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등단 3년 차지만 특유의 유머와 글 맛으로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박상영 작가의 신작으로 해당 작품은 영국 출판사와의 출간 계약을 통해 해외까지 진출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가 번역할 예정이다. 성 소수자인 화자 '영'이 대도시에 살면서 겪은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재치 있게 풀어냈다. 때론 유쾌하거나 때론 애달픈 이 연작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릴 수 있 을 법한 영화 3편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커밍아웃과 우정, <러브 사이먼>

<대도시의 사랑법> 첫 번째 에피소드 <재희>는 게이인 주인공 영과 헤테로 여성 재희의 우정을 담았다. 우연히 남성과 진한 키스를 하고 있던 영의 모습을 동급생 ‘재희’가 우연 히 목격하면서 ‘영’은 의도치 않게 그에게 커밍아웃을 한다. “학교 사람들한테 비밀로 해줄 거지?” 영의 부탁에 재희는 돈 없어도 의리는 있다며 ‘쿨하게’ 맞받아친다. 이후 영 과 재희는 절친이 돼 각자의 연애사와 취향,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한다. <대도시의 사랑 법>에서 영이 커밍아웃을 하면서 인생 친구를 만났다면 영화 <러브, 사이먼>은 순서가  좀 다르다. 

<러브, 사이먼>은 고등학생이자 게이인 ‘사이먼’(닉 로빈슨)이 ‘블루’라는 메신저 친구를 만나면서 자신의 성 지향성을 긍정하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당당하고 솔직해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사이먼과 ‘레아’(캐서린 랭포드)는 13년을 알고 지낸 친구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레아가 자신이 게이인 사실을 알게 되면 평범한 일상이 달라질까 봐 사이먼은 쉽게 커밍아웃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 동급생 ‘마틴’에 의해 아우팅을 당하게 되면서 사이먼은 레아와 사이가 어색해진다. 사이먼이 용기를 갖고 레아에게 그간 커밍아웃하지 않았던 이유를 전하고, 레아 역시 사이먼을 혼자 짝사랑하고 있었던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둘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 

 

멀고도 가까운 가족, <레이디 버드>

<대도시의 사랑법> 주인공 ‘영’은 매사 유쾌하고 강인하지만 유독 그가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그의 엄마다. 그는 일찍 남편과 이혼해 억척같이 홀로 아들을 길렀다. 그 과정에서 대학 콤플렉스를 영에게 투영하고 무엇보다 청소년이었던 영이 동성연애를 하자 그를 정신병원에 가두면서 그에게 트라우마를 심어 주었다. 열렬한 기독교 신자인 엄마와 게이인 아들, 말만 들어도 물과 기름일 것 같은 이 관계. 둘은 서로에게 깨물면 아픈 손가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은 재발한 암 때문에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엄마를 지극히 간호한다. 엄마 역시 죽음을 앞두고서 아들을 괴롭혔던 것에 대해 반성한다. “너무 애쓰지 마. 어차피 인간은 다 죽어”라며 끝끝내 아들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아스러지는 엄마 뒤에서 영은 생각한다. ‘인생의 어떤 시점에는 포기해야 하는 때가 온다는 것’을.

‘영’처럼 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 않는/못하는 인물이 있다. 그레타 거윅이 연출한 <레이디 버드>에서 ‘대니’(루카스 헤지스)는 소위 학교 ‘훈남’이다.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은 연극에서 춤과 노래를 멋지게 소화할 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 친절한 대니와 연애를 시작 한다. 대니와 꽤 낭만적인 데이트를 하면서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중 크리스틴은 자신 몰래 동성 친구와 키스를 나누는 대니를 발견한다. 크리스틴을 속이면서 그녀를 가족에게까지 소개한 대니가 괘씸하지만, 그 역시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다. 엄격한 대가족 집 안에서 자란 대니에게 ‘커밍아웃’은 선뜻 용기나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해 줄래?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대니는 크리스틴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며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린다. 

 

뜨겁게 사랑하기, <120BPM>

<대도시의 사랑법>은 사랑 이야기다. 영에게 사랑은 물에 비친 네온사인 불빛처럼 화려하면서도 찰나의 순간이자 동시에 흐르는 물처럼 영원한 것이기도 하다. 지겨운 사랑이 든 숭고한 사랑이든 시시한 사랑이든 영에게 사랑은 행동하는 것과 같다. 상대방과 말 을 나누고 몸을 섞고 기다리고 싸우는 지난한 과정에서 영은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비록 애인의 잘못으로 평생 짊어져야 할 ‘병’을 얻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창적 별명 짓기’로 웃어넘겨야 할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영화 <120BPM>은 1989년 파리를 배경으로 에이즈 확산에 뒷짐 지고 있는 정부와 제약회사와 맞선 ‘액트업파리’ 회원들 이야기를 그렸다. 성 소수자들의 치열한 사회참여와 투쟁에 대한 영화인 동시에 뜨거운 사랑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액트업파리 활동을 하면서 활발하고 감정적인 ‘션’과 과묵한 ‘나톤’은 서로 다른 성격이지만 신뢰와 사랑을 쌓아간다. 그러던 중 후천 면역 결핍증에 걸린 션의 건강이 악화되지만 성소수자들의 안전하고 떳떳한 사랑을 위해 션과 나톤은 투쟁의 끈을 억쥔다. 

 

Writer

망원동에서 사온 김치만두, 아래서 올려다본 나무, 깔깔대는 웃음, 속으로 삼키는 울음, 야한 농담, 신기방기 일화, 사람 냄새 나는 영화, 땀내 나는 연극, 종이 아깝지 않은 책,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