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작업실. 낱낱이 공개되지도, 아무에게나 허락되지도 않아 더욱 매혹적인 곳. 이곳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입었을 때 더욱더 화려하게 피어난다. 세상 어디에도 없고 오직 화가 남경민의 캔버스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곳, 환상 속 풍경 같은 아틀리에로 초대한다.

'모네와 N, 빛과 색채에 대해 이야기하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텀벙, 창 안에서 바라다보다'

공간은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집은 그 사람을 설명하는 가장 내밀하고 섬세한 설명서가 된다.

한평생을 예술에 바친 이들의 그림을 보며 남경민은 생각했다. 대체 당신들은 어떻게 그렇게 열정적으로, 평생 그림을 그렸나요?

몬드리안의 작업실
마그리트의 작업실
'모딜리아니, 생애 끝 잔느를 그리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반 고흐, 프리다 칼로, 모두 다른 시대 속 화가들이었으니까. 허공에서 메아리치던 물음표가 방향을 틀었다. 공간이 사람을 닮는다면, 작업실은 예술가에게 정체성 같은 것 아닐까? 그렇게 해서 남경민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부족한 부분은 상상으로 채워서, 방의 주인이 그곳에서 보냈을 하루하루를 상상하면서.

클림트의 작업실
프리다의 작업실
프리다의 침실

예술가의 작업실, 그 자체로 묘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이곳이 사실 어떤 곳인지 겪어본 사람은 안다. 막막하고 불안한 감정이 짙은 안개처럼 밀려오는데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그렇다고 해서 내팽개치고 나올 수도 없는 곳. 결국 머무르는 사람만 구석으로 떠내려온 섬처럼 외로워진다.

그래서일까. 그림 속 작업실엔 인기척이라곤 없다. 이따금 창문 너머로 햇살이 기웃거릴 뿐, 세상에서 모든 소리가 지워진 것처럼 고요하다. 덕분에 지켜보는 이는 주인 없는 방에 잘못 찾아온 기분이 된다.

고흐의 방
'고흐의 아를르 침실'

텅 빈 방은 그곳에 찾아온 사람을 두리번거리게 한다. 이곳 역시 마찬가지. 이쪽저쪽 살피다 보면 곳곳에 숨은 힌트를 마주치게 된다. 한쪽에 걸린 낯익은 그림, 창밖으로 펼쳐진 익숙한 풍경. 그러니까 알록달록한 사각형이 거울에 비치는 곳은 몬드리안의 욕실일 테고, 베란다 밖으로 수영장이 드넓게 펼쳐진 곳은 호크니의 집일 것이다. 이곳은 누구의 공간일까 궁금해하며 이 방 저 방 드나들다 보면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는 기분이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는다. 이곳은 단순히 예술가의 아틀리에가 아니라 예술가 그 자체란 걸, 지금 나는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신윤복 화방 - 화가 신윤복에 대한 생각에 잠기다'
'초대받은 N-김홍도 화방을 거닐다'
신사임당의 화방

비록 반갑게 맞아주는 이는 없지만, 이곳은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따뜻한 느낌을 풍긴다. 어쩌면 그건 예술가들을 바라보는 남경민의 시선이 품은 온도일지도 모른다. 살아간 시간도 다르고 만나본 적도 없지만 비슷한 무게를 먼저 짊어졌던 이들에게 건네고픈 마음, 거기에서 느껴지는 온도 같은 것.

'경훈각, 풍경을 향유하다'
'프리드리히, 낭만과 조우하다'

어떤 면에서 이 그림들은 이국의 언어로 쓰인 책 같다. 언어를 익힌 이들은 아는 만큼 읽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충분히 젖어들 수 없는 책. 모든 방이 저마다의 은유와 상징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한가운데에 휠체어가 놓인 방은 소아마비와 교통사고의 영향으로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녔던 프리다 칼로의 방, 베란다 너머로 커다란 수영장이 보이는 방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방. 미술 속 이야기를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에겐 차라리 해독할 수 없는 암호에 가깝다. 그런데도 이곳에 계속 머물고 싶어지는 건 구석구석에서 풍기는 따뜻함 때문 아닐까. 문득 오늘은 그림 속 방을 거닐며 이곳에 묻어 있는 예술가들의 흔적을 하나하나 더듬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마티스 , N과 세잔느에 대해 논하다'
'몬드리안에 의한 환영'

 

Writer

언어를 뛰어넘어, 이야기에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마음속에 새로운 씨앗을 심어주고, 새로운 세계로의 통로가 되어주니까. 그래서 그림책에서부터 민담, 괴담, 문학, 영화까지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중. 앞으로 직접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며 더 풍성하고 가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나가기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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