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는 대중에게 오랜 기간 사랑받아온 화가다. 그에 관한 관심이 큰 만큼 고흐에 대한 영화도 많았는데, 작년 말에 국내에 개봉한 <고흐, 영원의 문에서>(2018)도 고흐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윌렘 데포가 연기한 고흐가 궁금해지는 작품인데, 그보다도 감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감독 ‘줄리안 슈나벨’은 실제로 화가 출신이기 때문이다. 

파피 코르시카토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쥴리안 슈나벨: 어 프라이빗 포트레이트>(2017) 속 줄리안 슈나벨 감독, 이미지 출처 - 'IMDB'

줄리안 슈나벨은 신표현주의 화가로, 팝아트,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던 시대에 회화로 주목받은 인물이다. 캔버스에 깨진 접시를 붙여서 그림을 그리는 '플레이트 페인팅(Plate Painting)' 작업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미국 미술계에서 승승장구하던 줄리안 슈나벨은 자신의 동료 화가 바스키아에 대해 다룬 <바스키아>(1996)를 연출하며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비포 나잇 폴스>(2000)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 <잠수종과 나비>(2007)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는 등 영화감독으로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으며 흥미로운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스티브 맥퀸 감독(왼쪽)과 그와 세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오른쪽), 이미지 출처 - 'IMDB'

줄리안 슈나벨 만큼 유명한 미술계 출신 영화감독이 있으니, 바로 '스티브 맥퀸'이다. 스티브 맥퀸은 영국에서 태어난 비디오아트 작가로, 터너 상(Turner Prize)과 대영제국훈장까지 받은 아티스트이다. <헝거>(2008)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후로 <노예 12년>(2013)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줄리안 슈나벨과 스티브 맥퀸, 미술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두 사람은 이제 영화계에서도 주목할 수밖에 없는 감독이 되었다. 그들은 미술에서 영화로 활동반경을 넓히면서 작업환경은 달라졌겠지만, 예술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이전과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다. 스크린을 캔버스 삼아 작업 중인 두 감독의 주요 작품을 살펴보자.

 

<잠수종과 나비>

프랑스 패션지 '엘르'의 편집장 '보비'(마티유 아말릭)는 늘 성공을 누리던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진다. 의식을 찾은 보비는 '감금 증후군(locked-in syndrome)'으로 한 쪽 눈을 제외하고 온몸이 마비된다. 처음엔 좌절하던 보비는, 한 눈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배워나간다.

줄리안 슈나벨은 동료 화가 바스키아를 다룬 <바스키아>(1996)부터 쿠바의 소설가 레이날도 아레나스에 대해 다룬 <비포 나잇 폴스>(2000)까지 실존 인물에 대해 영화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잠수종과 나비>(2007)도 실존 인물을 다룬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국내에도 출간된 장 도미니크 보비가 쓴 동명의 회고록이 원작으로, 실제로 보비는 15개월 동안 한 쪽 눈을 20여만 번 깜빡인 끝에 130페이지 분량의 책을 완성했다.

<잠수종과 나비> 트레일러

줄리안 슈나벨은 한 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는 보비에게 연민을 품기보다, 관객들이 보비가 바라보는 세상을 느낄 수 있도록 보비의 시선에 맞춰서 촬영한 장면이 많다. 보비는 자신의 몸이 잠수종에 갇힌 것 같다고 느끼지만, 그의 생각은 나비처럼 자유롭다. 그가 눈을 깜빡이며 품었던 생각은 책에 이어서 영화화되었고, 먼 길을 날아서 관객의 마음 위에 자리 잡는다.

 

<헝거>

메이즈 교도소에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샤워와 죄수복 착용을 거부하며 투쟁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목표로 하는 IRA의 조직원들로, 그 중심에는 '보비 샌즈'(마이클 패스벤더)가 있다. 보비 샌즈는 영국 정부에 대항하기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단식을 시작한다.

<헝거>(2008)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티브 맥퀸 감독의 데뷔작으로, 칸 영화제에서 그해 데뷔작 중 최고의 작품에 주는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다. 주연을 맡은 마이클 패스벤더는 <헝거>를 시작으로 <셰임>(2011)과 <노예 12년>(2013)까지 스티브 맥퀸과 세 작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단식투쟁을 하는 보비 샌즈를 연기하기 위해 14kg을 감량한 채 촬영에 임했다.

<헝거> 트레일러 

스티브 맥퀸은 인물에 대해 길게 설명하기보다 육체를 통해 보여준다. 정치적인 사건에 대해 연출자로서 개입하기보다 투쟁하는 개인의 몸을 묵묵히 응시한다. 메이즈 교도소의 수감자들은 배설물을 벽에 바르는 배설물 투쟁을 하고, 보비 샌즈는 음식을 거부한 채 66일간 단식을 한다. <헝거> 속 투쟁하는 인물들을 바라보며, 인간에게 '신념'이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노예 12년>

1841년 뉴욕, 바이올린 연주자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은 사기꾼들에게 납치당하고 노예로 팔려 간다. 자유인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그는 '플랫'이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노예 생활을 시작한다. 솔로몬 노섭은 이름도 잃은 채, 첫 번째 주인 '윌리엄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두 번째 주인 '에드윈 엡스'(마이클 패스벤더) 밑에서 노예로 지내며 힘든 시간을 겪는다.

<노예 12년>(2013)은 그해 주요 시상식의 작품상을 휩쓴 영화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각색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는데, 특히 팻시를 연기한 루피타 니옹고는 <노예 12년>이 장편 데뷔작인 신인임에도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미국 흑인 노예 해방론자 솔로몬 노섭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솔로몬 노섭이 하루아침에 자유를 잃고 노예로 지낸 시간을 보여준다.

<노예 12년> 트레일러

솔로몬 노섭은 노예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자유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자유를 잃은 채 사는 건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솔로몬 노섭처럼 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않은, 노예의 삶을 견디며 산 이들이 무수히 많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사람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자유를 누리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

가난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윌렘 데포)는 동생 '테오'(루퍼트 프렌드)가 보내주는 돈으로 간신히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고흐는 프랑스 파리를 떠나서 조용한 마을 아를에서 그림 작업을 시작한다. 고흐의 동료 화가 '폴 고갱'(오스카 아이삭)은 고흐가 지내는 곳에서 한동안 머물며 그와 교류한다. 늘 외롭던 고흐는 고갱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빈센트 반 고흐는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화가이기에, 그의 삶은 영화로도 자주 다뤄졌다. 빈센트 미넬리와 조지 큐커가 연출한 <열정의 랩소디>(1956), 로버트 알트만의 <빈센트>(1990), 모리스 피알라의 <반 고흐>(1991),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2017)까지 반 고흐에 대한 영화감독들의 애정은 현재진행 중이다. 화가 출신이기에 반 고흐에 대해 더 특별하게 느꼈을 줄리안 슈나벨은 <고흐, 영원의 문에서>(2018)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반 고흐의 삶을 그려냈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 트레일러 

줄리안 슈나벨 감독의 데뷔작 <바스키아>(1998)에 출연했던 윌렘 데포가 주인공 고흐를 연기했고, 윌렘 데포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줄리안 슈나벨은 귀를 자르는 등의 자극적인 장면을 묘사하지 않고, 고흐의 내면에 집중한다. 어떤 순간을 그림으로 옮기면 그 순간이 영원이 된다고 믿는 고흐의 태도를 보여준다. 고흐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곧 영원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고흐는 세상을 떠났지만, 고흐의 그림이 영원히 우리의 곁에 머무는 것처럼 말이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