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그래퍼 저스틴 뱃맨(Justin Bettman)은 거리 한가운데 불시착한 공간을 짓는다. 언제 사라질 지 모를 신기루를 찍는다. 줌인에서 줌아웃으로, 줌아웃에서 줌인으로.

이미지 출처 – ‘Yellowtrace’
이미지 출처 ‘Behance’
이미지 출처 – ‘Fstoppers’
이미지 출처 – ‘Fstoppers’

그는 뉴욕의 포토그래퍼였다. 모두가 알 만한 대형 브랜드와 주로 작업했는데, 촬영은 브랜드의 유명세만큼이나 규모가 컸다. 그럴수록 그의 마음 한쪽은 반대 방향을 향해 자랐다. 바깥으로 뻗어가는 것 말고 안쪽으로 파고드는 것, 섬세하게 조율된 실내공간을 찍어보고 싶었다. 문제는 언제나처럼 돈이었다. 스튜디오를 빌리고 세트장을 짓고, 하나하나 생각하다 보면 현실이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래서 그는 조금 다른 대답을 택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 외벽과 바닥이 맞닿은 자리. 세트장처럼 수직과 수평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안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2014년 여름, 저스틴 뱃맨의 <Set in the Street>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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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Bird In F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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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Photoinduced.com’
이미지 출처 – ‘Earthly Mission’

프로젝트의 규칙은 한 가지였다. 모든 것을 거리에서 해결할 것. 구글 스트리트 뷰를 누비며 촬영 장소를 찾고, 누군가 버리고 간 이삿짐에서 소품을 구하는 식이었다. 보도의 폭과 벽의 길이가 알맞은 장소를 골라내고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면 장면 하나에 꼬박 한 달이 걸렸다. 허가 받지 못한 세트장은 텅 빈 새벽에 모여 뚝딱 지어야 했고, 해가 뜨자마자 시작한 촬영은 후다닥 마쳐야 했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괜찮았다. 필요한 것은 모두 거리에 있었다.

이미지 출처 – ‘Fstop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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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Anderson Hopkins’
이미지 출처 – ‘Anderson Hopkins’
이미지 출처 – ‘Mache’
이미지 출처 – ‘Opencity Projects’

이곳은 안쪽부터 피어나는 세계, 가까이 당긴 초점에서 시작해 바깥으로 퍼져 나간다. 동화처럼 화사한 풍경으로 시작해 망망대해의 섬으로 끝난다. 몇 발짝 멀어질수록 하릴없이 공허해지는 장면 속에서 사람들의 표정도 어쩐지 애처로워진다. 어쩌면 이곳은 오래 전 저마다 품었던 꿈 속일까? 한때 전부였으나 다른 곳을 헤매는 사이 시들어버리고 남은 건 환상뿐인 꿈. 그런 곳에선 더 이상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알 수 없어 슬프고, 실제보다 아름답게 기억되어 아리다. 그때 놓치면 영영 잡지 못하게 되는 것들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세트장을 배경으로 한 실제 커플의 프로포즈 현장, 이미지 출처 – ‘Haha Magazine’
세트장이 지어진 장소는 두 사람의 첫 데이트 장소였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 ‘Daily Mail’

그래서 촬영이 끝나고 카메라가 빠져나가도 세트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돌아가는 길이 흐릿해진 꿈에 대한 위로처럼 거리에 남는다. 가구와 소품이 무작위로 철거되기 전까지 지나가는 이들에게 짧은 추억이 되어줄 수 있도록. 이곳에서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는 연인에게 청혼을 했다. 그 사이 프로젝트는 SNS에서 점점 유명세를 탔고, 어느 순간 뉴욕을 넘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이제 저스틴 뱃맨은 외벽이 세워진 거리를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는다. 대신 원하는 세트장을 짓는다. 런던, 모스크바, 더 넓은 도시로 뻗어 나가면서.

이미지 출처 – ‘BuzzFeed News’
이미지 출처 – ‘Lenscratch’
이미지 출처 – ‘pinterest’

어른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배운 건 줌아웃(zoom-out)이었다. 더 넓게 보는 법을 익히고 나면 그 다음에는 주변 풍경에 맞춰 내 모습을 바꿀 줄도 알아야 했다. 명확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튕겨 나가지 않으려 눈치껏 섞여 드는 일,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일 같았다. 누가누가 더 오래 버티나, 반짝반짝 품었던 꿈이 조금씩 깎여 나가는 줄도 모르고. 어디에도 확실한 정답은 없지만 모두가 줌아웃을 할 때 줌인(Zoom-in)해야만 볼 수 있는 것도 있지 않을까? 원래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스틴 뱃맨의 프로젝트를 보며 생각해본다.

 

저스틴 뱃맨 홈페이지

 

Writer

언어를 뛰어넘어, 이야기에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마음속에 새로운 씨앗을 심어주고,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가 되어주니까. 그래서 그림책에서부터 민담, 괴담, 문학, 영화까지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중. 앞으로 직접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며 더 풍성하고 가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나가기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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