랑받고만 싶어 … 아픈 말 다 잊을 땐 날 찾아와” – ‘바람’ 중에서

어쿠스틱 팝, 포크 싱어송라이터 계열의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러하듯 최유리는 너와 나 혹은 사람들 사이 관계에서 피어나는 자신의 생각을 자주 노래한다. 다만 조금 특별한 점은 그의 노래가 쉬이 맹목적인 사랑을 노래하거나 직설적인 위로와 슬픔을 남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때로 조금 서툴고 이기적인 것처럼 보이는 솔직한 말들이 노래를 거쳐간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속, 함께 엉겨 붙는 외로움과 불안, 푸념과 욕심 등을 거르고 걸러 조금씩 내어놓는다. 주로 짧은 단어 하나로 완성된 노래 제목 속에 가사를 집약하는 이야기와 심상이 선명하게 깃들어 있다.

“길을 터 보일게. 나를 베어도 돼.” – ‘숲’ 중에서

숲을 걷다 보면 나무가 보인다. 나무를 바라보면 자연히 숲을 헤아리게 된다. 숲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지만, 때때로 나만을 위해 허락된 공간이라는 감상을 주기도 한다. 나무 한 그루의 개별 의미, 무수히 많은 나무의 의미 총체가 교차하고 공존하며 드넓은 바다와는 다른 기분과 감각을 선사한다. 최유리는 지난해 발표한 싱글 ‘숲’에서, 대개 이방(foreign)일 때가 많지만 결국 편안한 안식처와 같을 때가 많은 숲의 이미지를 뒤집어 여러 사람들 속 존재의 의미를 고민했다. 내가 다른 나무들처럼 키가 크지 않다는 초라한 마음과 그런 내가 숲이 되어 너를 안겠다는 포용의 태도가 함께 어우러진다. 눈물은 바다로 흘려 깊숙이 감추고 뭍으로 나와 커다란 숲이 되겠다는 담백하고 단단한 고백이 이어진다.

“날 보며 아 숲이 아닌 바다이던가 옆엔 높은 나무가 있길래” – 숲’ 중에서

최유리의 노래는 힘든 시간을 그만큼 ‘힘겹게’ 이겨내거나 ‘열심히’ 극복한다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다 괜찮을 거라는 흔한 위로조차 괜한 사족 같다. 지난 5월 11일 진행한 아흔여덟 번째 덕콘 무대에 등장한 최유리는, 모처럼 관객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 담담하면서도 씩씩하게 말하고, 소소하게 웃고, 차분하게 시간을 즐겼다. 여러 청자들이 자신의 노래를 통해 어떻게 위로를 받는 것 같느냐는 사회자의 물음에 그저 모르겠다며 미소 짓기도 했다. 다음은 콘서트 이후 최유리와의 일문일답.

 

Q 덕콘 당일 무대에서 말하셨듯 큰 스테이지가 아닌 관객들을 한 명, 한 명 살필 수 있는 소규모 무대에서 공연을 한 건 굉장히 오랜만입니다. 당일 느낀 무대의 분위기나 소감이 어땠을까요?

최유리 우선 참 좋았어요. 공연장도 밝고, 관객들의 표정이 다 보이는 무대에서 서로 마주 보며 무대를 하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뭉클했던 것 같아요. 심지어 온전히 저를 보겠다는 이유로 시간 내어 오신 분들하고만 소통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계셨는데 마주치면 저도 울 것 같아 눈을 계속 피했어요. 조금이나마 힘이 됐다면 다행일 텐데요!

 

Q 덕콘 당일 셋리스트를 구성하는 데 있어 염두에 둔 포인트가 있을까요?

최유리 저를 모르는 분들도 있는 무대에 서면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대중적인 곡들을 부르게 되는데, 이번엔 팬들이 평소에 위로를 많이 받던 곡과, 제가 잘 안 불렀던 곡들 위주로 구성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전달되었을 지 모르겠지만…

 

Q 팬들이 말하는 최유리님 음악의 ‘위로’라는 키워드에 관해, 의도한 건 아니기에 잘 모르겠다고 무대에서 수줍게 말씀 주시기도 했어요. 반대로 곡 작업과 무대, 활동을 통해 유리님이 위로를 받으셨던 경험이나 기억이 있다면 궁금합니다.

최유리 아무래도 노래하다 우는 분들을 마주하면 되게 큰 걱정이 생겨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내 노래 3분에 눈물이 날까’ 하면서요. 이어가 ‘내 음악의 힘은 이런 거구나.’라고 깨닫게 되면서 휘청이던 제 음악의 시선이 조금은 자리를 잡고 위로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평소 마음에 품거나 향후 바라는 ‘최유리’라는 아티스트의 음악적 방향이나 이상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최유리 음악적 방향은 아직 정하지 못한 것 같아요. 음, 그리고 사실 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굳이 하나만 꼽아서 이야기하자면, 어렵지 않고 어려워도 이해가 되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은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최유리의 음악을 듣고 사랑하는 팬과 청자 분들을 위해 간단한 인사 남겨주세요.

최유리 늘 고맙습니다. 차분하고, 위트 있으며 귀여운 사람들이 제 팬이라니 감격스러울 뿐이에요. 몇 번 이야기했던 건데요. 우리의 공생관계가 늘 힘 있고 아름답길 바라요. 건강하세요!

이날 부른 11곡의 순서 가운데 지난해 여름에 발표해 1년여 만에 그의 대표곡으로 자리잡은 ‘숲’이 하이라이트로 등장했다. 마치 숲의 공기를 가수와 관객이 함께 들이마시고 있는 듯 높은 밀도와 몰입감의 무대가 이어졌다. 최유리의 걱정이 무색하게 곳곳마다 눈가에 손을 가져가는 이들도 보였다. 올해 봄 ‘유난히 귀엽게 여겨 사랑함 혹은 남의 사랑을 받을 만한 특성’을 뜻한다는 <굄>이라는 타이틀의 더블 싱글을 발표한 최유리는, 누군가에게 커다란 나무가 될 솔직한 노래들로, 계속해서 많은 이들을 만나길, 함께 아름답길 바라고 있다.

 

최유리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