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시에 작업을 한다. 형태, 색깔, 그리고 또한 보이지 않는 것들. 사람들의 과거와 도시를 떠나지 않는 기억들도 끄집어 낸다. 내가 내 그림들을 파리의 어느 계단이나 나폴리의 한 교회 벽에 붙일 때, 내 그림과 그 그림이 삽입되는 시공간 사이에는 상호작용이 생긴다. 이미지는 그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에르네스트 피뇽-에르네스트

니스에서 태어나 파리를 근거지로 삼고, 전 세계를 무대 삼아 작업을 이어가는 거리의 예술가 에르네스트 피뇽-에르네스트(Ernest Pignon-Ernest). 그는 벌써 오래전부터 밤마다 자신의 그림을 도시의 벽에 붙이고 있다. 이 그림들은 한 도시가 품고 있는 특정한 역사적 시기나 사회적 현실, 시적인 탐색을 환기한다. 소외와 고독 같은 감정들, 랭보나 파솔리니 같은 외골수의 천재적 시인들을 파리, 나폴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웨토 등 세계 곳곳에 소환한다.

 

<아르튀르 랭보>(1978)

 

<파블로 네루다>(1981)

 

<마흐무드 다르위시>(2009)

 

<파솔리니>(2015)

 

그는 고급예술을 거부한다. 심지어 좋은 작업을 위해 기본적으로 시용하는 훌륭한 재료나 흔한 색깔마저 마다한다. 게다가 이렇게 완성된 피뇽-에르네스트의 작업은 그의 손을 떠났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길에 방치된 그의 이미지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인식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온전한 메시지가 된다. 강렬한 흑백 대비로 표현된 피뇽-에르느스트의 그림은 장소를 조형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을 자극하고, 감정을 어지럽히거나 일깨우고, 심지어 특정한 상징체계를 심화하기도 한다.

 

<Immigrés(이민자)>(1974)

 

<Sur l’avortement(낙태)>(1975)

 

<그르노블>(1976)

 

<Expulsions(퇴거)>(1978)

 

1990년대 중반, 피뇽-에르네스트는 프랑스 리옹에 있는 생폴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을 만난다. 그리고 2012년 이 교도소가 가톨릭대학교 건물로 리모델링되기에 앞서 그는 다시 이곳을 찾는다. 방문 목적은 “이 벽들 사이에 수감되어, 프랑스 당국 혹은 나치에 의해 고문과 처형을 당한 이들을 생각하고, 이 장소에 새로운 얼굴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이곳에서 자살에 이르게 할 정도로 사람들이 침해당했을 ‘보편적 권리’에 대해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참혹한 풍경이나 혹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을 거친 선으로 그려낸 피뇽-에르네스트의 그림은 때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현대 전쟁, 민족-종교 분쟁, 민주 자유화를 위한 민중 봉기 등 각자 자신의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이들의 몸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지 그의 작품이 묻는다. ‘우리는 과연 현실의 부조리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하고 늙고 소심해졌는가?’ ‘현실의 문제들 앞에서 우리는 그저 방관자인 것인가?’ 말하자면 그의 그림은 시간을 뛰어넘어 역사를 마주하고 기억하게 하는 묘비이자, 우리로 하여금 그들과 연대감을 느끼고 미래를 바꾸게 하는 선언문이다.

작업 중인 피뇽-에르네스트
 
모든 이미지 출처 - 피뇽-에르네스트 홈페이지

피뇽-에르네스트 홈페이지

 

Writer

끊임없이 실패하고도 여전히 사랑을 믿는 사람. 나를 어리석게 하는 모든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것들의 총체가 곧 나임을 믿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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