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나 드라마에 트랜스섹슈얼(Transsexual) 캐릭터 등장 빈도가 높아졌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스크린이나 TV에서의 간접 경험이 이들에 대한 인식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과거 영화나 드라마에 묘사된 이들의 모습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던 것이 현실. 가령 보편적인 직업을 갖기가 어려워 성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범죄의 피해자로 일찍 사망하든지 혹은 지극히 부수적인 캐릭터로 묘사되곤 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Disclosure: Trans Lives on Screen>은 트랜스섹슈얼 배우들의 증언을 통해 이런 현상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다큐멘터리 <Disclosure: Trans Lives on Screen> 예고편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익히 알려졌거나 명작 반열에 오른 영화에서 트랜스섹슈얼 캐릭터들이 병적인 연쇄 살인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 영화는 상업적으로 성공하여 부정적인 고정관념 형성에 기여했고, 당시에도 그렇지만 오늘 날까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 영화의 악역으로 등장하여 유명해진 세 명의 트랜스섹슈얼 캐릭터 셋을 알아보았다.

 

<사이코>(1960) ‘노먼 베이츠’

히치콕 최고의 흥행작이자 영화 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는 <사이코>(Psycho)에는 죽은 엄마의 옷을 입고 살인을 저지르는 정신이상자 ‘노먼 베이츠’(Norman Bates)가 등장한다. 원작자 로버트 블로치(Robert Bloch)에 의하면 무덤에서 파낸 모친의 시신을 방에다 안치하고 모친의 옷을 입었던 위스콘신 살인마 ‘에드 게인’(Ed Gein)을 참고했다고 한다. <사이코 4>(1990)까지 네 편의 영화에서 노먼 베이츠를 연기한 앤소니 퍼킨스(Anthony Perkins)는 여성 앞에서 지나치게 수줍어 하는 성격에다 30대 후반까지 동성 연애를 즐긴 양성애자였으며,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한 바 있다. 최근 영국의 아이돌 스타 프레디 하이모어(Freddie Highmore)가 프리퀄 드라마 <베이츠 모텔>(2013~2017)에서 노먼 베이츠를 연기하였다.

히치콕 감독이 직접 등장하는 영화 <사이코>(1960) 예고편

할리우드의 영화검열 제도가 힘을 잃고 표현의 자유가 강하게 대두되던 1960년대에 <사이코>는 영화에서 폭력과 성적인 표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영화다. 처음에 평단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으나, 입소문을 타면서 박스오피스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제작비 100만 달러에 못 미치는 저예산에도 불구하고 박스오피스 5,000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했다. 특히 기괴한 바이올린 음향과 함께 나오는 샤워장 살해 장면은 영화사에서 길이 남은 명장면이다.

영화 <사이코>의 샤워실 장면

 

<드레스드 투 킬>(1980) ‘엘리엇’ 박사

여장을 하고 면도칼을 휘두르는 엘리엇 박사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에로틱 스릴러 <드레스드 투 킬>(Dressed to Kill)의 엘리엇 박사는 남성의 몸에 여성의 인격까지 지닌 다중인격체다. 그는 성적으로 도발될 때 공격적 성격의 여성 인격이 살아나, 여성으로 분장하고 자신을 도발한 환자를 스톡킹하고 살해한다. 여성으로 분장한 남자 살인자가 등장한다든가, 샤워 신이 중요하게 나오거나, 또는 주연급 여성 배우가 일찍 살해된다는 점에서 <사이코>의 오마주 영화로 유명하다.

<드레스드 투 킬>의 마지막 장면에서 총상을 입는 엘리엇 박사

이 영화는 로튼토마토 80%의 신선도 지수를 받고 흥행에서도 성공하였으나, 여성에 대한 폭력 장면이나 트랜스 여성을 정신이상이나 위험한 인물로 묘사하여 관련 단체의 비난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폭력과 섹스의 미학으로 상징되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대표작으로 인정된다. NBC 드라마 <Police Woman>의 페퍼 형사로 유명한 배우 앤지 디킨슨의 누드 신은 사실 펜트하우스 모델의 대역 연기다.

 

<양들의 침묵>(1991) ‘버팔로 빌’

현재 B&B 영업 중인 영화 중 버팔로 빌의 집

토마스 해리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이 영화는 ‘역대 최고’라는 수식이 뒤따르며 그 해 오스카 주요 5개 부문을 모두 휩쓸었다. 여성 희생자의 피부를 도려내어 옷을 재봉하는 엽기적인 살인마 ‘버팔로 빌’(Buffalo Bill)을 잡기 위해 또 다른 연쇄 살인마 ‘한니발 렉터’의 도움을 받는 신참 FBI 요원 ‘클라리스’를 그렸다. 평단의 높은 평가와 함께 제작비 1,900만 달러의 14배 넘는 박스오피스 수입을 올렸으나, LGBT 단체 측에서 볼멘 소리를 냈다. 영화 중 버팔로 빌의 성지향성이 명확히 묘사되지 않았지만, 양성애자 또는 트랜스젠더로 알려지게 된 점에 불만을 토로했다. 후일 래퍼 에미넴이 앨범 <Relapse>(2009)에서 ‘버팔로 빌’을 노래할 정도로 악명높은 캐릭터가 되었다.

<양들의 침묵> 중 버팔로 빌이 처음 등장할 때의 배경음악으로 유명한 ‘Goodbye Horses’. 남성의 목소리로 들리지만 가수 Q 라자루스(Q Lazzarus)는 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