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뱅크시를 거리에 스트리트 벽화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는 아티스트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 작품마다 깊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남기는 동시에 예술의 본질적 의미에 질문을 던지는 뱅크시의 행보가 연일 화제의 중심에 있다. 경매에서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분쇄한 이래, 10년 전 작품은 최고가를 경신했고, 본인을 무단 도용하는 것에 반발해 최근엔 팝업스토어도 열었다. 그는 예측불가능해 매력적이고, 언제나 새로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현재 가장 예술적인 아티스트라 이름 붙이기에 손색이 없다. 뱅크시의 최근 이슈를 들여다보자.

뱅크시의 첫 시작은 1990년대 영국 브리스톨이었다. 그래피티를 통해 정치, 사회, 자본주의, 전쟁에 대한 풍자적인 메시지를 담아온 그의 작업은 단숨에 유명해졌고, 돈의 힘에 좌지우지되는 상업적인 미술계를 향한 날선 비판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술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서는 동네의 좋은 벽(wall)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입장료를 낼 필요도 없다.”

BANKSY, 'PULP FICTION'(2004)

거리의 벽에서 나아가 2005년부터 뱅크시의 작업은 더욱 대담해졌다. 거대한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대형 미술관은 그의 메시지를 만인에게 드러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영국 테이트,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걸어두고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는가 하면, 2013년에는 뉴욕 센트럴파크 노점에서 자신의 작품을 깜짝 판매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이렇게 그의 작업은 2차원에서 머무는 벽화에서 한걸음 전진해 반전과 예측불가능함으로 채워진 퍼포먼스의 형태를 띠게 된다.

 

자신의 작품을 '셀프 파쇄'한 예술가

뱅크시는 2018년 10월, 뉴욕 소더비 경매장에서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선다.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인 '풍선과 소녀, Girl with a Ballon'가 140만 달러(한화 약 15억원)에 낙찰되는 순간, 사전에 설치한 장치를 작동시켜 그림을 파쇄시켰다. 이 장면은 전 세계의 뉴스로 중계되었으며, 미술계 내부엔 격렬한 논쟁을, 외부에서는 온갖 종류의 패러디를 양산시켰다. 뜨거운 논란을 뒤로 한 채, 정작 사건의 당사자는 제작기를 담은 유튜브 영상을 공개하며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 또한 창조적인 욕망"(The urge to destroy is also a creative urge)라는 간단한 코멘트를 남겼을 뿐이다. 그의 말처럼 '풍선과 소녀'는 경매장에서 스스로 파괴됨으로써 '쓰레기통 속의 사랑(Love is the Bin)'이란 이름으로 새로이 재탄생했으며, 이제 그는 완전히 유명해졌다.

Banksy, 'Girl with a Ballon'

 

'브렉시트' 벽화 훼손 사건

뉴욕 소더비 파쇄사건 이후, 뱅크시의 이름과 함께 그의 작품들도 논란의 중심에 나란히 섰다. 올해 8월, 뱅크시가 2017년 작업한 벽화가 돌연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벽화는 뱅크시가 브렉시트, 즉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풍자하는 의미로 만든 작품으로, 한 남자가 별 하나를 부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영국 도버항구에 있던 이 작품은 별을 부수는 남자 한 명만 남겨진 채로 전부 하얗게 칠해졌다.

이 사건을 두고 영국의 한 국회의원은 유감을 표명하며 관련 기관의 관리 소홀을 비판했으나, 정작 사건의 당사자는 초연한 듯 하다. 그는 단지 인스타그램에 "사실 나도 브렉시트 당일에 벽화를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생각했다. 누군가 벽화를 아예 페인트로 뒤덮어버린 모양인데, 신경 쓸 필요 없다. 하얀색의 깃발처럼 바뀐 벽화 또한 본래의 의도를 잘 대변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라고 소감을 밝혔다. 평소 자신의 작품에 어떠한 서명도 남기지 않고 저작권도 주장하지 않던 뱅크시의 입장은 이번 사건으로 더욱 명확해졌다.

'풍선과 소녀'로 소더비 경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일년 후, 그의 이름은 또 한번 뉴스에 등장한다. 2009년에 제작한 그의 작품 '위임된 의회'(Devolved Parliament)가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9,879,500 파운드(한화 약 1백46억 원)에 낙찰된 것. 약 2백만 파운드(한화 약 30억원)에 낙찰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5배에 이르는 낙찰가로 신기록을 경신했다.

Banksy 'Devolved Parliament'(2009), 이미지 출처 - 링크

'위임된 의회'는 침팬치로 구성된 영국의 의회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브렉시트 결정 후 혼란에 빠진 무능한 영국 정부를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한 작품이다. 낙찰 소식을 전해 들은 뱅크시는 자신의 SNS에 "내가 아직 저걸 갖고 있지 않아 애석할 뿐"이란 소감을 남겼다.

 

예술은 왜 중요한가?

이미지 출처 - 링크
실제 스토어를 통해 판매한 상품들, 이미지 출처 - 뱅크시 인스타그램

이 프로젝트는 자신의 이름을 무단으로 도용해 수익을 얻으려는 한 회사에 반발해 기획된 것으로, 뱅크시 본인이 상점을 열어 작품을 판매하면 상표권을 보호할 수 있다는 법적 자문을 받아 진행되었다. 이 상품은 온라인을 통해 판매되었는데, 구매자는 ‘예술은 왜 중요한가'란 질문에 답변이 선정되어야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Banksy, 'Nobody likes me'

누군가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경찰이 된다. 누군가는 세상을 좀 더 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파괴자가 된다. -뱅크시

Some people become cops because they want to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 Some people become vandals because they want to make the world a better-looking place.

뱅크시는 아직까지 명확한 신원도, 얼굴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인스타그램과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무대 뒤에 서서 새로운 예술을 끊임없이 실험한다. 예술의 상업화에 반발할수록 연일 최고가를 경신한다는 아이러니를 갖고 있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현세대의 소통방식으로 자신을 만들어 온 영리한 예술가이며,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금 가장 젊은 예술가라 불림에 손색이 없다.

뱅크시는 다시 모두를 놀라게 할 어떤 예술을 갖고 돌아올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Writer

유지우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