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시대의 산물이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공감할 무언가를 담아내지 못하면 광고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나온 당시에는 이목을 끌지 못했지만 먼 훗날 명작으로 기억되는 광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에 이 순간에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에 열광하는지 광고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19년 칸 광고제의 그랑프리 수상작 27개 중 4개의 캠페인을 살펴보자. 89개의 나라에서 건너온 31,000개의 캠페인들 중 무엇이 살아남았는지 살펴보다 보면 그 캠페인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특히 2019년 현재 우리가 가장 주목할 것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하여.

 

Direct, Mobile, Titanium 부문 그랑프리 수상작, 버거킹의 <Whopper Detour> 캠페인

여기, 버거킹 와퍼를 단돈 1센트(약 10원 정도)에 살 수 있는 쿠폰이 있다. 치솟는 물가에 한 끼 식사만 해도 얼마인데 10원이라니. 이런 쿠폰을 마다할 리가 없지. 한데 이 쿠폰 어딘가 좀 특이하다. 맥도날드 매장 앞에서만 다운받을 수 있단다. 잠깐, 버거킹 쿠폰인데 맥도날드에 가야 쿠폰을 다운 받을 수 있다고? 와퍼를 10원에 먹기 위해 맥도날드 매장을 들러야 한다니. 버거킹의 참으로 발칙한 도발이 아닐 수 없다.

버거킹의 인쇄광고
버거킹의 맥와퍼 제안 인쇄광고

맥도날드를 향한 버거킹의 도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버거킹을 찾은 맥도날드의 마스코트 로날드를 보여주는 유명한 인쇄광고부터 UN 세계 평화의 날을 맞이하여 단 하루만 빅맥과 와퍼를 합친 ’맥와퍼’를 팔자는 공개 제안까지. 이번에는 그 도발로 상까지 받았다. 무려 칸 광고제 그랑프리다. 게다가 그랑프리가 무려 세 개. 버거킹의 도발에 늘 의연하게 대처하던 맥도날드라 해도 이번 수상은 속이 좀 쓰릴 듯하다.

버거킹의 <Whopper Detour> 캠페인 설명

이번에 수상한 버거킹의 캠페인 제목은 <Whopper Detour>.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버거킹 앱을 다운받는다. 그러고 나서 미국 전역의 14,000개의 맥도날드 어디든 가서 매장 반경 600피트(약 183m) 안에서 버거킹 앱을 실행한다. 그러면 와퍼를 1센트에 살 수 있는 쿠폰이 열린다. 가까운 버거킹 매장에 가서 와퍼를 구매한다. 끝. 그리 어려운 기술도 아니오, 복잡한 절차도 필요 없는 단순한 캠페인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이 캠페인의 반향은 엄청났다. 9일 동안 버거킹 앱 다운로드 건수가 150만 건이 넘을 정도였으니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의 전체 다운로드 순위에서 버거킹 앱이 1위를 차지하는 건 당연한 수순. 그뿐인가. 캠페인이 진행되는 동안 버거킹 앱을 통한 매출은 3배나 증가했다. 이 캠페인의 1차 목표였던 버거킹 앱의 다운로드 수 늘리기는 확실한 성공을 거둔 것이다.

‘How to do the Whopper Detour’

이쯤 되면 버거킹에게 맥도날드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가 아닐까 싶다. 버거킹이 이렇게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건 맥도날드가 일인자로서 이 땅에 존재하는 덕분이니까. 아무리 공격받아도 흐트러지지 않는 일인자의 면모를 뽐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맥도날드에도 버거킹이 고마운 존재일 지도. 버거킹과 맥도날드. 진정한 의미의 공생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엔터테인먼트, 아웃도어 부문 그랑프리 수상작, Nike의 <Dream Crazy>캠페인

Nike의 <Dream Crazy> 메인광고

나이키의 슬로건 ‘Just do it’이 탄생한 지 벌써 30년. 슬로건 하나가 이렇게 길게 생명을 유지한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 그래서 나이키는 새로운 캠페인을 런칭하기로 한다. 장수 슬로건 ‘Just do it’의 서른 살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캠페인을. 나올 수 있는 광고 캠페인은 사실 뻔해 보였다. 하지만 나이키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불가능해 보여도, 무모해 보여도 일단 해보자. 그게 바로 Just do it의 정신 아니던가. 나이키는 논란이 가득 담긴 캠페인을 세상에 내놓는다. 나이키가 드디어 미쳤다고 할만한 그런 캠페인을.

콜린 캐퍼닉의 퍼포먼스

이 캠페인의 메인 모델은 다름 아닌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 2016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이었던 콜린 캐퍼닉은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의미의 퍼포먼스를 한다. 경기 시작 전 무릎을 꿇고 국가 부르는 것을 거부했던 것.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불거진 인종차별 논란에 대한 일종의 시위였다. 당시 여러 스포츠 선수들이 그의 퍼포먼스에 동참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퍼포먼스를 지지했지만 지지하는 사람들만큼의 또 수많은 사람이 콜린 캐퍼닉을 비난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채 2017년 3월 소속팀과의 계약이 만료된 콜린 캐퍼닉. 그를 원하는 팀은 단 한곳도 없었다. 그의 선수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엄청난 대가를 치룬 퍼포먼스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8년 나이키가 그를 메인 모델로 발탁한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닌 ‘Just do it’ 30주년 캠페인에 말이다. 거대하게 자리잡은 콜린 캐퍼닉의 얼굴은 그 자체로 강력한 메시지였다. 거기에 더 강력한 카피. “Believe in Something. Even if it means sacrificing everything. (신념을 가져라.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할지라도)”까지.

Just do it 30주년 나이키의 <Dream Crazy> 캠페인
나이키의 캠페인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콜린 캐퍼닉의 퍼포먼스조차도 사회적으로 얼마나 논란이 많았는데 콜린 캐퍼닉을 모델로 쓰다니. 사람들은 나이키가 드디어 미쳤다고 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캠페인 제목도 ‘Dream Crazy’ 아니던가. 광고가 세상에 나오고 나이키 운동화를 불태우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나이키를 비난하는 데 대통령까지 동참했다. 나이키의 주가도 폭락했다. 하지만 나이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나이키의 메시지를 비난하는 사람들만 있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수많은 사람이 나이키를 지지하고 나섰다. 유명 스포츠선수도 있었고, 배우도 있었다. 나이키 제품을 사는 것으로 자신의 지지를 보여주는 수많은 소비자들 또한 있었다. 오죽하면 나이키의 온라인 판매량이 31%나 증가했겠는가? 순식간에 폭락했던 주가도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칸 광고제 그랑프리 수상까지. 나이키의 미친 꿈은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해도 일단 해본(Just do it) 결과였다.

사실 이 모든 게 나이키의 무모한 용기에서 비롯된 건 아니다. 나이키가 서 있는 그곳은 냉혹하기 짝이 없는 비즈니스의 세계. 나이키는 콜린 캐퍼닉의 퍼포먼스에 지지를 보냈던 대부분이 밀레니얼 세대라는 것에 주목했다. 고객의 일부를 잃는다 해도 이 밀레니얼 세대를 나이키의 열혈 고객으로 만든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 어쩌면 가장 큰 용기는 치밀한 전략으로부터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Dream Crazy> 캠페인 설명

 

PR 부문 그랑프리 수상작, The Female Company의 <The Tampon Book> 캠페인

<The Tampon Book> 홍보영상

우리가 사는 물건에는 세금이 붙는다. 그리고 그 세금은 물건이 무슨 용도인지에 따라 다르게 붙는다. 그렇다면 여성 생리용품인 탐폰은 사치품일까 필수품일까? 어느 정도의 세금이 붙어야 적당할까? 독일의 The Female Company는 탐폰에 붙는 세금에 주목했다. 탐폰에 붙는 세금은 무려 19%. 캐비어, 유화, 트러플, 책 등에 붙는 세금이 7%인 것을 감안할 때 엄청난 세율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1963년 정해진 대로 그저 5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을 뿐. 세율을 정한 정치인은 남자였고, 그에게 탐폰은 사치품이었던 것.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을 테니까. 50년 간 여성들의 목소리가 정치에서 배제된 결과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까?

The Tampon Book

The Female Company는 아이디어를 낸다. 법이 그렇다면 법을 역이용해보자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탐폰북’. 책의 세율은 고작 7%니까. 탐폰을 책으로 출시해버리자. 엄밀히 말하면 책 안에 탐폰 15개를 넣어서 파는 것이기는 하지만. ‘탐폰북’에는 15개의 탐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리의 역사는 물론 생리에 대한 금기까지, 생리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담은 46페이지 분량의 글과 삽화도 실려있다. 특히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사회운동가인 알리카 레우거(Alica Läuger)와 아나 커벨로(Ana Curbelo)가 작업한 삽화가 인상적이다. 가격은 3.11유로. 100권의 책은 독일의 주요 정치인에게 보내졌다.

결과는? 당연히 엄청났다. 탐폰북 첫 번째 인쇄물은 하루 만에 완판. 두 번째 인쇄물은 무려 10,000부가 팔렸다. 탐폰의 세율을 7%로 낮추자는 청원에는 17만 명이 넘는 서명이 모였다. 독일 법무위원회는 탐폰의 세율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물론 아직 법이 바뀌지는 않았다. 하지만 50년 동안 아무도 문제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이토록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칸 광고제에서 그랑프리까지 수상했으니 이보다 더 효과적일 수가! 이 캠페인을 보면서 문득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위생용품의 세율이 어떨까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마 다른 나라에서도 이 캠페인을 접했다면 비슷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을 것이다.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The Tampon Book> 캠페인 설명

 

Grand Prix for Good 부문 그랑프리 수상작, March for Our Lives의 <Generation Lockdown> 캠페인

<Generation Lockdown> 영상

마지막으로 충격적인 영상 한 편을 소개한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것은 어느 평범한 회사. 총기 난사 사건에 대비해 예방책을 배워보는 자리. 총기 사건 예방 교육에 관한 전문가를 초빙하는데, 그 전문가가 다름 아닌 10대 소녀다. ‘총기 사건 예방 교육의 전문가인 10대 소녀’. 이것이 이 영상의 핵심이자 전부. 가장 충격적인 지점이다. 10대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총기 난사범으로부터 어떻게 피해야 하고 어떻게 숨어야 하는지 차근차근 알려준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 등장하는 그에 맞춰 훈련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들. 실제로 미국에서는 학교 총기 난사 사건에 대비해 아이들을 데리고 정기적으로 예방교육과 훈련을 한다고 한다. 학교에서 이러한 훈련을 받아봤다고 답한 아이들은 무려 95%. 화장실 변기 위에 올라서 있는 아이, 책상 밑에 숨어 입을 틀어막고 있는 아이 등 훈련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찌나 서글픈지. 화재나 지진과 마찬가지로 총기난사가 재난 훈련의 한 종류가 되었다는 사실이 참 슬프게 느껴진다.

지면 관계상 소개하지 못한 다른 그랑프리 수상작들이 아쉽다. 혹시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나머지 그랑프리 수상작들을 볼 수 있는 링크도 함께 공유한다. 장애인들도 IKEA의 가구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낸 IKEA의 ‘ThisAbles’ 캠페인이나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관해 묵직하게 전하는 뉴욕타임즈의 “The Truth Is Worth It” 광고, 재기발랄하게 Fortnite 게임을 활용한 웬디스의 “Keeping Fortnite Fresh” 등도 흥미롭다.

 

Writer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카피 쓴다는 핑계로 각종 드라마, 영화, 책에 마음을, 시간을 더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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