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필름(Fashion Film)은 패션 브랜드와 기업이 제품 광고를 목적으로 만드는 짧은 영상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요즘에는 제품 자체보다 브랜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제품보다 제품과 브랜드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방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화장품과 향수의 TV 광고에 사용되었는데, 이제는 패션 브랜드들이 기본적으로 선택하는 전략이 되었다. 고급 브랜드들은 수많은 셀러브리티들과 유명한 예술가들을 기용하여 자신들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혁신한다. 이제 패션 브랜드들은 패션과 함께 그들의 디자인 철학과 사회적 역할까지 강조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소비자들을 붙잡기 위해 문화 전반의 전문가들과 손을 잡았다.

패션 필름은 지금 무엇이 가장 인기 있고, 세련된 것인지를 짧은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종종 유명 브랜드가 제작한 패션 필름이 전통적인 패션지의 지면 화보들처럼 예술성과 감성을 강조하면서, 추상적이고 모호하다거나 어렵다는 평가를 듣기도 하지만, 이들은 빠르게 진화하는 중이다. 패션쇼의 백스테이지에서 보여주는 모델 메이크업 동영상부터 스타들의 인터뷰, 단편 영화에 이르는 다양한 패션 필름의 세계를 소개한다.

 

1. H&M <Come Together> (2016 christmas)

감독 웨스 앤더슨(Wes Anderson)을 향한 패션계의 사랑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그의 작품 속에서 파스텔톤과 옅은 모랫빛으로 나른하게 채색된 빈티지한 패션과 공간은 연기자만큼이나 존재감이 뚜렷하다. 안정적이고 회화적인 화면, 캘리그래피 같이 작은 디자인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달콤한 과자 세트처럼 완벽하게 작품을 내놓는 그는 이미 2013년 프라다(Prada)를 위해 두 편의 짧은 영상을 연출한 경험이 있다. H&M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위한 영상 제작에 웨스 앤더슨을 기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결과물은 비주얼적으로 세련되고 유머가 넘칠 뿐 아니라, 의류와 생활잡화까지 포괄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 H&M의 아이덴티티를 굳건히 했으며, 저가의 대중적 브랜드에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부여했다. 웨스 앤더슨 영화의 단골 배우 에이드리언 브로디(Adrien Brody)가 무뚝뚝하고도 다정한 기관사로 출연한다.

 

2. 겐조 <Music is My Mistress> (2017 S/S)

2016년 안무가 라이언 헤핑턴(Ryan Heffington, 가수 SIA의 <Chandlier> 뮤직비디오의 안무가로도 유명), 감독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가 참여한 향수 ‘World’의 영상으로 주목받았던 겐조(KENZO)가 2017년 봄, 여름을 위해 내놓은 영상은 짧고 시적인 단편 영화다. 영화를 만든 카릴 조셉(Kahlil Joseph)은 팝가수 비욘세(Beyonce)의 비주얼 앨범 <Lemonade>에서 메시지와 음악, 패션 등의 요소와 흑인 문화를 스타일리시하게 융합하여 찬사를 모은 장본인이다. 패션 브랜드 겐조를 위한 영상이지만 음악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 실험적 영화는, 화면에 흐르는 텍스트와 겐조를 입은 사람들의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면서 영화와 음악에 대한 날카롭고도 서정적인 한편의 코멘트로 완성되었다. 전설적인 아이콘 다이애나 로스의 딸이자 배우, 모델인 트레이시 엘리스 로스(Tracee Ellis Ross)와 배우 제시 윌리엄스(Jesse Williams), 가수 켈시 루(Kelsey Lu)와 이쉬(iSH) 등 동 세대 흑인 아이콘들이 출연하고, 지브럴 좁 맘베티(Djibril Diop Mambéty, 1945~1998, 세네갈 출신의 영화감독)와 샤베즈 팰러시스(Shabezz Palaces, 시애틀 기반의 듀오) 같이 세대를 아우르는 예술가들의 메시지가 리드미컬한 편집 속에 부드럽고도 단호하게 무게를 더한다.

 

3. 디올 옴므 <A Larry Clark Project: Paris session> (2017 Spring)

브랜드 수프림(Supreme)이 사진가이자 감독인 래리 클락(Larry Clark)의 영화를 기념하거나 그를 위한 컬렉션을 만들었을 때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래리 클락 영화 속 소년들에게 수프림은 거의 유니폼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유스컬쳐의 대부가 디올 옴므(Dior Homme)를 위한 영상을 선보였을 때, 사람들은 그 신선함과 기발함에 흥분하고 즐거워했다. 이 영상은 파리를 배경으로 4명의 모델과 5명의 스케이터가 어울려 다니는 모습을 보여준다. 화려하게 만들어진 보드화 모양의 슬립-온이나 운동화를 신고, 흩날리도록 길렀거나 박박 깎은 머리에 신경질적인 눈썹을 가진 소년들은 고급 소재로 만들어진 슈트와 페인트를 마구 튀긴 듯한 셔츠를 입고 등장한다. 하이패션과 유약하고 깨어질 듯한 소년들 사이, 잘 차려입은 소년들과 유서 깊은 파리 시내를 쌩쌩 달리는 스케이터들 사이에서 래리 클락 식의 긴장이 전개된다. 디올 옴므는 더 젊고 생동감 있는 새 컬렉션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4. 샤넬, 전통과 셀러브리티

럭셔리와 전통의 대명사인 샤넬(Chanel)은 의외로 패션 필름을 다각도로 폭넓게 활용한다. 쇼장의 맨 앞줄이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의 옆자리를 차지한 셀러브리티들은 기꺼이 샤넬과의 협업에 동참하고, 칼 라거펠트 자신이 브랜드를 위해 영상을 제작하기도 한다. 창립자인 코코 샤넬(Coco Chanel, 1883~1971)의 전설적인 일대기부터 패션, 향수, 메이크업 라인까지 무궁무진한 소재는 짧은 영상으로 제작되어 브랜드 이미지에 기여한다. 샤넬의 ‘뮤즈(Muse)’로 불리는 모델들은 다양한 국적과 폭넓은 연령대로 호소력을 갖는 스타들로 포진되어 가히 스타 마케팅이라 할 만하다. 가수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모델 카라 델레바인(Cara Delevingne)과 릴리 로즈 뎁(Lily Rose Depp), 캐롤린 드 메그레(Caroline de Maigret)와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Kristen Stewart) 등 스타들에 대한 선망은 샤넬에 대한 동경과 만나 양쪽 모두에게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부여한다.

그 중 소개하는 영상은 보다 가볍고 위트 있게 제작한 필름이다. 샤넬의 시계 ‘보이프렌드(BOY∙FRIEND)’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2012년부터 샤넬과 함께 한 프랑스 출신의 셀러브리티 캐롤린 드 메그레가 출연했다. 시크한 파리지엔느의 대명사인 그는 1960년대 프랑스의 누벨바그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흑백 영상 속에서 유머러스한 연기를 선보인다. 샤넬의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두 편의 시리즈 영상도 볼 수 있다.
 

 

5. 구찌 아이웨어 <A Hungarian Dream> (2017 S/S)

영상을 촬영한 페트라 콜린스(Petra Collins)는 캐나다 출신의 1992년생 페미니스트 아티스트다. 사진을 중심으로 설치와 기획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던 그가 구찌(Gucci)의 2016년 F/W 컬렉션 런웨이에 등장하면서 함께 하기 시작했다. <A Hungarian Dream>은 그가 처음으로 디렉션한 대규모 영상 작업이지만, 속의 이야기는 극히 소박하다. 자신의 할머니와 두 조카, 부다페스트에서의 어린 시절과 할머니가 아직도 자주 간다는 목욕탕에서 받은 영감을 회고적이고 따뜻한 환상적 질감으로 풀어냈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셸(Alessandro Michele)은 2016년 S/S 패션 필름에서도 보헤미안적이고 시간, 문화의 경계를 허무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유쾌하게 풀어내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페트라 콜린스는 알레산드로 미셸처럼 기존의 문화 콘텐츠를 뒤섞고 만들어내는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이는데, 구찌 아이웨어가 선보인 레트로 무드를 따뜻한 한편의 동화로 재창조해냈다.

 

6.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Original is Never Finished> (2017 S/S)

아디다스의 도전과 승리, 스포츠 정신 같은 오리지널리티는 아디다스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이후 힙합 문화와 스트리트 패션의 아이코닉한 브랜드로 정착하면서 오래전 디자인한 유명한 운동화와 로고는 계속해서 변주되었지만, 아무래도 ‘슈퍼스타’와 ‘NMD’ 운동화가 없는 아디다스는 아디다스가 아니다. 고루함과 진보 사이,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아디다스는 전통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캠페인을 몇 해째 벌이는 중이다. 2017년 S/S 시즌을 위해 선보인 아디다스의 패션 필름은 <Original is Never Finished>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다. 래퍼 스눕 독(Snoop Dogg)의 출연과 함께 그의 데뷔 앨범 커버가 위트 있게 재현되는가 하면, 스케이터 곤즈(Gonz), 농구 선수 카림 압둘-자바(Kareem Abdul-Jabbar), 뮤지션 데브 하인즈(Dev Heynes) 같은 다양한 분야의 아이콘들이 등장한다. 소녀들과 보티첼리의 비너스가 겹쳐지고, 길거리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도전과 싸움을 계속하는 가운데, 영상을 휘감는 노래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My Way>. 아디다스는 자신감으로 밀어붙인다. 스눕 독이 말 머리 모양의 탈을 벗을 때나, 사람들의 목소리가 겹쳐 단호한 합창으로 완결될 때면 기이하게 설득당한다. 영상은 1분 30초, 뉴욕의 유명 광고 에이전시인 ‘Johannes Leonardo’에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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