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제작자, 각본가, 배우 일을 병행하는 사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서로 다른 7개 부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사람. 셰익스피어의 여러 극을 직접 각색하고 연출하며 주연까지 맡아 영화화한 사람.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두 번 영화화한 사람.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에 두 번 출연하고 세 번째 출연 예정인 사람. 마블의 토르 시리즈의 첫 작품 연출을 맡은 사람. 디즈니의 신데렐라를 영화화한 사람. 

이는 모두 단 한 사람, 케네스 브래너를 설명하는 말들이다. 누군가는 그를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2002),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2011), <덩케르크>(2017), <테넷>(2020)에 등장한 배우로 기억할 거고, 누군가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2017), <나일 강의 죽음>(2020) 등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영화화 한 감독으로 기억할 거다. 그에 대한 수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그를 설명하려면 결국 셰익스피어가 필요하다. <헨리 5세>(1989)로 영화계에 데뷔한 케네스 브래너는 셰익스피어 전문 감독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여러 번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영화화 했다.

케네스 브래너는 영화 일을 시작한 이후로 연출, 제작, 각본, 연기 등 모든 분야에서 쉼 없이 달려왔다. 그는 자신이 가진 창의성을 연기부터 연출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해온 예술가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존경을 영화로 표현하며 작품 활동을 하다가 결국 고향 벨파스트로 돌아온, 케네스 브래너의 주요 연출작을 살펴보자.

 <테넷>(2020)에 출연하며 <덩케르크>(2017)에 이어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에 연달아 참여한 케네스 브래너, 이미지 출처 – imdb

 

<헨리 5세>

'헨리 5세'(케네스 브래너)는 왕자임에도 학문에 별 관심 없이 도둑 무리와 어울려 술을 마시며 놀기 바쁘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순간부터 완전히 변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주변의 우려를 기대로 바꾼다. 그는 프랑스 영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전쟁을 선포하고, 직접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로 향한다.

<헨리 5세>(1989)는 케네스 브래너의 감독 데뷔작으로, 그의 영화는 시작부터 셰익스피어와 함께였다. 자신이 직접 각본과 주연까지 맡았으며, 연출 데뷔작임에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후보로 동시에 이름을 올린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연기하고 연출했다고 하면 떠오르는 배우이자 감독 로렌스 올리비에도 <헨리 5세>(1944)로 감독 데뷔를 했는데, 케네스 브래너는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2011)에서 로렌스 올리비에 역할을 맡기도 했다.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주목받던 케네스 브래너가 연출 데뷔를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한 건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모든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영향력 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확실한 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영화화한 수많은 이들 중 케네스 브래너는 특히 도드라져 보이고, 이는 케네스 브래너가 <헨리 5세>로 데뷔할 때부터 꿈꾸던 순간이었을 거다. 셰익스피어의 이름 옆에 자신의 이름이 놓일 수 있다는 것에 케네스 브래너는 데뷔의 순간이나 베테랑이 된 지금이나 여전히 큰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까.

 

<헛소동>

전쟁에서 승리한 아라곤의 왕자 '존 페드로'(덴젤 워싱턴)는 그의 심복 '클라디오'(로버트 숀 레너드), '베네딕트'(케네스 브래너)와 함께 이탈리아 메시나에 방문한다. 메시나를 관할하는 '레나토'(리처드 브라이어스)는 존 페드로와 일행들을 성대하게 맞이한다. 레타노의 딸 '히로'(케이트 베킨세일)와 클라디오는 서로에게 첫눈에 반하고, 레나토의 조카 '베아트리스'(엠마 톰슨)와 베네딕트는 마주치기만 하면 싸우기 바쁘다. 클라디오와 히로는 단숨에 결혼을 준비하고, 존 페드로와 레나토는 합심해서 베네딕트와 베아트리스가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작전을 짠다. 한편 존 페드로의 배다른 형제 '돈 존'(키아누 리브스)은 클라디오와 히로의 결혼을 방해하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케네스 브래너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면 셰익스피어의 어두운 극들이 떠오르지만, 희극 <헛소동>도 케네스 브래너의 대표작 중 하나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 코미디 부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작품으로, 엠마 톰슨, 케이트 베킨세일, 덴젤 워싱턴, 마이클 키튼, 키아누 리브스 등 지금 봐도 화려한 캐스팅의 영화다. 특히 엠마 톰슨은 케네스 브래너의 <헨리 5세>로 영화 데뷔 이후 <환생>(1991), <헛소동>(1993)에 연달아 출연한다.

많은 소동극이 <헛소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헛소동>의 줄거리는 꽤나 익숙하다. 그만큼 후대에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많이 재해석했기 때문일 거고, <헛소동>은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공연되는 희극 중 하나다. 같은 극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 보이듯, 사랑 또한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사랑에 빠질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던 이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삶에서 꽤나 자주 일어난다. 평소에 별 관심 없던 이야기가 어느 날부터 흥미롭게 들리듯, 누군가가 갑작스럽게 마음에 들어오기도 한다. 사랑은 늘 마음속에 소동처럼 들어오곤 하기에, <헛소동>의 무대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마음 속인 것만 같다.

 

<햄릿>

덴마크 왕이 세상을 떠나고, 동생 '클로디어스'(데릭 제이코비)는 왕위를 계승하고 자신의 형수인 왕비 '거트루드'(줄리 크리스티)와 재혼한다. '햄릿'(케네스 브래너)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왕위를 계승하고 재혼한 둘을 원망하는 가운데, 초소에서 죽은 아버지의 유령을 목격했다는 말을 듣는다. 직접 초소에 나간 햄릿은 아버지의 유령을 마주하고, 자신이 동생 클로디어스로부터 독살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이후 햄릿은 복수를 위해서 미친 사람인 척 행동하며 기회를 노린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면 단연 <햄릿>이다. <햄릿>은 여러 번 영화화가 되었지만 그중 원작을 가장 잘 살렸다고 평가받는 작품은 케네스 브래너의 <햄릿>(1996)이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색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 영화로, 러닝타임만 4시간에 달한다. 축약된 버전의 <햄릿>이 익숙한 이들에게, 케네스 브래너의 <햄릿>은 원작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러시아 작가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는 현실적으로 많은 것을 고민하지만 실제로 행동하기를 주저하는 인물을 ‘햄릿형’, 현실보다 이상을 추구하며 무모해 보일 정도로 앞서 나가 행동하는 인물을 ‘돈키호테형’으로 정의한 바 있다. 케네스 브래너는 오랫동안 연출, 각본, 연기 작업을 해왔지만 늘 호의적인 평가를 받기보다는 혹평과 호평을 오갈 때가 많았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벗어나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까지 받곤 했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평가를 받든 계속해서 도전을 이어 나갔다. 때로는 햄릿처럼 고뇌하고, 때로는 돈키호테처럼 전진하며 계속해서 영화 작업을 해왔다. 그 결과, 그의 필모그래피는 무결하게 완벽하진 않지만, 그 누구의 작품 리스트보다도 다양한 캐릭터와 여러 장르로 가득하다. 케네스 브래너가 만약 원작을 충실히 구현하기보다 자신의 삶을 반영했다면 <햄릿>은 지금과는 다른 엔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벨파스트>

1969년 북아일랜드의 도시 벨파스트에 사는 소년 '버디'(주드 힐)는 평소처럼 뛰어놀다가, 종교 문제로 마을을 공격하는 이들을 목격한다. 버디의 아빠(제이미 도넌)는 영국을 오가며 일을 하고 있고, 엄마(커트리나 밸프)는 평생 살아온 벨파스트가 위험해지고 있는 상황이 걱정이다. 버디는 같은 반에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고, 이를 할아버지(키어런 하인즈)와 할머니(주디 덴치)에게 털어놓는다. 버디의 아빠는 점점 혼란해지는 벨파스트를 떠나 영국으로 이주할 생각을 하고, 버디와 엄마는 벨파스트를 떠나기 싫지만 고민에 빠진다.

케네스 브래너는 <벨파스트>(2021)에 출연하지 않았지만 가장 자신을 많이 드러낸 작품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벨파스트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인 영화로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벨파스트>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7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고, 각본상을 받았다. 케네스 브래너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헨리 5세>로 남우주연상과 감독상, <백조의 노래>(1992)로 단편영화상, <햄릿>으로 각색상,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로 남우조연상, <벨파스트>로 작품상과 각본상까지 서로 다른 7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벨파스트>가 그려낸 벨파스트는 마을 구성원 전부가 가족처럼 보인다. 벨파스트의 구성원들에게, 서로의 이름과 소식을 알고 지내는 게 당연한 이곳을 떠나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케네스 브래너는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그려내는 감독이지만, 오히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벨파스트>에 더 마음이 간다. 수많은 이들이 지금도 각색 중인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가장 잘 표현한다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세상에 펼쳐내는 건 대체불가의 작업이니까. 케네스 브래너의 다음 영화가 셰익스피어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원작으로 할 수도 있지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를 바라게 된다. 벨파스트에서 자란 소년이 어떻게 지금의 케네스 브래너가 되어 왕성하게 활동 중인지, 좀 더 깊게 그 사연을 듣고 싶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