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지 10년이 조금 넘은 재즈 레이블 에디션 레코드는 피아니스트 데이브 스테이플턴과 사진작가 팀 딕커슨이 본인과 친구들의 음악을 발매할 요량으로 설립됐지만, 소박한 창립 목표와는 다르게 성장 중이다. 게다가 올해엔 커트 엘링의 앨범으로 그래미 수상작까지 보유하게 되면서 재즈신의 주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블루노트, ECM, 임펄스와 같은 여타 재즈 레이블과는 다른 길을 걷는 에디션 레코드의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며, 아티스트를 향한 지지와 존중 위에 피어난 형형색색의 음악은 지금 들어야 할 재즈로 손색없다.

에디션 레코드 프로모션 영상

에디션 레코드에 관해 얘기하기에 앞서 ‘레이블’이란 무엇인지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음악 산업에서 레이블은 소속 뮤지션의 앨범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일을 한다. 좋은 음악을 발견했다면 그 음반이 나온 레이블을 알아 두는 게 내 취향의 새로운 음악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레이블마다 추구하는 음악적 분위기와 색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음악가들에겐 레이블의 변화가 음악 스타일 변화로도 이어지곤 한다. 엘라 피츠제럴드는 데카 레코드에서 버브 레코드로 이적하면서 자신만의 곡 해석을 담은 ‘송북’(Songbook)에 도전해 아티스트로서 중요한 전환 과정을 겪기도 했다.

엘라 피츠제럴드 ‘Bewitched, Bothered, And Bewildered’

 

영국 레이블, 에디션 레코드의 소박하지만 따뜻한 출발

초기엔 인연이 있는 재즈 뮤지션의 음악을 발매하기도 했지만, 먼저 에디션 레코드의 문을 두드린 음악가들과도 인연을 맺었다. 재즈 피아노 트리오 프로네시스(Phronesis)를 비롯해 트로이카(Troyka), 마리우스 네셋(Marius Neset)의 음반이 있다. 영혼을 만져주는 음악의 특징과 달리 음악 산업계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얼굴을 드러내는 곳이다. 차가움 가득한 업계에서 에디션 레코드는 유난히 뮤지션과의 상호 신뢰와 충성을 바탕으로 관계를 맺어왔다. 에디션 레코드가 관심을 받은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과거 흔적에서 아티스트를 향한 지지와 믿음이 밑바탕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프로네시스 ‘Rabat’
트로이카 ‘Moxxy’

 

중요한 여정의 순간들

레이블 역사에 재즈신의 미래인 엘리엇 갤빈(Elliot Galvin), 현대 재즈의 기술과 숙련도를 모두 갖춘 벤 웬델(Ben Wendel) 그리고 크리스 포터(Chris Potter), 데이브 홀랜드(Dave Holland) 같은 이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에디션 레코드는 2010년대 후반부터 거장의 위치에 오른 음악가를 영입함과 동시에 이제 막 활발히 자신의 영역을 구축 중인 아티스트들에게도 편안한 집이 되어줬다. 그동안 많은 화가, 작곡가, 연주자의 삶을 통해 예술가에겐 지지와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끊임없이 배워왔다. ‘아티스트들의 비전을 지지하고 강화’하려는 레이블의 임무가 빛을 보이기 시작한 때이며 현재의 에디션 레코드 운명의 전환 과정에서 중요한 순간이다. 데이브 홀랜드가 크리스 포터, 자키르 후세인과 함께한 <Good Hope>, 크리스 포터의 <There Is A Tide>와 벤 웬델의 에디션에서의 첫 앨범이자 라이브 실황 녹음본인 <High Hope>가 있다.

벤 웬델 ‘High Heart’
크리스 포터 ‘I Had A Dream’

 

그래미를 안겨준 커트 엘링의 <Secrets Are The Best Stories>

과거 에디션 레코드를 처음 시작했을 때 소속 아티스트로는 주변 영국의 재즈 뮤지션이 전부였다. 하지만 에디션 레코드만의 운영 철학이 점점 더 많은 뮤지션을 끌어오게 되면서 미국의 재즈 거장들과도 계약을 맺는다. 드러머 데이브 홀랜드가 그렇고 이번에 소개할 커트 엘링 역시 미국의 재즈 보컬리스트다. 2009년에 이미 콩코드 레코드를 통해 발표한 <Dedicated To You>로 그래미 재즈 보컬 앨범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전설적인 뮤지션이지만, 에디션 레코드에서 낸 첫 앨범으로 12년 만에 똑같은 상을 받은 건 의미가 크다. 무채색의 건조한 보컬, 추상적인 가사, 재즈 발라드와는 다른 연극 같은 전개를 두고 평단에선 아쉽다는 평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커트 엘링에게도 도전적이 작품이었는데, 에디션 레코드는 이를 지지하고 신뢰했다. 덕분에 인연을 맺은 첫 작품부터 아티스트에겐 그래미상을, 레이블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요한 순간을 안겨줬다.

커트 엘링 'Secrets Are The Best Stories'
커트 엘링 ‘Song of the Rio Grande’

 

마지막으로 에디션 레코드의 음악을 느끼려면 ECM, 블루노트의 음악과 비교하며 차이를 느껴보는 것도 재밌겠고, 커트 엘링, 데이브 홀랜드가 다른 레이블에 있을 때 발매한 음반과 현재의 것을 비교하며 들어봐도 좋겠다. 12년 동안 만들어온 라인업을 통해 과거와 지금의 재즈를 느낄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감상일 것이다.

 

Writer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신샘이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