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출신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 1957.4.29~)는 패션계의 이단아 혹은 혁명가라 불리며 전 세계 패션애호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비록 그는 현재 종적을 감추어 버렸지만, 과거의 그가 보여준 독특한 행보는 기존의 패션계가 고수하던 스타일과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추구함으로써 늘 새로운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디자이너에게 집중되던 스포트라이트와 유명세를 과감히 포기하고 모델의 외모와 스타성에 의지하기도 거부하며, 오직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의 성과만으로 외부와 소통하길 원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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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워프 왕립 미술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마르지엘라는 1988년, 동업자인 Meirens와 함께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Maison Martin Margiela, 이하 MMM)라는 의류 브랜드를 프랑스에 설립한다. 회사의 위치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도 그는 유별난 결정을 내렸는데, 도심이나 같은 계통의 부티크들이 모인 곳보단 소외 계층이 주로 거주하는 파리 외곽의 철도 공장 지역을 선택했던 것이다. MMM은 1988년 여성복 컬렉션으로 데뷔함과 동시에, 그 이듬해 예술성과 독창성을 심사기준으로 하며 패션계의 칸(Cannes)이라 불리는 ANDAM상을 받게 된다. 브랜드로서의 가치와 가능성을 인정받은 MMM은 점차 남성복은 물론 쥬얼리와 향수, 전시와 건축까지 그 영역을 확장했다. 또한 마르지엘라는 유서 깊은 프랑스의 브랜드 에르메스 HERMES의 헤드 디자이너까지 함께 맡게 되며 다방면으로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좌) Maison Martin Margiela A/W (1996~1997), (우) Hermès A/W (1998~1999), 이미지 출처 - 'Dazed'

 

익명의 존재들

그러나 마르지엘라는 이런 성공 궤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를 세상에 드러내기를 극도로 꺼렸다. 그는 모든 인터뷰와 언론 노출을 거부했으며, 심지어 쇼의 피날레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델들을 앞세우고 쏟아지는 박수 세례를 받으며 걸어 나오는 다른 디자이너들과는 달리 그는 개인의 업적보단 팀 전체를 중시하는 태도로 작업에 임했다. “메종 마르틴 마르지엘라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낸 성과입니다.” 그는 이런 메시지와 함께 급진적인 성과의 공을 디자인팀 모두에게 돌렸다. 이런 익명적 태도는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켰고, 팬들은 실체 없는 그를 선망했다. 그리고 여전히 베일에 싸인 존재로서 모두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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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We Margiela> 포스터. 이미지 출처 - 'We Margiela'

이런 익명성은 마르지엘라 뿐만 아닌, MMM이란 브랜드 자체의 성격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비롯하여 모델 역시도 철저한 익명적 존재이길 바랐다. 1995년의 컬렉션은 그의 그런 요청이 반영된 결과 중 하나다. 모델들의 얼굴을 실크로 감싼 뒤 쇼 위에 세웠고 그들의 외모가 가진 영향력과 권력을 전부 무용하게 했다. 그건 오직 의복으로만 평가받길 원했던 마르지엘라의 자신감과 신념을 바탕으로 한, 과감한 연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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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Margiela Fall <READY-TO-WEAR> (1995), 이미지 출처 - 'V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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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으로서의 의복

MMM은 이런 유익한 시도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하며 패션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98년엔 모델을 쇼에 세우는 대신 연구원처럼 흰 가운을 걸친 사람들이 컬렉션 의상을 걸어 둔 옷걸이를 손으로 직접 들고 무대 위를 걷도록 만들었다. 몸에 착용하기 이전의 옷 자체, 몸을 위한, 몸에 의한 의복이 아닌 의복 자체의 독립적 위치를 드러내고자 한 기발한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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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Margiela Spring <READY-TO-WEAR> (1998), 이미지 출처 - 'Vogue'

그렇다면 몸을 거부하는 옷은 어떨까. 2009년, 마르지엘라가 MMM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패션계에 퍼졌고, 그의 마지막 작업일지도 모를 이 해의 컬렉션은 자연스레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이미 95-96년 얼굴을 가린 모델들을 세웠던 적이 있던 마르지엘라는 그의 마지막 컬렉션 역시도 베일과 가발로 얼굴을 가린 익명의 모델들을 세웠다. 하지만 그 모습은 살아있는 모델이기보단 움직이는 마네킹에 가까웠고, 생명력이 휘발된 무대를 지켜보며 섬뜩함까지 느꼈다는 증언도 나왔다. 반면 가장 마르지엘라다운 쇼였다는 극찬도 있었다. 이처럼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이미 그가 생각하는 의복의 개념은 이미 인간의 ‘몸’과의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였으며, 오히려 시각과 공간, 확장된 차원의 영역까지 아우르며 한계를 뛰어넘는 탈주체적 행위로까지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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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tin Margiela Spring <Haute Couture> (2009), 이미지 출처 - 'Vogue'
이미지 출처 - 'WMA Magazine'

 

해체주의적 발상과 표현

마르지엘라는 기존의 관습과 규칙을 파괴하는 해체주의 패션의 계보를 이어 나갔다. 이미 주어진 미의 기준과 이상적인 비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이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실험을 반복했다. 앤트워프 재학 시절, 뛰어난 테일러링 실력을 인정받았던 그가 어깨 패드를 외부로 노출하거나, 스티치를 마감하지 않거나, 옷 전체의 안과 밖을 반전시켜 혼동을 조장하였던 건 전부 ‘미완성’을 완성하기 위한 의도된 연출이었다. 재활용, 재결합, 복제와 같은 키워드 역시도 그의 이런 발상을 실현하는 도구로 선택되었다.

그의 이런 탈주체적 혁명은 의류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로고와 레이블에서까지 시도되었다. MMM의 탄생 이후 1997년까지 그들의 상징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화이트 레이블과 태그뿐이었다. 화이트는 MMM의 출발점임과 동시에 지향점인 익명성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색이었다. 또한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되거나 규정되길 원치 않으며, 피상적 권위로부터 해방되길 원했던 그들의 요청과 가장 닮아 있는 선언이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 <We Margiela> 중 캡쳐
MMM의 시그니처 타비부츠, 이미지 출처 - 링크

마르지엘라는 MMM의 2009년 컬렉션 이후 돌연 은퇴를 선언했고, 끝까지 자신의 정체를 세상에 밝히지 않았다. 덕분에 그의 신비로운 행보만이 전설처럼 남았다. 그러나 최근 그가 찍힌 몇 장의 사진들과 MMM의 대한 다큐멘터리 <We Margiela>가 공개되면서 현재 우리는 그 전설의 뒷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주하게 되었다. 가장 세속적인 패션 업계에서 가장 인간적인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외쳤던 패션계의 혁명가이자, 체제에 저항하고 끊임없는 혁신을 도모한 마르지엘라. 그가 선보일 또 다른 나라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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