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팝은 2000년대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음악 산업이 어제의 음악을 뒤적인 건 항상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요즘 뮤지션들은 유독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를 자료실로 삼아 음악과 뮤직비디오 레퍼런스를 추출하고 있다.

 

Anne Marie <2002>

"너를 안고 있으면 나는 2002년으로 돌아가"

이미지 출처 – ‘Courtesy Photo’

앤 마리는 1991년 영국에서 태어난 싱어송라이터다. ‘2002’는 앤 마리가 그의 10년도 더 된 친구인 에드 시런과 함께 만든 곡이다. 익숙한 런던에서 오랜 친구와 작업했으니, 과거의 기억이 음악의 소재가 되었음은 자연스럽다. 게다가 에드 시런은 지극히 개인적인 어린 시절을 향한 노스탤지어를 노래에 담는데 요령이 있다. 에드 시런의 ‘Castle on the Hill’은 그가 6살 때 형한테서 도망치다가 처음 다리가 부러졌던 기억으로부터 시작한다. 이후 언덕 위의 성 너머로 저물어가는 해를 보던 순간, 15살 사춘기 무렵 친구들과 철없이 몰려다니며 술을 마시던 나날, 첫 키스의 기억, 그리고 어느덧 어른이 돼버린 현재까지 시간의 흐름으로 전개된다. 그는 이 곡에서 빠르고 반복적인 기타 리프를 사용해 과거로 질주하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이는 청중이 평온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애타게 그리워하게 만든다.

Ed Sheeran ‘Castle On The Hill (Billboard Music Awards 2017)’ 가사 번역 영상

‘2002’에는 앤 마리의 11살과 18살 무렵의 추억에 관한 향수가 담겼다. 그는 2002년 그해 여름을 잊지 못한다고 노래한다. 처음 사랑에 빠진 날, 함께 숨이 차도록 노래하던 순간, 낡은 머스탱 위에서 어린 시절 친구들과 춤추고 노래하던 순간을. 에드 시런의 ‘Castle on the Hill’과 비슷한 전개다. 앤 마리는 당시 즐겨 부르던 히트곡의 가사들을 창의적으로 조합해 ‘2002’의 코러스를 완성했다(아래). 그는 2000년대 아카이브를 참고하여 ‘…Baby One More Time’의 의상과 세트를, ‘Bye, Bye, Bye’의 꼭두각시 춤을 ‘2002’의 뮤직비디오에서 재현한다. 당시 음악을 경험한 대중은 저마다 자신의 추억을 떠올린다. Z세대는 살아보지도 않은 영국의 숲 속 낡은 자동차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듯 착각하며 불과 20년 전을 향한 노스탤지어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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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Marie ‘2002’

“Oops(브리트니 스피어스 ’Oops, I Did It Again’), I got 99 problems(제이 지 ’99 problems’) singing bye, bye, bye(엔싱크 ’Bye, Bye, Bye’) Hold up(닥터 드레 ’The Next Episode’), If you wanna go and take a ride with me(넬리 ’Ride With Me’) Better hit me, baby, one more time(브리트니 스피어스 ’...Baby One More Time’)

 

Normani <Motivation>

2000년대 팝스타를 꿈꾸던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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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노르마니가 할머니 집에서 TV를 보고 있다. 소녀는 2000년대의 힙합 & 알앤비 전문 간판 TV 프로그램인 '106 & Park'에 자신이 가수로 등장해 모두의 환호를 받는 꿈을 꾼다. <Motivation> 뮤직비디오의 첫 장면이다.

Normani ‘Motivation (Official Video)’

1996년생인 노르마니는 어린 시절 동경한 비욘세 같은 슈퍼스타의 꿈을 ‘Motivation’에서 이룬다. 그는 2000년대를 휩쓴 비욘세, 브리트니 스피어스, 제니퍼 로페즈, 시아라의 뮤직비디오 속 상징적인 장면을 현재로 옮겨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가며, 뛰어난 외모와 보컬, 춤 실력을 증명한다. 익숙한 과거를 활용한 뮤직 비디오는 금세 화제를 모았고, 노르마니는 올해 Video Music Awards에 초청받아 솔로 무대를 펼쳤다. 2000년대 팝스타 이미지라는 명확한 레퍼런스를 가지니, 피프스 하모니를 떠난 이후 방황하던 그의 솔로 활동 콘셉트도 분명해질 수 있었다. 당대를 풍미한 팝스타들의 계보를 잇겠다는 노르마니의 포부가 넌지시 드러난다.

 

The Marías <...baby one more time>

신진 인디 밴드에게서 느껴지는 과거 재탕의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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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결성된 밴드 The Marías는 어린 시절 한차례 빠졌었던 가수의 음악을 커버했다. 이는 역시나 브리트니 스피어스다. 전 연인을 향한 애절함을 담은 댄스 뮤직을 마리아스는 제목을 대문자에서 소문자로 바꾼 만큼 덤덤하게 재해석했다. 무표정한 감성에 마리아스만의 센슈얼한 음색과 연주가 커버 곡에서도 살아있다. 하지만 대중문화의 중심 조류와 다른 노선을 취하는 인디밴드가 1990년대 후반 가장 유명했던 대중음악 ‘...Baby One More Time’을 커버하다니, 이는 아이러니하다. 이들에게 새로운 음악에 대한 탐험 정신보다 과거에 열렬히 좋아했던 음악을 향한 노스탤지어가 강하게 작용한 것일까?

The Marías ‘Baby One More Time ‘

앤 마리, 노르마니 그리고 마리아스는 과거를 참고한 음악으로 대중을 매혹시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새롭고 창의적인 에너지로 들끓어야 할 음악계가 그 동력을 과거에 쏟고 있는 건 아닌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일은 달콤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건 현재이니 말이다.

 

Writer

소니뮤직 코리아 팝 마케팅 팀에서 근무했음. 월드뮤직, 해외의 서브컬쳐 음악과 인디 음악이 취향입니다. 취향을 살려 아주 작은 해외음악 레이블을 혼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