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믿기 어렵다. 일단 보이지 않을뿐더러, 이론도 없고 증거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강렬한 꿈에 사로잡히거나 열렬히 소망한 것이 실현되는 경험을 통해 무의식, 그리고 영적인 세계의 존재를 부정하기 어려워질 때가 있다. 오래전부터 음악가들은 이런 개인적이고 무의식적인 여정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벌이곤 했다. 그들은 음악의 재료를 명상이나 성스러운 소리, 아프리카의 음악에서 빌려왔다. 우리는 이런 음악에 ‘스피리츄얼스’(Spirituals)라는 이름표를 붙인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영적이고 정신적인 영역을 다룬다. 스피리츄얼스가 현재 여러 음악가에 의해 새로운 소리로 재발명되고 있다.

 

스피리츄얼 재즈의 선구자, 존 콜트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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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은 민권 운동으로 온 땅이 혼돈으로 뒤덮였다. 우세했던 백인의 기독교 대신 아프리카, 이슬람, 동양의 신비 사상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에도 본래의 질서를 대신할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 코드 변화, 정해진 템포, 멜로디 등 기존의 문법에 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은 신을 찬양하려는 시도를 1965년 작 <A Love Supreme>에서 드러냈고, 1966년 작품 <Ascension>에선 명상음악을 끌고 와 재즈의 경계를 허물었다. 스피리츄얼 재즈는 이렇게 기존의 것을 무너뜨리고 혼돈을 가져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시도로부터 탄생했다.

존 콜트레인 ‘Acknowledgement’
존 콜트레인 <Ascension>

 

무의식 세계를 걷는 듯한 음악 체험, L'Rain <Fati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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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인(L’Rain)은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작곡가이자 여러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이다. 그는 음악에 오롯한 본인 자신을 담는다. <Fatigue>는 14곡이 수록된 앨범이지만, 러닝타임은 30분으로 짧은 편이다. 하지만 30분 동안 우리는 마치 엘’레인의 무의식 세계를 걸어 다니며 그의 감정과 인생을 체험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엘’레인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기존의 음악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다. 11초부터 1분짜리 길게는 4분짜리 곡이 뒤섞여 있고, 한 멜로디를 변주하는 피아노 연주와 가사 없이 음성으로만 채워진 곡들도 있다. 이런 그의 음악은 프리 재즈, 엠비언트, 노이즈 음악, 디스코, 익스페리멘탈 팝, 슈게이즈, 크라우트 록, 알앤비, 아방가르드 록 등 수십 개의 장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엘’레인 ‘Blame Me’
엘’레인 KEXP 라이브 영상

 

연기로 자욱한 Emma-Jean Thackray의 영적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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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프로듀서이자 밴드 리더인 엠마진 택크레이(Emma-Jean Thackray)는 스피리츄얼 재즈를 섞은 음악을 한다. 파라오 샌더스나 선 라가 하던 아프리칸 스피리츄얼 음악 대신, 영국의 백인 여성인 자신만의 영적인 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데뷔 앨범인 <Yellow> 이전엔 <UM YANG 음양>이라는 한글로 된 EP를 발표한 적이 있다. 만물이 음과 양의 변화로 이루어진다는 사상을 ‘음’과 ‘양’이라는 곡에 각기 다른 에너지로 표현했다. 엠마진 택크레이는 ‘여성’이나 ‘트럼페터’라는 한계에 갇히는 걸 거부하는 음악가다. 그의 음악은 브라스 밴드를 활용해 힘이 넘치며, 연기가 자욱한 사이키델릭 같다는 인상을 준다.

엠마진 택크레이 ‘Say Something’ 뮤직비디오
엠마진 택크레이 ‘Spectre’ 라이브 영상

 

아프리칸 스피리츄얼 재즈의 계보를 잇는 샤바카 앤 더 앤세스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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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국 재즈 신의 대부인 샤바카 허칭스는 무려 세 개의 밴드를 이끌고 있다. 그중 샤바카 앤 더 앤세스터스(Shabaka And The Ancestors)는 시와 신화를 음악에 도입해 스피리츄얼 재즈와 아프로퓨처리즘을 추구하는 밴드의 정체성을 확보한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인 밴드 멤버들과 음악과 사상의 교류를 통해 음악을 만들기에 음악에선 밴드의 색깔을 진하게 맛볼 수 있다. 이들의 음악은 주술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본능을 자극하는 아프리카 리듬과 색소폰, 피아노 등의 악기 연주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파로아 샌더스나 선 라의 계보를 잇는 스피리츄얼 재즈를 하지만 밴드의 음악엔 자신들만의 서사와 새로운 감정이 담겨있다는 점이 이들을 주목하게 한다.

샤바카 앤 더 앤세스터스 ‘Go My Heart, Go To Heaven’
샤바카 앤 더 앤세스터스 ‘The Coming Of The Strange Ones’ 비주얼 영상

 

Writer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신샘이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