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재무부가 해리엇 터브먼을 20달러 지폐의 모델로 선정하는 작업에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대부분 정치인이거나 미국의 주류였던 백인 남성이 장식했던 지폐 모델로 노예해방운동에 나섰던 흑인 여성이 선정되었다는 것은, 이제 미국 사회가 더욱 평등한 사회로 변화할 수 있다는 기대를 심어준다. 미국 사회의 변화를 상징하듯 최근 흑인 여성의 전기 영화나 드라마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불평등한 사회에서 모든 역경과 차별을 극복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쌓은 인물들이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순으로 그들의 전기 영화와 드라마 셋을 골랐다.

 

<Harriet>(2019), 노예해방운동을 이끌다

해리엇 터브만(왼쪽)과 그를 연기한 신시아 에리보

이제 미국의 20달러 지폐 모델로 등장하게 될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은 미국 노예해방운동(Abolition Movement)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인 1822년, 남부 메릴랜드의 농장에서 노예 신분으로 태어난 그는 자유를 찾아 북부로 탈출하여, 비밀결사대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Underground Railroad) 작전에 합류했다. 무려 19차례나 남부로 잠입해 300여 명 흑인들의 탈출을 도와 ‘모세’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남북전쟁에 참전하여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전쟁 후에는 여성의 참정권 확대를 위해 노력했다. 그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 영화 <해리엇>(2019)은 박스오피스 4,300만 달러의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현재 넷플릭스에서 상영 중이다. 주연을 맡은 신시아 에리보(Cynthia Erivo)가 부른 주제곡 ‘Stand Up’은 그래미, 아카데미, 골든글러브 후보에 올랐다.

영화 <해리엇>의 주제곡 ‘Stand Up’

 

<셀프 메이드: 마담 C. J. 워커>(2020), 최초의 여성 백만장자

마담 C.J. 워커(왼쪽)와 그를 연기한 옥타비아 스펜서(오른쪽)

노예해방선언(1863) 이후 자유인으로 태어났으나 일곱 살에 부모를 잃고 고아로 힘든 삶을 이어가던 그는, 수입이 변변치 않은 세탁부 일을 그만두고 흑인 대상 발모제와 화장품 회사를 차려서 크게 성공한다. 그는 최초의 자수성가 여성 백만장자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흑인여성 인권과 복지 향상을 위해 많은 성금을 기탁하였다. 그의 증손녀인 언론인 알렐리아 번들스(A’Lelia Bundles)가 집필한 전기를 바탕으로 4부작 미니시리즈가 제작되어 호평을 받았다. 미니시리즈에서 마담 C.J. 워커를 연기한 옥타비아 스펜서(Octavia Spencer)는 에미상 최우수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경쟁 사업자로 나온 실존 인물 애니 말론(Addie Malone)을 비열하게 묘사했거나, 그의 딸 레일라를 레즈비언으로 시사한 점은 사실 관계에 부합하지 않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미니시리즈 <Self-Made: Madam C. J. Walker> 예고편

 

<히든 피겨스>(2015), 최초의 NASA 수학자

NASA의 유리천장을 깬 캐서린 존슨(왼쪽), 도로시 본(가운데), 메리 잭슨(오른쪽)

백인 남성으로 가득 찬 1960년대 NASA(미국항공우주국)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세 명의 흑인 여성 수학자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을 다룬 영화. 이들 모두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이던 냉전 시절, 우주선의 비행 궤도를 계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NASA에서 30여년 이상 근무하고 은퇴하였다. 하지만 분리 정책이 성행하던 시절이라 800미터나 떨어진 유색인종 화장실에 다니느라 중요한 시간이 낭비되는 것을 목격한 상사(케빈 코스트너)가 인종 차별에 분노하여 화장실 현판을 부수는 장면은, 유리천장을 깬 이들의 공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인종적 측면 이외에도, 학생들의 STEM 분야(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 Mathematics) 관심을 고양하기 위해 공적인 목적의 무료 상영도 활발했다. 박스오피스에서 2억 3,000만 달러를 벌어 상업적으로도 성공했지만, 오스카 3개 부문 후보에 오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영화 <히든 피겨스>(2015)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