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되지 않은 것에는 묘한 매력이 따른다. 이를테면 누군가의 창문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 낯선 창문 너머로 익숙하고 무심하게 흘러가는 일상들, 사진작가 게일 알버트 할라반은 타인의 풍경을 줍는다.

‘Paris Views’ © Gail Albert Halaban
‘Out My Window’, 이미지 출처 – ‘Culture Trip’

창가는 잠들지 못하는 밤의 종착지였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내다본 어둠 속엔 불 켜진 창문이 별처럼 흐드러졌다. 별자리처럼 이어진 불빛,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은 종종 뜬금없는 물음표로 변했다. 저 창문 안쪽의 모습은 어떨까? 벽지는 무슨 색일까, 어느 자리에 어떤 가구가 놓여 있을까? 돌이켜보니 정말 알고 싶었던 건 비슷한 공간에서 저마다 다르게 나누어 가진 삶의 모양이었다.

‘Paris Views’, 이미지 출처 – ‘Rebloggy’
‘Paris Views’ © Gail Albert Halaban
‘Out My Window’, 이미지 출처 – ‘Urban Omnibus’

게일 알버트 할라반(Gail Albert Halaban)의 사진은 그에 대한 대답을 닮았다. 그가 타인의 창문 너머를 찍기 시작한 건 2007년 언저리, 삶이 막 엄마라는 옷을 갈아입었을 때였다. 종일 보채던 아기가 겨우 잠든 밤이면 그는 혼자 남겨진 섬처럼 창가를 서성였다. 맞은편 아파트, 골목길 카페, 24시 꽃집. 이제 막 뿌리를 내린 뉴욕도 그에겐 딱 창문만 한 크기였지만, 바깥을 내다보는 순간만큼은 그렇게 외롭지 않았다. 이 넓은 도시에선 모두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연결된 것 같았다.

‘Paris Views’, 이미지 출처 – ‘Kwerfeldein’
‘Paris Views’, 이미지 출처 – ‘Architectural Digest’
‘Italian Views’

이곳의 창문을 하나하나 이어붙이면 언젠가는 도시의 얼굴이 완성되지 않을까? 조각난 풍경 앞에서 불쑥 떠오른 생각 하나. 사진작가였던 게일 할라반에게 그 생각은 새로운 작업의 초석, 온전히 자신으로 통하는 출입구였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 뉴욕, 파리, 베네치아를 가로질러 이어진 지 어느덧 13년. 그는 오늘도 창문 너머 풍경을 이어 도시를, 삶을 기록한다.

‘Paris Views’, 이미지 출처 – ‘The Eye of Photography’
‘Paris Views’, 이미지 출처 – ‘Nomada Q’
‘Out My Window’, 이미지 출처 – ‘Gessato’

금기를 금기로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욕망 아닐까? 한여름의 습도처럼 끈적끈적한 것, 보이지 않아도 감각으로 먼저 알아차리게 되는 것. 타인의 창문을 넘을지언정 게일 할라반의 시선에는 그런 것이 없다. 사람들 앞에서 어쩐지 숨겨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으니까. 프로젝트가 ‘촬영 전 반드시 허락을 구할 것’이라는 작업 수칙과 함께 오래도록 이어져 온 건 그 덕분일 것이다.

‘Paris Views’, © Noli Timere
‘Paris Views’
‘Italian Views’, 이미지 출처 – ‘Cooph’

시선의 끝에서 일상은 슴슴하고 무심하게 흘러간다. 텅 빈 방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오전, 노트북 앞에 웅크린 오후, 소중한 이들과 둘러앉는 저녁, 때로는 함께 있어도 외롭고 때로는 혼자 있어 우울한 순간들까지. 영화처럼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어느 도시든 누구의 공간이든 비슷비슷한 동사가 주어만 갈아입은 채 이어질 뿐. 어제와 오늘도 그랬듯 내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Paris Views’ © Gail Albert Halaban
‘Paris Views’, 이미지 출처 – ‘Kwerfeldein’
‘Paris Views’ 이미지 출처 – ‘Kopeikin Gallery’

타인의 창문에서 주웠으나 우리 모두의 것인 풍경 앞에서 문득 당연한 사실을 문득 떠올린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에서 의미를 찾는 건 각자의 몫이라는 것. 아무런 해석 없이 삶의 모양만을 담아낸 게일 할라반의 사진은 그래서 마음을 끈다. 평범한 불빛이 모여 피워낸 찬란한 야경처럼.

 

Writer

언어를 뛰어넘어, 이야기에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마음속에 새로운 씨앗을 심어주고,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가 되어주니까. 그래서 그림책에서부터 민담, 괴담, 문학, 영화까지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중. 앞으로 직접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며 더 풍성하고 가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나가기를 꿈꾸고 있다.
전하영 블로그 
전하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