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Tokyo Weekender

페스티벌을 즐기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날씨라고 했던가? 후지 록 페스티벌(Fuji Rock Festival, 이하 FRF)을 찾은 13만 명의 음악 팬들에게 날씨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은 것 같다. 7월 26일부터 28까지 FRF가 열렸던 나에바 지역엔 3일 내내 비가 내렸다. 하루는 태풍 6호 나리로 인해 상당한 양의 비가 쏟아졌다. 텐트가 물에 잠기고 호우경보가 내려졌지만, 관객들은 우비 한 장만 걸친 채 꿈쩍도 하지 않고 공연장을 지켰다. 필자 역시 우박 같은 비에 몇 벌 남지 않은 옷이 흠뻑 젖었지만, 스테이지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그만큼 도심에서 떨어진 산속에서 진정한 음악 팬들과 함께 공연을 즐기는 것은 궂은 날씨도 이겨낼 만큼 소중한 경험이었다.

© Laurier Tiernan, 이미지 출처 – ‘Fuji Rock Express

양국의 정치적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웃 나라의 페스티벌을 소개하는 것이 머뭇거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은 이를 뛰어넘는 존재가 아닌가. FRF 공연 중 신선하고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아티스트 4명의 무대를 소개한다!

 

SIA

© Yoshitaka Kogawa

시아의 공연은 타이밍이다. ‘No Tour’ 조항을 계약서에 넣을 정도로 시아는 대중 앞에 나서는 일을 꺼린다. 시아는 2017년 <Nostalgic for the Present>투어를 끝으로 긴 공백을 깨고 2019년 유일한 투어 일정으로 FRF를 택했다. 공연 당일, 안전이 우려될 정도로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다. 그런데도 진흙탕으로 변해버린 그린 스테이지엔 5만 명의 관중이 우비 차림으로 시아를 기다렸다.

© Yoshitaka Kogawa

시아는 가발로 얼굴을 가린 채 매디 지글러를 비롯한 무용수들과 무대에 올랐다. 평소처럼 그는 무대 구석에 자리 잡고 매디 지글러가 전면에 서서 퍼포먼스를 펼쳤다. 전광판에는 사전 촬영된 매디와 다른 무용수들의 안무 영상이 상영되는 점이 참신했다. 무용수의 움직임을 잡는 카메라 워킹과 몽환적인 조명이 마치 한 편의 예술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가장 놀라운 건 시아의 보컬이었다. 음원으로 수없이 들어온 목소리지만, 폭발적인 성량과 날카로우면서도 허스키한 보컬로 그가 한 음 한 음 뽑아낼 때마다 온몸엔 전율이 일었다. ‘Cheap Thrills’, ‘Titanium’, ‘Chandelier’ 등 히트곡 후렴 부에선, 마치 광선검으로 공간을 가르는 듯 쭉 뻗어 나가는 시아의 목소리에 관객들은 존경을 담아 환호했다.

 

Janelle Monáe

© Kazama Ocean, 이미지 출처 – ‘Spice Eplus

록 페스티벌인 FRF의 무대는 팝 스타에게도 열려있다. 올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자넬 모네의 ‘Make Me Feel’ 무대는 대중들로 하여금 ‘그래, 우리에겐 자넬 모네가 있었지.’하고 자각하게 했다. 이후 그는 코첼라, 글라스톤베리, 프리마베라와 같은 세계적인 대형 음악페스티벌 라인업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FRF를 찾은 자넬 모네는 차세대 팝 스타는 자신임을 입증하는 듯한 매끄러운 무대를 선보였다.

© MITCH IKEDA

90분 동안, 그는 랩, 춤, 노래, 기타 연주 등 다방면으로 재능을 뽐냈고, 여러 번 의상을 교체하며 무대를 다채롭게 했다. 특히 ‘PYNK’ 무대를 위해 자넬 모네가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상징하는 옷을 입고 등장하자, 관객들 사이에선 자유롭고 당당한 그의 매력에 감탄을 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그야말로 'Young , Wild and Free' 했다.

 

The Comet Is Coming

© KentaKUMEI

FRF의 장점은 영국과 미국 현지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뮤지션을 현지와 거의 같은 속도로 발굴하여 섭외한다는 것이다. The Comet Is Coming은 런던 남부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현지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3인조 일렉트로 재즈 밴드이다. 얼마 전, 유니버설 뮤직 그룹의 대형 레이블인 Impulse!에서 The Comet Is Coming을 영입한 바 있다.

© KentaKUMEI

이들의 공연은 FRF 마지막 날 자정, 유일한 실내 공연장인 레드마퀴에서 열렸다. 필자 역시 The Comet Is Coming을 보기 위해 졸린 몸을 이끌고 레드마퀴로 향했다. 그리고 밴드가 "Summon The Fire"를 연주하는 순간, 강렬한 사운드에 온몸의 감각이 화들짝 깨어남을 느꼈다. 아프로 일렉트로닉 비트에 샤바카 허칭스의 육감적인 색소폰 연주가 얹어진 이들의 음악은 가히 파괴적이었다. 기존의 음악 법칙을 깨부수며 폭주하는 연주는 관객이 그간 쌓아온 음악적 경험이 제로 베이스로 돌아갈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개인적으로 필자에겐 이번 FRF 최고의 공연이었다.

The Comet Is Coming ‘Summon The Fire (6 Music Live Room)’

 

Nicola Cruz

자연 속에 자리한 FRF의 16개 스테이지를 찾아 다니는 재미는 어떤 페스티벌과 비할 수 없다. 일본 최장 곤돌라인 드라곤돌라를 타고 해발 1,500미터를 올라가면 데이드리밍 스테이지가 펼쳐진다. 프랑스 출신의 에콰도르인 니콜라 크루즈가 이 대자연을 배경으로 DJ 셋을 펼쳤다.

© Masami Yasue

안데스 산맥이 지나는 에콰도르의 민속적인 소리와 전통을 끌어들인 그의 셋은 지역적이고 신비롭다. 그는 이날 일본의 전통 음악을 활용하며 공연 장소에 대한 의식 또한 강하게 보여줬다. FRF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파노라마 절경에서 소수정예로 니콜라 크루즈의 셋을 즐기는 것은 그 방법을 완벽히 포착한 것이었다.

FUJI ROCK FESTIVAL '19 : DRAGONDOLA

 

후지 록 페스티벌 홈페이지

 

Writer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신샘이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