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주의 멤피스에는 Overton Park Shell(현재는 Levitt Shell로 불린다)이라고 불리는 오래된 야외 원형극장이 있다. 미국 대중음악의 본고장 멤피스답게 이곳에서 다양한 공연이나 이벤트가 열리는데, 엘비스 프레슬리가 무명 시절이던 1954년 첫 유료 공연을 했을 정도로 유서 깊은 곳이다. 1989년 4월 15일 여기서, 곧 쓰러질 것 같이 노쇠한 재즈 피아니스트 한 명이 무대에 올라 생애 마지막 연주를 남겼다. 전성기 시절 그가 독보적인 해석으로 즐겨 연주하던, 빌리 스트레이혼의 재즈 스탠더드 ‘Lush Life’ 였다.

Phineas Newborn Jr.의 ‘Lush Life’(1989. 4. 15, Overton Park Shell)

그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전성기를 맞았던 재즈 피아니스트 피니어스 뉴본 주니어(Phineas Newborn, Jr.)였다. 재즈 평론가 레오나드 페더가 아트 테이텀, 오스카 피터슨과 함께 3대 재즈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유명했다. 하지만 마지막 무대에 올랐을 때 그는 죽음을 앞둔 폐암 환자였고, 스스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향 멤피스의 대중 앞에서 마지막 연주를 남기고, 불과 6주 후 뉴본 주니어는 병원에서 58년의 힘든 여정을 마감했다.

Phineas Newborn Jr.의 전성기 시절 ‘Lush Life’(1962)

그는 아버지가 리드했던 R&B 밴드에서 기타리스트였던 동생 캘빈과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였는데, 멤피스를 방문한 카운트 베이시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카운트 베이시의 추천으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뉴욕으로 입성하여 데뷔 음반 <Here Is Phineas>(1956)을 냈는데, 이 음반은 당시 재즈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연주 테크닉 측면에서 당대 최고인 아트 테이텀에 비견될 정도였고, 클래식 피아노의 리스트(Liszt) 연주에 영향을 받아 옥타브를 건너뛰거나 왼손으로만 블루스를 연주하는 주법은 독창적이었다. 이듬해에는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함께 <While My Lady Sleeps>(1957)을 녹음하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Phineas Newborn Jr. with RCA Victor Orchestra ‘While My Lady Sleeps’(1957)

그는 유럽으로 초청되어 스톡홀름과 로마에서 솔로 피아노 콘서트를 열 정도로 정상급 피아니스트로 인정을 받았다. 1960년대에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컨템포러리 레코드에서 <A World of Piano!>(1961), <The Great Jazz Piano of Phineas Newborn Jr.>(1962), <A Newborn Touch>(1964), <Harlem Blues>(1969) 등의 피아노 트리오 명반을 내며 전성기를 누렸다.

컨템포러리 레코드 시절 피니어스 뉴본 주니어의 음반

하지만 모든 평론가가 그의 피아노 연주에 호평을 내리지는 않았다. “기교는 있지만 느낌이 없다” 라든가 “너무 쉬운 방식으로 피아노를 친다”라는 악평을 받을 만큼, 연주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갈렸다. 이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한 그는 한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손을 다치면서 오랫동안 피아노에서 손을 놓기도 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그는 건강까지 악화하면서 대중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Phineas Newborn Jr. ‘Blues for the Left Hand Only’(왼손으로만 연주하는 블루스 피아노)

그는 피아노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나서도,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음반을 내고 재기를 노리기도 했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 고향 멤피스로 돌아와 지역 재즈클럽에서 간간이 연주를 했고, 재즈 기타리스트인 동생(Calvin Newborn)과 협연을 하기도 했다. 궁핍한 환경에서 어렵게 생활하던 그가 58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어려움에 부닥친 재즈/블루스 뮤지션들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 재즈재단(Jazz Found of America)이 설립되었을 정도로 그의 고달팠던 말년은 음악계에 큰 여파를 남겼다. 뉴본 주니어는 지금도 출중한 실력에 비해 가장 저평가된 재즈 피아니스트로 손에 꼽힌다.

Phineas Newborn Jr. Trio의 전성기 연주(Jazz Scene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