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C와 넷플릭스가 공동 제작한 <빨강머리 앤>의 세 번째 시즌이 지난해 말 막을 내렸다. 3년 전 첫 에피소드에서 홀로 기차를 타고 애번리 마을의 푸른 지붕 집으로 입양되었던 '앤'은, 이제 소녀 티를 벗고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마음속으로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지만 빗나가기만 했던 '길버트'와의 관계나 앤의 실제 부모에 대한 궁금증이 마지막에 급하게 마무리되면서 팬들은 무언가 불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에피소드가 끝난 11월 24일 더 이상의 시즌은 없을 것이라 공식 발표되면서, 앤과 길버트와의 미래는 팬들의 상상에 맡겨지게 되었다.

앤과 길버트의 스토리를 편집한 영상

열혈 팬들은 드라마를 되살리기 위해 해쉬태그 #RenewAnnewithanE #SaveAnnewithanE를 SNS에 지속 게재하여 온라인 청원을 하는 등 대대적 행동에 나섰다. 약 1,000달러를 들여 토론토 시내에 다섯 개 간판을 세웠고, 뉴욕의 번화가인 타임 스퀘어에 추가로 세우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추진 중이다.

토론토 시내에 세워진 'Save Anne with an E' 간판

하지만 드라마의 제작자는 SNS에 "우리도 넷플릭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른 플랫폼을 찾으려고도 했지만 이마저 잘 되지 않았다"면서 쉽지 않은 상황을 전했다. 기본적으로 CBC와 넷플릭스 간의 협업 관계가 종료되었고, 배타적인 기간 조항 때문에 넷플릭스가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시즌을 계속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열성 팬들의 행동에 일말의 기대를 해보면서, 이 드라마에 관한 몇 가지 배경을 알아보았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

어린 시절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빨강머리 앤>은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가 1908년 출간한 자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은 첫 5개월 동안 1만9천 부가 팔리며 속편이 이어졌고, 지금까지 5,000만 부 이상이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조부모 밑에서 자라난 작가는,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발랄하고 재기에 넘친 '앤'이라는 캐릭터를 창안했다.

교실에서 앤이 길버트의 머리를 치는 명장면(S1 E3)

 

작품의 배경,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작가의 고향이자 소설의 배경이 된 캐나다 북동부 프린스 에드워드 섬(Prince Edward Island)은 전 세계에서 수많은 팬이 몰려드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드라마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절벽은 물론, 지금도 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푸른 지붕의 집이 소설의 묘사대로 전시되어 있다. 이 집은 원래 작가의 사촌 집으로 작가의 상상의 배경이던 집이었다. 작가의 생가나 작가의 일생을 기린 박물관 역시 보존되어 있고, 섬에서 가장 번화한 샬럿타운(Charlottetown)에서는 관련 뮤지컬을 감상할 수 있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전시된 앤의 집

 

1대1,800의 경쟁을 뚫은 에이미베스

앤은 캐나다에서 이제껏 그 역할을 맡은 배우만 2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영화나 뮤지컬 인기 캐릭터다. 이번 드라마에도 공개 오디션으로 배우를 선정했고, 3개 대륙에서 온 1,800명이 경쟁한 끝에 에이미베스 맥널티(Amybeth McNulty)가 독보적인 대사 전달 능력을 인정받아 최종 선정되었다. 2001년생인 그는 아역배우로 일찍 뮤지컬 연기를 시작했고, 원래 빨간 머리가 아니라 금발이다.

<빨강머리 앤> 메이킹 영상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매력은, 토론토 시내에 등장한 'Save Anne with E' 포스터에 잘 드러나 있다. 10대의 성장기나 목가적인 사랑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여러 사회 문제를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녹인 것.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서 은연 중에 드러나는 인종 편견, 페미니즘, 교육 문제, 성 편견, 위탁가정 문제, 인권, 미의 기준, 성희롱, LGBTQ 권리 같은 사회 문제들을 조용히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가 지닌 조용하지만 강한 힘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