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십 번 무수한 이들의 뒷모습을 나는 본다. 푹 수그린 뒷모습, 누군가를 기다리는 뒷모습, 고된 노동에 지친 뒷모습 같은 것. 그것은 언제나 내게 일정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Tim Eitel

 

닿을 수 없는 뒷모습

앞모습은 타인을 인식하는 쉬운 장치가 된다. 우리는 많은 시간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점검한다. 앞모습은 철저히 통제 가능한 시선의 영역 안에 있지만, 뒷모습은 그 영역 밖에 존재한다. 툭 떨어지는 목덜미와 내려앉은 머리카락, 살짝 굽은 어깨는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나의 또 다른 모습이 된다. 뒷모습은 타인의 시선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곤 한다.

ⓒTim Eitel

독일에서 활동하는 작가 팀 아이텔은 현대인의 고독을 그리는 대표적인 화가다. 단색 배경이 주조를 이루는 그의 그림 속에는 먼 곳을 응시하는 사람의 뒷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한 캔버스 안에 함께 있어도 온전히 홀로 존재하는 그들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공허함을 느끼게 한다.

ⓒTim Eitel
ⓒTim Eitel

여백이 짙게 배어있는 팀 아이텔의 그림은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로먼 크르즈나릭 <역사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최근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책 표지로 쓰였다. 닿을 수 없는 타인의 뒷모습, 그 간극의 슬픔을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신형철의 글은 팀 아이텔의 그림을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Tim Eitel

 

유한한 존재의 뒷모습

영국의 사진가 리처드 리어로이드(Richard Learoyd)는 거대한 규모의 초상 사진 작업을 한다. 남성, 여성, 노인 구별 없이 그의 카메라 앞에서는 그저 피부와 뼈를 가진 보통의 인간이 된다. 그는 뒷모습을 담은 사진에서도 대상 자체의 표면성을 드러내는 것 자체에 관심이 많다.

ⓒ Richard Learoyd
ⓒ Richard Learoyd
ⓒ Richard Learoyd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진 속 인물들은 푸른 빛 속에서 오직 자신의 신체를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이 사진가는 한 인간의 비밀스럽고도 외로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아낸다. 팀 아이텔이 도시와 군중 속 현대인의 고독을 그렸다면, 리처드 리어로이드는 몸의 물질성을 통해 유한한 존재의 근원적인 숙명을 담아낸다. 언젠가는 결국 소멸해 사라져버릴 인간의 뒷모습으로.

ⓒ Richard Learoyd
ⓒ Richard Learoyd

타인을 구체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앞모습과 달리, 인간의 뒷모습은 거의 비슷한 형태를 가진다. 그러므로 그림 속 뒷모습에는 나의 모습을, 때론 곁에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쉽게 이입할 수 있다. 그러한 보편성에서, 우리는 관계에서 벗어나 철저히 홀로 존재하는 한 인간의 짙은 그림자를 본다. 그것은 고독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Writer

유지우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