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도 여러 번 말했듯이 글래스고는 굉장히 좁은 판입니다. 한 다리만 건너면 사실상 거의 모든 뮤지션이 아는 사이인데, 그 대가족의 또 다른 뿌리 중 하나가 오늘의 주인공 ‘BMX 밴디츠(BMX Bandits, 이하 BMX)’입니다. 원래 BMX는 글래스고 인디 신의 터줏대감 더글라스 스튜어트(Duglas T. Stewart, 이름 낱자에 'o'가 없는 게 맞습니다)가 공연 한 번만 하고 끝내자는 생각에 반 장난처럼 만든 밴드였습니다. 몇몇 인터뷰에 따르면 이름도 공동 창업자인 수프 드래곤즈(Soup Dragons)의 션 딕슨과 함께 ‘가장 멍청해 보이는 것으로’ 골랐다고 합니다. 그때는 30년이나 이 이름으로 밴드를 할 줄 상상도 못 했겠죠. 

초창기의 BMX(위)와 최근의 BMX(아래). 위 사진 왼쪽에서 네 번째, 아래 사진 가운데가 더글라스 스튜어트다. 세월이란… (Via avrilcaddenblog)

더글라스는 한 인터뷰에서 “브라이언 윌슨은 서핑을 한 번도 타본 적 없지만, 당시 서핑이 젊은이들 사이에 대유행이어서 ‘비치 보이스’로 이름을 정했죠. 마찬가지로 우리 때는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BMX 자전거가 최고 인기였죠. (동명의 영화는) 본적도 없어요”라며 자신의 음악 영웅 중 하나인 브라이언 윌슨과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관계를 레퍼런스로 삼았다고도 밝힌 바 있습니다. 그야말로 무의미하고 장난 같은 이름이죠. 그러나 어쩌면 이 밴드는 역설적이게도 장난으로 무의미하게 끝나버리기엔 너무 많은 재능을 가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수프 드래곤즈의 션 딕슨이 멤버로 참여했고, 첫 풀랭스 앨범인 <C86>(1989)을 발표할 땐 틴에이지 팬클럽(Teenage Fanclub, 이하 틴팬)의 노먼 블레이크와 프랜시스 맥도널드가 가세했기 때문이죠. 더글라스 스튜어트의 작사 능력을 생각해보면, 실패하기 힘든 조합입니다.

다만 분위기는 지금과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멤버들 면면이 (나름) 유명해진 지금에야 무슨 슈퍼 밴드처럼 들리지만, 더글러스도 인터뷰에서 “길게 할 생각은 없었다”고 말하는 걸 보면, 당시에는 그냥 어려서부터 함께 음악 좋아하던 친구들이 큰 야망 없이 만든 밴드였습니다. 함께 했던 뮤지션들도 ‘더글라스가 가사를 썼어? 그럼 같이 노래를 만들어 볼까?’ 정도의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동네에서 공연하러 좀 다녀보니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급기야 더 파스텔스(the Pastels)의 스티븐 맥로비와 숍 어시스턴츠(Shop Assistants)의 데이비드 키건의 레이블 ‘53rd and 3rd’와 앨범 계약을 맺게 됩니다.

그 이후 BMX를 고정 멤버가 있는 밴드라는 틀로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좀 있습니다. 1989년 발표한 첫 풀랭스 앨범 <C86>의 크레딧을 보면 이 밴드의 경계가 얼마나 나이브한지를 잘 알 수 있는데, 대부분 노래가 틴팬의 노먼 블레이크와 프랜시스 맥도널드, 그리고 더글러스 스튜어트 공동 작곡입니다. 프랜시스와 노먼 블레이크가 틴팬으로 거의 비슷한 시기인 1990년에 <Catholic Education>을 발매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예 당시의 틴팬과 BMX를 묶어 하나의 큰 가족으로 이해하는 게 빠를 듯합니다. 게다가 노먼 블레이크가 1991년에 공식적으로는 BMX를 떠난 후에도 그 뒤에 나온 거의 모든 앨범에 참여했다는 걸 생각하면 ‘멤버’라는 단어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BMX를 필두로 스코틀랜드 인디 신이 형성되었다는 결론이 과장이 아님을 증명하는 지도. 전설이 된 밴드들이 모두 BMX를 중심으로 퍼졌다. BMX와 떨어질 수 없는 틴팬도 보인다 (Via avrilcaddenblog

BMX를 ‘가족’이라 칭하는 데는 또 다른 함의가 있습니다. 사실상 BMX에 참여했던 뮤지션들이 1980년대 이후 글래스고 기타 팝 신의 왕족이나 다름없다는 게 미디어의 시각입니다. 더글라스의 2012년 인터뷰를 보면 당시까지 26년간 26명의 멤버가 거쳐 갔다고 하니, 그 후에 보컬로 영입한 클로에 필립(Chloe Philip)까지 최소 27명이 BMX의 가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26명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바셀린스(The Vaselines)의 유진 켈리와 프랜시스 맥키, 벨 앤 세바스찬(Belle And Sebastian)의 기타리스트 스티비 잭슨, 수프 드래곤즈의 션 딕슨과 퓨처 파일럿 AKA(Future Pilot AKA), 펄피셔스(The Pearlfishers)의 데이비드 스콧, 틴팬의 드러머 프랜시스 맥도널드와 송라이터 노먼 블레이크 등입니다. 그래서 종종 “BMX 밴디츠가 없었다면 틴에이지 팬클럽도, 숍 어시스턴츠도 없다”는 식의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BMX Bandits ‘Serious Drugs’

 

BMX Bandits ‘I Wanna Fall in Love’ MV

이 글래스고 인디 판의 귀족 중에서도 BMX의 존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사람이 있습니다. 더글라스 스튜어트는 단독 작곡을 하기도 했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프랜시스 맥도널드, 노먼 블레이크와 공동 작곡을 꽤 했습니다. 예를 들어 BMX의 운명을 바꿔 놓은 공전의 히트곡 ‘Serious Drugs’는 더글라스와 노먼의 공동 작곡이고, 지금 들어도 아찔할 만큼 상큼한 ‘I Wanna Fall in Love’는 프랜시스와 같이 썼죠. 이 두 사람이 멤버로 있는 밴드가 바로 글래스고 파워 팝 사운드의 완성형인 ‘틴에이지 팬클럽’입니다.

이 위대한 밴드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람이 찬사를 늘어놨기에 굳이 개인적인 평가를 덧붙일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듯 BMX가 <C86>을 발표한 1989년에 프랜시스 맥도널드는 틴팬의 데뷔앨범 <Catholic Education>의 드럼 세션을 녹음하고 있었습니다. 녹음 도중에 탈퇴했다가 2000년도에 재가입하기는 하지만, 프랜시스는 가장 오랜 시간 틴팬의 리듬을 맡아온 주축이자 원년 멤버인 셈이죠. 뛰어난 작곡가인 프랜시스가 파워풀한 드러밍과는 딴판인 청아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틴팬에선 드러머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할 뿐입니다. 이 밴드의 지분 구조가 무척이나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틴에이지 팬클럽. 왼쪽부터 제라드 러브, 레이몬드 맥긴리, 노먼 블레이크, 프랜시스 맥도널드 (Via Allmusic)

노먼 블레이크(기타, 보컬), 레이먼드 맥긴리(기타, 보컬), 제라드 러브(베이스, 보컬)가 커리어를 이끌어 온 틴팬은 신기한 원칙이 많은 밴드입니다. 일단, 이 세 명의 대주주는 언젠가부터 지분율을 공평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이냐면, 한 앨범당 3명이 4곡씩 써서 12곡을 채우는 방식입니다. 가끔 누구 하나가 5곡을 쓰거나 드러머 프랜시스 맥도널드가 한 곡 쓰기도 하지만, 비교적 근작인 <Howdy!>(2000)와 <Shadows>(2010)에서는 12곡을 순서까지 지켜가며 딱 떨어지게 4곡씩 채우기도 했습니다.

Teenage Fanclub ‘Everything Flows’ Reading Festival(1991) Live 

또 하나의 원칙은 ‘자기가 쓴 노래는 자기가 부른다’는 책임감입니다. 노먼이 쓴 곡은 노먼이, 레이먼드가 쓴 곡은 레이먼드가 부릅니다. 세 명의 작곡 스타일과 보컬 스타일이 팬의 입장에서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점도 재미의 요소입니다. 특히 인트로가 극단적으로 달라서 굵직한 선율에 드라이브 걸린 기타 멜로디가 인트로에 등장하면 ‘노먼이구나’ 싶고, 트리키한 기타 리프나 잘 쓰지 않는 효과 음향이 들리면 ‘레이먼드구나’ 하고 알게 되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누구를 좋아하느냐에 따라 앨범에서 8곡만 듣게 된다든지, 4곡만 듣게 된다든지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죠.

Teenage Fanclub ‘Sparky's Dream’ Live(1995) 

하지만 틴팬의 사운드를 아우르는 가장 큰 특징은 아마도 수많은 평론가가 ‘쟁글(Jangle)’이라고 말하는 기타 소리일 듯합니다. 틴팬의 ‘쟁글’은 기술적인 특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타 소리에 찌그러지는 효과(오버 드라이브)를 걸게 되면 기타 줄 6개를 다 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틴팬은 마치 6줄을 다 치지 않으면 엄마한테 혼이라도 나는지 꼼꼼하게 다 칩니다. 6줄을 다 치다보니 간혹 ‘꽉 찬 사운드’라는 평을 받기도 하는데 사실 기타 음역대가 너무 꽉 차서 지글지글 거리는 소리가 흘러넘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니 정말 종소리처럼 징글쟁글 거리는 밸 앤 세바스찬 등과 함께 ‘쟁글 팝’이라고 묶기에는 아무래도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틴팬은 보통 비치 보이스, 버즈(The Byrds), 빅 스타(Big Star)로 이어지는 1960~70년대 파워 팝 스타일에 대한 1990년대식 해석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만, 파워 팝이라는 스타일 전체를 대변하기에 적당한 밴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파워 팝은 보통 듣는 순간 귀를 휘어 감는 단순한 보컬 멜로디와 강렬한 기타 리프, 조금 과하다 싶은 드럼 밸런스 따위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이런 조건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90년대 이후 파워 팝계의 신라면은 위저(Weezer)나 파운틴스 오브 웨인(Fountains of Wayne)이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쿨하게 분석하듯 쓰긴 했지만, 틴에이지 팬클럽은 커트 코베인의 말처럼 누군가에겐 “세계 최고의 밴드”입니다. 생각해 보니 커트 코베인은 “다른 밴드에 들어가야 한다면 BMX에 들어가겠다”라고 말하기도 했고, 바셀린스의 유진 켈리와 프랜시스 맥키를 “전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라 칭하기도 했었죠. 가끔 커트 코베인이 글래스고에서 태어났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 죽겠습니다.

 

Writer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서 연예, 음악, 영화, 섹스 영역을 담당하는 기자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생일이 같은 선택 받은 팬이자, 가장 좋아하는 밴드 틴에이지 팬클럽의 한국 수행을 맡았던 성공한 덕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