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개봉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리코리쉬 피자>(2021)의 주연을 맡은 배우는 알라나 하임으로, 데뷔와 함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알라나 하임을 스크린으로 만나는 건 낯선 일이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하임’은 이미 익숙한 이름이다. 밴드 ‘하임’은 세 자매로 이뤄진 미국의 밴드로, 알라나 하임은 밴드에서 기타를 맡으며 무대 위에서 많은 이들을 열광시켜 온 뮤지션이다. 

뮤지션이 영화계에 발을 디디는 건 전 세계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배우의 자격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예술은 크게 보면 모두 통한다. 뮤지션으로 먼저 이름을 알리고, 영화배우로서도 자신의 재능을 보여준 이들이 존재한다. 앞에서 언급한 알라나 하임을 비롯해서, 데이빗 보위, 톰 웨이츠, 레이디 가가 등 뮤지션으로 사랑받던 이들이 영화배우에 도전하는 건 팬들에게 선물처럼 느껴진다. 스크린을 무대 삼아 연기하는, 영화배우가 된 뮤지션들의 출연작을 살펴보자.

 

데이빗 보위,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

‘뉴튼’(데이빗 보위)은 물 부족을 겪는 자신의 행성을 떠나 물이 풍부한 지구에 온 외계인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올리버 팬스워드’(벅 헨리)에게 자신이 가진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해달라고 하고, 금세 큰 기업으로 확장하며 큰돈을 번다. 이후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가기 위한 기술 개발을 위해 ‘브라이스’(립 톤) 박사를 섭외한다. 그러나 사업이 커지면서 뉴튼의 회사를 넘보는 이들이 생기고, 뉴튼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한다.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1976)는 월터 테비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워커바웃>(1971), <지금 보면 안돼>(1973) 등을 연출한 니콜라스 뢰그의 영화다. 데이빗 보위의 장편영화 데뷔작인 작품으로,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을 통해 새턴 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받는다. 데이빗 보위의 <Low>와 <Station to Station> 앨범 커버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의 스틸 컷일 만큼, 데이빗 보위에게도 의미가 큰 작품이다. 이후 데이빗 보위는 많은 감독들의 작품에 출연하는데, 토니 스콧의 <악마의 키스>(1983), 오시마 나기사의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 줄리앙 슈나벨의 <바스키아>(1996) 등에서 주연을 맡았고, 데이빗 린치의 <트윈 픽스>(1992), 마틴 스콜세지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 크리스토퍼 놀란의 <프레스티지>(2006)에서는 짧은 출연임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데이빗 보위는 글램록 장르로 한정 지어서 설명하기엔 무수히 많은 장르적 실험을 해온 뮤지션이고, 음악을 넘어 대중문화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다. 특히나 자신의 페르소나를 통해 음악을 표현했던 만큼, 그가 배우로 활동하는 건 음악을 통해 보여주었던 페르소나의 연장선으로 느껴진다. 그의 가장 유명한 페르소나라면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인데, 이때 발표한 음반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과 그의 무대를 생각하면 데이빗 보위가 외계인 역할로 캐스팅된 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그의 음악과 영화가 우리 곁에 있기에, 그가 또 다른 페르소나로 다시 한번 우리 앞에 나타날 것만 같다.

 

톰 웨이츠, <다운 바이 로>

라디오 DJ로 일하는 ‘잭’(Zack, 톰 웨이츠)과 건달 ‘잭’(Jack, 존 루리)은 각각 주변 이의 계략에 빠져서 누명을 쓰고 같은 날 감옥에 들어가고, 같은 방에서 수감 생활을 한다. 이탈리아에서 온 ‘밥’(로베르토 베니니)까지 같은 방에 들어오며 셋은 가까워지고, 밥은 탈옥할 방법을 발견한다. 셋은 함께 탈옥을 하고, 자신들을 쫓는 이들을 뿌리치고 도망치기 위해 달린다.

지금의 관객들에게 톰 웨이츠는 뮤지션보다 배우로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톰 웨이츠는 <대부>(1972)로 유명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마음의 저편>(1982)에 음악으로 참여하고, <아웃사이더>(1983)에 출연하며 영화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다운 바이 로>(1986)는 톰 웨이츠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연출을 맡은 짐 자무시 감독과는 <지상의 밤>(1991)에서 음악을 맡고, <커피와 담배>(2003), <데드 돈 다이>(2019)에 출연하는 등 꾸준히 교류 중이다. 이외에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드라큐라>(1992), 로버트 알트만의 <숏컷>(1993), 마틴 맥도나의 <세븐 싸이코패스>(2012), 데이빗 로워리의 <미스터 스마일>(2018)에 출연하며 배우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톰 웨이츠의 음악을 듣던 이들에게 영화 속 그의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을 거고, 그를 배우로 알고 있던 이들에게도 그의 음악은 썩 어색하지 않게 들릴 거다. 그만큼 그의 음악과 연기는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그가 구현하는 사운드와 목소리는 거친 동시에 실험적이고, 대부분의 감독은 뮤지션으로서의 그를 사랑하는 만큼 그런 특징을 캐릭터에도 반영한다. <다운 바이 로>는 톰 웨이츠의 목소리로 시작해서, 그의 곡으로 끝나는 작품이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이들이 탈옥하는 이야기지만 액션도 전혀 없이 오히려 여백을 통해 더 많은 걸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이는 톰 웨이츠의 음악에서도 느껴지는 매력인데, 화려한 편곡 없이도 그의 목소리는 큰 매력을 만들어낸다. <다운 바이 로>는 큰 파동도 없이 물처럼 지나가는 영화인데, 그 부드러운 물결이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처음엔 기괴하게 들렸지만 어느새 귀에 맴도는 톰 웨이츠의 음악처럼.

 

레이디 가가, <스타 이즈 본>

‘잭슨 메인’(브래들리 쿠퍼)은 톱스타 뮤지션이지만 알코올 중독으로 늘 술을 찾는다. 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술을 마실 곳을 찾다가 우연히 바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노래를 하는 ‘앨리’(레이디 가가)를 발견한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노래를 하는 앨리는 잭슨과의 만남이 믿기지 않는 가운데, 잭슨은 앨리에게 자신의 공연에 오지 않겠냐고 권한다. 앨리는 잭슨과의 만남을 계기로 점점 뮤지션의 꿈에 가까워진다.

<스타 이즈 본>(2018)은 브래드릴 쿠퍼의 연출 데뷔작으로, 윌리엄 A. 웰먼의 1937년도 연출작 <스타 이즈 본>(1937)의 세 번째 리메이크 작품이다. 레이디 가가는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즌 5로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배우로서 존재감을 드러냈고, 결국 자넷 게이노, 주디 갈랜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 이어 <스타 이즈 본>의 주인공이 되었다. <스타 이즈 본>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받고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최근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하우스 오브 구찌>(2021)에서도 주연을 맡아 개성 강한 연기를 보여줬다.

아티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만의 색깔일 거다. 그런 면에서 레이디 가가는 음악과 영화 양쪽 모두에서 자신의 개성을 가장 짙게 드러낸 아티스트다. 무대 위에서나 스크린에서나 레이디 가가는 어떤 시도를 하든 자신의 색을 잃지 않는다. 음악에서 도전을 이어왔듯이, 레이디 가가의 필모그래피에는 도전적인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레이디 가가는 떠올렸을 때 늘 지금보다도 다음이 더 기대되는 아티스트다.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내기에, 레이디 가가의 다음은 어쩌면 음악과 영화가 아닌 또 다른 분야일지도 모른다. 어떤 분야에서 무엇을 표현하든, 레이디 가가만의 색이 뚜렷할 거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알라나 하임, <리코리쉬 피자>

1973년의 캘리포니아 산페르난도 밸리, 학교에서 학생들의 사진 촬영을 돕는 아르바이트 중인 ‘알라나’(알라나 하임)에게 ‘개리’(쿠퍼 호프만)가 데이트 신청을 한다. 25살 알라나는 자신보다 어린 15살 소년 개리의 당돌함에 놀라지만 결국 함께 데이트를 한다. 이후 알라나는 아역 배우인 개리의 투어에 매니저로 함께 하고, 함께 물침대 사업을 하기에 이른다. 알라나는 배우 오디션을 보고, 개리는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는 등 둘은 서로의 꿈을 향해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협력하며 함께 한다.

<리코리쉬 피자>(2021)는 두 주연 배우 알라나 하임과 쿠퍼 호프만의 데뷔작이다. 알라나 하임은 미국의 밴드 ‘하임’의 멤버로, 현재 가장 주목받는 밴드 중 하나다. 하임은 세 자매가 만든 밴드로, 알라나 하임은 막내이자 밴드에서 기타를 맡고 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이 이들의 라이브 영상을 찍기도 했는데, 그의 초등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이 하임 멤버들의 어머니였다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실제로 <리코리쉬 피자>에 등장하는 알라나의 가족들은 하임의 멤버를 비롯해서 실제 알라나 하임의 가족들이다. 알라나 하임과 함께 주연을 맡은 쿠퍼 호프만은 폴 토마스 감독의 페르소나였던 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아들이다. 영화의 배경인 캘리포니아 산페르난도 밸리는 실제로 폴 토마스 앤더슨이 자란 곳이고, 등장하는 사건부터 출연한 배우까지 당시 시대상과 폴 토마스 앤더슨의 사적 기억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배역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폴 토마스 앤더슨은 실제로 알라나 하임을 염두하고 <리코리쉬 피자>의 각본을 썼다. <리코리쉬 피자>가 보여준 시대는 모든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알라나와 개리는 자신들의 도전이 성공할지에 집착하기보다는 일단 시도하기로 결심한다. 알라나 하임과 쿠퍼 호프만이 <리코리쉬 피자>로 배우 데뷔를 한 것처럼, 새로운 시도에 거침없는 캐릭터를 맡기에는 이들이 적격으로 보인다. 어쩌면 폴 토마스 앤더슨은 실제로도 삶에서 분기점이 될 선택이 될, 낯선 얼굴의 배우를 캐스팅하길 원했던 게 아닐까. <리코리쉬 피자>가 데뷔작이었던 알라나 하임은 이제 배우로서 많은 작품에 출연하게 될 거다. 뮤지션에 이어 배우로 활동 범위를 넓힌 이들에게 음악과 영화, 두 소식 모두 들을 수 있다는 건 팬으로서 기쁜 일이다. 무엇을 하든 그들이 예술을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므로, 어떤 분야에서 그들의 모습을 마주해도 응원하게 될 것이다. 예술과 도전은 늘 함께 갈 수밖에 없는 단어이므로.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