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의 프랑스는 현대 문명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이 해에는 1885년부터 매년 열리던 자선 바자회를 제8구역의 영화관에서 열었는데, 많은 사람이 운집하여 여러 가지 진기한 구경거리를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영화 상영관의 화면에서 기차가 움직이자 이를 처음 본 사람들이 놀라 몸을 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열된 영사기가 폭발하면서 삽시간에 불이 번졌고, 단 하나뿐인 회전 출입구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아비규환을 이뤘다. 30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건물이 전소하면서 무려 126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가 되었고, 대부분 사망자가 여성으로 드러나면서 먼저 탈출한 남성들의 비겁한 행동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당시 프랑스 신문의 화재 보도

이 참사의 희생자 중에는 유럽의 귀족이나 명사들도 다수 포함되어 사회적 파장이 대단했다. 불에 탄 시신을 확인할 수 없어 치아를 통한 시신 감별 방식이 활용된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그 후 유럽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활용되었는데, 최근 프랑스 최대 방송사 TF1이 넷플릭스와 손잡고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8부작 드라마를 선보였다. 원제는 행사 명칭이었던 <Bazar de la Charite>(자선 바자회)인데, 미국에서는 <The Bonfire of Destiny>(운명의 횃불), 우리나라에서는 <바자르의 불꽃>으로 소개되었다.

8부작 드라마 <바자르의 불꽃> 예고편

이 드라마에는 세 명의 여성 캐릭터를 내세워 당시의 시대상, 특히 여성상을 조명한다. 세 명 모두 화재가 일어난 바자회에 참석하였고, 재난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으면서 운명의 일대 전환을 이루게 된다. '아드리엔'은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벗어나 딸을 찾기 위해 불길 속에 죽은 것으로 위장하게 되고, '앨리스'는 약혼자의 비겁한 행동에 실망하고 자신을 구해준 무정부주의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앨리스의 하녀 '로즈'는 심각한 화상을 입게 되나 목숨을 잃은 부잣집 외동 '오데트'를 대신하여 그 집의 안주인 역할을 하게 된다.

<바자르의 불꽃>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

19세기 말 파리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매력이다. 제작진은 120년전 파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거리를 찾아 촬영을 진행하였다. 약 3,000명의 엑스트라와 1,500벌의 의상을 동원하였고, 마차도 약 100대를 동원하였다고 밝혔다. 파리 부유층의 저택, 가구나 식기, 의복, 그리고 중산층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음악을 감상하는 카페 또한 볼거리다. 당시 참정권이 제한되고 대학에 들어갈 수 없는 여성 인권을 엿볼 수 있고, 후반부에 등장하는 기요틴(단두대)은 당시 형벌제도의 일면을 보여준다.

드라마 <바자르의 불꽃> 스틸컷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세 여인의 운명이 극적으로 바뀌었으나, 8부작 미니시리즈가 아니라 시즌 1으로 표기된 만큼 또 다른 시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시즌 2로 이어진다면, 세 여인의 운명이 또 다른 소용돌이를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