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섹스를 좋아한다. 섹스를 보는 것도, 섹스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섹스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섹스를 잘 모른다. 그 세계가 무궁무진해서이기도 하고, 잘 알기엔 쑥스럽기도 하고, 섹스에 관한 교육과 담론이 우리 사회에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섹스를 좋아하지만 어렵다고 느낀다면, ‘섹스, 이거 맞아?’ 싶다면 뒤에 소개할 다섯 작품을 보길 추천한다. 각 작품과 연결 지을 수 있는 주제 의식을 제목에 덧붙였으니 참고 바란다. 가자, 섹스의 세계로!

 

1. 자기 이해 (Self-Love), <오티스 비밀 상담소>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넷플릭스를 구독하면서 이 작품을 보지 않은 드물 거다. <오징어 게임> 공개 직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 1위로 꼽힌 작품이 <오티스 비밀 상담소 시즌3>였다고 하니까. 원제는 ‘Sex Education’, 말 그대로 미성숙한 10대들의 ‘천방지축 우당탕탕 섹스 바로 알기’로, 어른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아니라 애들이 직접 몸을 부딪쳐 가며 배우는 성 이야기다. 성 상담사를 엄마로 둔 10대 아들 ‘오티스’가 학교에서 성 상담소를 운영하며 친구들의 섹스 고민을 들어준다. 성기의 크기와 모양, 오르가즘, 성적 취향 등 문제는 다양하나, 오티스가 주는 솔루션은 사실 다 비슷하다.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 네 잘못 아니야. 너 스스로에게 그리고 파트너에게 솔직해져 봐.’류의 대답이다. 해결이 아닌 해소의 방식인 것이다. 그럼 친구들은 나름대로 자기 길을 찾아간다. 자기의 섹스를 해낸다. 모든 답은 이미 자기 안에 있다는 말, 진부한가? 하지만 섹스에 대해서 만큼은 그 말이 전부인지도 모른다. <오티스 비밀 상담소>는 결국 섹스에 대해 이런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섹스를 통해 자신에게 더 솔직해지라고. 그리고 스스로를 더 사랑하라고.

 

2. 여성의 몸과 오르가즘(Orgasm), <마스터스 오브 섹스>

이미지 출처 – IMDB

제목만 보고 ‘섹스 마스터하기 101’ 같은 내용인 줄 알았다. 보면 누구나 섹스 전문가가 되는. 그러나 이 작품은 최초로 섹스를 학문적으로 연구한 실존 인물, ‘윌리엄 마스터스’ 성 의학 박사와 그의 연구 파트너 ‘버지니아 존슨’ 박사의 이야기를 다룬 시즌 네 편짜리 미국 드라마다. 그들은 섹스가 인간 신체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과학적으로 실험하고 기록하는데,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사실들이 아주 흥미롭다. 섹스 중 신체는 흥분(Excitement) – 고조(Plato) – 절정(Orgasm) – 회복(Resolution)의 단계를 거친다는 점, 여성은 오르가즘을 한 번 느낀 후에도 계속해서 연속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 등 연구를 진행했던 1940년대 당시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는 성에 대한 통념, 특히 여성의 성에 대한 오해를 깨는 내용들도 많다. 피실험자들이 심박수와 뇌파를 측정하는 줄을 주렁주렁 단 채로 섹스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특수 제작된 투명 딜도로 질 내부의 변화를 관찰하는 등 기이하지만 눈을 떼기 어려운 장면들도 관전 포인트다. 마스터스 박사와 존슨 박사 사이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긴장감 넘치니 지루할 틈이 없다. “섹스를 연구하는 건 모든 생명의 시작이다” 시즌1 마스터스 박사의 대사다. 이 생명의 시작을 연구한 기념비적 사건을 담은 작품은 현재 웨이브에서 볼 수 있다.

 

3. 계획 (Plan), <익스플레인, 섹스를 해설하다>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중 ‘익스플레인 시리즈’를 좋아한다. 흥미로운 주제들을 압축적으로 더 흥미롭게 전하기 때문이다. <익스플레인, 섹스를 해설하다> 역시 섹스가 현대 인간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압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한 회당 20분 남짓에 총 5회로 구성됐고, 각각 회차는’성적 판타지’, ‘끌림’, ‘피임’. ‘임신’. ‘출산’을 다룬다. 전문가들의 견해와 연구 결과와 실제 사람들의 일화를 적절히 버무려 요즘의 섹스, 요즘의 임신과 출산을 설명한다. 섹스는 내밀하고 사적인 영역이지만 이렇게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요즘 세상의 섹스’ 속 ‘나의 섹스’를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섹스는 결국 현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상대에게 왜 끌리는지, 왜 이런 성적 판타지를 가지게 된 건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피임하고 있는지 등을 알아야 미래를 더 착실히 계획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어떤 섹스를 하느냐는 앞으로 누구를 만나, 어떤 기쁨을 느끼고, 어떤 형태의 가족을 꾸릴 것인지의 문제와 직결된다. 아무나 만나, 아무렇게나 섹스를 하는 라이프스타일도 응원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섹스는 계획과 함께할 때 더 섹시해진다고 말하고 싶게 한다.

 

4. 신뢰 (Trust), <본딩>(Bonding)

데이팅 어플에 접속하면 꽤 많은 이들의 성적 취향을 분석한 검사지를 구경할 수 있다. MBTI로 빠르게 서로의 성향을 파악하는 요즘 사람들답게 성적 취향도 일단 공개하고 시작한다. 참 편한 세상이다. ‘BDSM’은 구속(Bondage), 훈육(Discipline), 가학(Sadism), 피학(Masochism)을 뜻한다. ‘본딩’은 BDSM 취향을 가진 남성들의 돔(지배자) 역할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 ‘도미나트릭스 티프’와 그의 스탠드 업 코미디언 친구 ‘피트’의 이야기다. 가죽, 채찍, 로프, 재갈 등이 난무하는 SM플레이를 떠올렸다면 그게 맞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본딩’은 플레이의 핵심이 공감과 신뢰 있는 관계라는 걸 보여준다. 티프는 SM의 세계가 익숙지 않은 피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돔의 일은 상대의 손발을 묶는 게 전부가 아니야. 가장 중요한 건 매듭이지. 로프를 이용해서 피부를 강하게 압박하면 안정감이 배가 되면서 동시에 위험한 느낌도 들지. 남성성은 선천적으로 제약되기 마련이야. 기대는 물론이고 지배, 권력, 무감정도 마찬가지지. 결국 내 고객들은 기형적인 사회의 감옥을 탈출하려는 거야. 성적 가부장제가 종식되면 모든 젠더가 동등해지겠지.” 티프의 멘토 미스트리스 미라는 티프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진정한 돔이 되려면 남에게 복종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부터 알아야 해. 그 기분에 공감할 줄 알아야지.” 이 둘의 대사는 플레이가 아닌 ‘일반적’ 섹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섹스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므로. 그것이 둘이든 셋이든 말이다. 공감과 신뢰가 없는 섹스는 홀로 누군가를 상대하는 스포츠가 된다. 각자의 승리만을 향해 달리니 부상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으면서 서로의 만족을 골대로 달리는 섹스를 위해 파트너와 ‘본딩’ 정주행 해보길 추천한다.

 

5. 동의 (Consent), <볼드 타입>(The Bold Type) 시즌3, 3화

여자와 남자는 멋진 데이트를 했다. 뉴욕의 밤거리는 추웠고 남자는 지하철역까지 걷기 너무 춥다고 투덜댔다. 여자는 남자를 집에 초대했고 둘은 술을 좀 더 마시고 키스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피곤하다고, 빨리 자고 싶다고 말했다. 남자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라며 여자의 집에 더 머물렀다. 그날 밤 둘은 섹스를 했다. 남자는 좋은 데이트였다고 생각했고, 여자는 불쾌했다.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볼드 타입>은 ‘스칼릿’이라는 이름의 잡지사를 다니는 세 여성의 일과 사랑 그리고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스칼릿 매거진에 다니는 에디터 ‘알렉스’는 ‘굿 가이’로 통한다. 연애 관계에 대한 섬세한 조언을 글로 전하는, “남성성이 병든 세상에서 보기 드문” 남자다. 알렉스는 어느 날 자신이 위와 같은, ‘데이트 상대에게 섹스하자고 조르는 어떤 뉴욕 남자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알렉스는 그 이야기를 쓴 후배 기자 ‘크리스틴’에게 묻는다. “우리의 섹스는 서로 동의한 거였잖아.”크리스틴은 답한다. 아니라고 안 했어” 알렉스는 당황스럽다. 그에겐 만족스러웠던 밤이 여자에겐 불쾌했다니…. <볼드 타입 시즌3> 3화 ‘굿 아이디어’의 에피소드는 캐주얼한 관계의 섹스에서도 위계와 강압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섹스 전 합의의 과정이 더 섬세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졸지에 ‘나쁜 남자’가 된 것 같아 혼란을 느끼는 알렉스에게 여성 동료 ‘서턴’이 말한다. “나랑 제인, 캣은 알렉스 눈에 강하고 거침없는 독립적인 여자로 보이겠죠. 우리도 크리스틴과 같은 걸 겪었어요. 원하던 단계보다 더 나아갔죠. 솔직히 말하는 것보다 쉬우니까요. 내가 원할 때 상황을 중단하는 건 보기보다 어려운 일이에요.”

나는 즐거웠는데 상대방에겐 찜찜한 하룻밤으로 남았다면 그것만큼 끔찍한 섹스는 없다.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고 해서, 집에 초대했다고 해서, 술에 취해 풀어진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섹스에 동의한 것이 아니다. 섹스에 동의를 구하는 게 달라진 공기를 해치는 불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도 틀렸다. 이 섹스를 원하는 것이 맞느냐고 묻는 이의 눈과 입술은 그 어느 때보다 섹시하다. 게임의 재미는 룰을 따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섹스도 그렇다. 동의라는 룰에 기반하지 않은 섹스는 재미도 없고 감흥도 없다는 걸 기억하자. 이 외에도 ‘볼드 타입’에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지점을 포착하는 다른 에피소드가 많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는 뉴요커들이 전하는 알짜배기 연애 조언이 필요하시다면 <볼드타입>을 꼭 보길 추천한다.

 

섹스를 글로 배우는 것보다 포르노로 배우는 것보다 이 작품들을 보며 웃고, 울고, 화내는 것이 당신의 섹스에 훨씬 유익할 것이라 확신한다. 섹스라는 단어를 남발했다. 과연 이 글에 ‘섹스’라는 말이 도대체 몇 번이나 쓰였을까? 그 정답자에 보상이 있다면 사는 동안 늘 멋진 상대와 근사한 섹스를 하길 빌겠다. 진심이다.

 

Writer

읽고 씁니다. 밤낮으로 물구나무를 서고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사람이 아름다움을 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궁금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