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음악의 단위는 몇만 ‘장’에서 몇만 ‘뷰’가 되었다. 다종다양한 뮤직비디오는 음악을 듣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었고 썸네일이 좋아서 듣는 음악도 부지기수, 뮤직비디오 감독이 어떤 곡에 참여했는지도 척하면 척이다. 보기 좋은 음악들을 하나의 주제로 엮어 만든 뮤직비디오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한다.

연말 연초의 바람인지, 이동하기 어려운 환경 탓인지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요즘이다. 산으로 바다로의 여행도 좋고, 현실과 동떨어진 채 미디어의 세계에 몰입해도 좋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도 좋을 것 같다. 각자가 그려낸 허상의 세계로 각기 다른 고민을 나누는 4편의 뮤직비디오를 소개한다. 꿈속으로도 떠나고 별나라로도 떠나며, 현실과 다른 공간을 빌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만나보자.

 

백아 ‘우주선’

‘흰 박꽃처럼 소박하고 깨끗하게 세상에 널리 퍼져라’라는 본명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포크 싱어송라이터 ‘백아’. 데뷔 3년 만에 선보인 백아의 첫 정규앨범 <우주선>은 관계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8개 트랙을 담고 있다. 소개할 뮤직비디오는 앨범과 동명의 타이틀곡 ‘우주선’으로 스텔라장과 히피는 집시였다 등 여러 뮤지션의 뮤직비디오와 다큐멘터리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negutive film 윤동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우주선’은 보냈던 사랑이 보낸 마음만큼 돌아오지 않을 때 느꼈던 외로움에서 시작되었다. ‘동요가 없는 무중력의 우주와 이 별이 아닌 새로운 별에서는 마음이 온전할 수 있지 않을까?’ 출발한 고민은 우주선이라는 매개와 만나 ‘나를 우주로 보내줘.’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뮤직비디오는 곡의 스토리를 우주비행사가 되는 훈련 과정으로 풀어냈다. 서정적인 감성과 따뜻한 영상미로 같은 고민을 갖고 우주로 떠나고 싶은 이들의 마음을 어른다. 우주에 갈 수 있는 가장 비현실적이면서도 유일한 방법을 지켜보다 보면, 문득 원하는 결말의 경계가 모호해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생생한 마음들이 더 이상 다치지 않도록 우주선에 태워 보내며 바란다. “모두 안전하게 도착하시길.”

백아 인스타그램

 

김뜻돌 ‘꿈에서 걸려온 전화’

‘돌 하나에도 뜻이 있다’ 세상 모든 마음을 노래로 만드는 싱어송라이터 김뜻돌이다. 그의 첫 정규앨범 <꿈에서 걸려온 전화>는 꿈속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들은 이야기들에 영감을 얻어 만든 앨범이다. 타이틀곡 ‘꿈에서 걸려온 전화’는 현실에 갇혀 힘들어하는 나에게 꿈속의 또 다른 자아가 위로를 건네는 이야기다. 비록 꿈에서 깨고 나면 다시 고통이 시작될지라도 꿈에서만큼은 ‘비가 오는 날에도 항상’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2015년도부터 유튜브를 통해 꾸준히 영상을 기획했던 김뜻돌의 콘티를 바탕으로, Justin Lovett 감독이 뮤직비디오의 연출과 촬영으로 함께 했다. 뮤직비디오엔 흰 토끼가 등장하는데, 흰 토끼를 따라 환상적인 모험을 떠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오르며 현실과 대비되는 세계로 떠나는 김뜻돌의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뮤직비디오는 현실의 공간으론 늦은 밤 사무실을, 현실과 대비되는 공간으론 물속을 그려냈다.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물에 잠겨 있는 상태와 비슷하여 선택했다는 콘셉트는 꿈과 전화라는 몽환적인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담아내며 김뜻돌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미처 하지 못할 말들을 꿈속 전화를 통해선 할 수 있는 것처럼 속박된 마음에 자유를 주고 사랑을 느껴보자. 흰 토끼를 따라 환상의 모험을 떠나고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자.

김뜻돌 인스타그램

 

이랑 ‘환란의 세대’

이랑의 세 번째 정규앨범 <늑대가 나타났다>의 발매에 앞서, 2016년도 정규 2집 발매 이후 오랜 시간 기다렸을 팬들을 위해 먼저 선보인 싱글 ‘환란의 세대’. 2015년도 ‘신곡의 방’ 공연 마지막 날 만들어진 곡은, 2015년 당시에도 그리고 현재까지도 유효한 이랑의 고민을 담고 있다. “누군가 외로움을 이유로 곁을 떠나고 고통받을 바엔 한날한시에 모두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것은 세상을 향한 러브송”이라고 말하며 위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비혼, 퀴어, 페미니즘을 노래하는 ‘아는언니들’ 합창단이 곡의 마지막 1분을 절규와 비명으로 채우고 있는데 이랑은 이 괴성으로 어떤 죽음들을 기억하고자 했다.

‘환란의 세대’ 뮤직비디오에는 이랑의 고민에 공감하는 이들의 댓글이 줄을 이으며, 소중한 이를 잃었던 경험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을 여전히 써내고 있다. 뮤직비디오는 일본 사진작가 ‘Lieko Shiga’의 8mm film 영상으로 제작되었다. 눈을 가린 채 서로에게 의지하며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두 사람의 모습만이 담겨 있는데, 불안함은 잠시 영상이 끝나기까지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서로의 불안을 나누고 위로하며, 어디로 떠나든 우리가 함께 있다면 괜찮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랑 인스타그램

 

윤지영 ‘My luv (prod. Benny Sings)’

EP <Blue bird> 발매 후 1년여 만에 선보인 윤지영의 여덟 번째 싱글 <My Luv>. 네덜란드의 뮤지션 Beeny Sings가 편곡으로 참여하며 솔직한 노랫말과 멜로디, 포근하고 도회적인 사랑노래를 선보였다. 가사를 살펴보면 화자의 입장에선 사랑이지만 상대의 입장에선 강요일 수 있는 사랑의 어긋남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사운드의 대비를 더불어 뮤직비디오와 앨범커버를 통해서도 돋보인다.

앨범 비쥬얼라이징은 3D 작가 DAMO가, 뮤직비디오는 다다이즘 클럽의 정다운(DQM)감독이 함께해 사랑스러우면서도 고어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뮤직비디오는 오락실의 게임기가 등장하며 시작된다. 현실의 공간을 오락실로, 그리고 그 오락실의 게임기 속 세상을 가상의 공간으로 담아냈다. 게임 속 플레이어가 된 컨셉과 더불어, 동료 뮤지션 정크야드를 비롯한 아홉 명의 댄서들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가는 모습이 흥미롭다. 뮤직비디오와 더불어 이번 싱글을 통한 윤지영의 모든 작업물들을 감상하며, 문득 새로운 협업과 색다른 시도를 주저하지 않을 수 있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의 작업물을 지켜보며, 당장 어딘가로 떠나진 않아도 변화에 한층 대범해지는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윤지영 인스타그램

 

Writer

Editor | 포크라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