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사랑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것이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사랑이라면 더욱. 그것은 한여름의 지독한 열병처럼 습했고, 위험했고, 동시에 거부할 수 없이 찬란했다. 그들은 서로의 작품의 첫 관객이자 뮤즈로, 금방이라도 나락으로 떨어질 생의 유일한 지지자가 되곤 했다. 이 사랑의 결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형태와 냄새를 지녔다. 각자의 존재가 서로를 무한히 완성시킨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조지아 오키프,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스티글리츠와 오키프, Photographed by Cecil Beaton, Vogue, circa 1945 Via ‘vogue

만개한 꽃, 동물의 뼈, 자연의 풍경을 캔버스에 거대하게 확장해 자신만의 회화적 언어를 구축한 미국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 오키프와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관계는 그가 그린 꽃처럼 관능적인 동시에 치명적이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텍사스에서 미술을 가르치던 젊은 예술가 조지아 오키프는 홀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화단에서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때 그의 친구가 뉴욕에서 화랑을 운영하던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에게 오키프의 목탄 드로잉을 보여주었고, 이에 단숨에 매료된 스티글리츠는 자신의 화랑에 그의 그림을 전시하게 된다. 그것이 둘의 첫 만남이었다.

스티글리츠, ‘Georgia O’Keeffe’(1918)

둘은 자주 함께 있었다. 오키프는 그림을 그리고, 스티글리츠는 연인의 초상을 담았다. 눈과 입으로 만들어내는 표정과 물결치는 머리카락과 툭 떨어지는 목덜미가 주로 담겼다. 사진 속 오키프는 과장된 제스처나 천진난만하게 미소짓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카메라를 바라보며 자신의 할 일을 했다. 스티글리츠는 그 사진들을 모아 뉴욕 앤더슨 갤러리에서 전시를 개최한다. 1921년 겨울이었다. 관객과 평론가는 에로틱하며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사진에 한 여성 예술가의 민낯과 애처로움이 담겨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오키프는 그렇게 한 유명작가의 대담하고도 외설적인 피사체로 더욱 유명해졌다.

스티글리츠, ‘Georgia O'Keeffe — Neck’(1921)
스티글리츠, ‘Georgia O’Keeffe: A Portrait’(1918)

1915년부터 1946년까지 오키프와 스티글리츠는 25,00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고, 이는 서로의 예술을 말하는 생생한 목소리가 된다. 물론 둘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오키프가 유명 사진가를 발판삼아 성공하려 한다는 소문도 항간에 나돌았다. 그러나 그들은 관계를 이어갔고, 이내 오키프는 미국 예술계에 우뚝 섰다.

오키프, ‘Black Iris’(1926) Via ‘metmuseum

이 사랑의 서사는 시간이 흐르며 점차 바닥을 내보였다. 스티글리츠에게 도로시 뉴먼이란 이름을 가진 새 연인이 생긴 탓이었다. 오키프는 자주 괴로워하며 고통 속에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결국 스티글리츠를 떠나 뉴멕시코에 새로운 정착지를 마련한다. 오키프는 그곳에서 타인에게 종속받지 않는, 온전히 자신만의 회화적 언어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그는 말년으로 갈수록 사랑보다 자신만의 예술에 깊이 천착한다. 그리고 더이상 스티글리츠의 사진 속 여인처럼 애처롭지도, 비밀스럽지도 않았다. 한때 열렬한 사랑을 맹세했던 연인을 떠나 오키프는 자신의 자리에서 예술을 완성한다. 그 누구도 아닌 온전한 제 모습으로.

 

잭슨 폴록, 리 크레이스너

잭슨 폴록과 리 크레이스너, 폴록의 스튜디오에서, East Hampton, 1950 Via ‘pkf

20세기 예술계에 거침없는 한 획을 그은 잭슨 폴록.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고, 가난은 평생에 걸쳐 극심한 후유증을 남겼다. 알코올 중독과 비뚤어진 태도는 언제나 제 3자가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규정하도록 만들었고, 변두리에 서 있게 했다.

술에 의존한 채 치열하게 그림만 그리던 이 거친 예술가의 곁에 어느 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이름은 리 크레이스너(Lee Krasner). 잭슨 폴록과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렸던 그는 금세 이 마초 같은 남자의 연인이 되었다. 크레이스너는 자신의 작업을 중단하고 폴록을 향한 무한한 지원과 지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잭슨 폴록, ‘Number 31’(1950)

그는 폴록의 알코올 중독 치료를 시작하고, 유명 갤러리스트에게 폴록을 적극적으로 소개했으며, 작업을 위한 최선의 환경을 마련했다. 그가 무너질 때면 자신을 일으키듯 그를 세웠다. 마치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주길 바라는 듯이. 폴록의 그림은 페기 구겐하임에게 닿았고 결국 폴록은 1943년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의 ‘액션 페인팅’은 미술계에 한 차례 거대한 파문이 일으켰다. 반항적이고 폭력적이고 괴이한 성격은 ‘예술가적 기질’이란 미명 아래 감춰졌고 스타 작가의 신화에 더욱 불을 당길 뿐이었다.

잭슨 폴록 Via ‘wide walls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모든 이의 결말이 그러하듯이, 둘의 사랑에도 점차 균열이 생긴다. 폴록의 여성 편력은 더욱 극심해졌고, 그는 술 없이 단 몇시간도 견디지 못했다. 결국 크레이스너는 폴록의 곁을 떠나 새 삶을 시작하게 된다. 자신의 유일한 지지자였던 크레이스너가 떠나자 마치 균형을 잃어 붕괴하는 다리처럼 폴록의 삶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폴록은 44세에 생을 마감했다. 술에 취한 채 도로 위에서. 맹목적인 헌신으로 상대를 정상에 세운 그들의 관계는 기이하고도 격정적이었고, 마지막은 절망적이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울라이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 1976 Via ‘art forum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 아티스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난 아브라모비치는 자신의 신체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어 인간의 극한을 실험한다. 세계 각지를 떠돌며 공연하던 그는 우연히 독일의 퍼포먼스 예술가 울라이(Uwe Laysiepen)를 만난다. 둘은 12년 동안 온 세계를 걷고 자고 여행하며 그들의 몸으로 예술을 한다. 두명의 몸은 서로의 존재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 ‘Rest, energy, 1980’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 ‘Two Headed Body, 1975’

나체의 모습으로 반대지점에서 달려나가 충돌하는 ‘Relation in space, 1976’,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상대의 심장을 관통해버리는 ‘Rest, energy, 1980’, 머리카락으로 두 개의 머리를 가진 한 명의 인간을 표현한 ‘Two Headed Body, 1975’.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는 오직 둘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을 한다. 그들은 이별조차 예술로 선언한다. 2,700km에 달하는 만리장성의 끝 지점에서 각자 걸어와 중간지점에서 만나는 마지막 퍼포먼스를 통해 그들은 함께 한 긴 시간의 종지부를 찍는다.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는 각자의 자리에서 예술을 지속한다. 아브라모비치는 삶이 곧 고통이라는 듯 끊임없이 한계 속에 자신을 밀어 넣었다. 그는 2010년 뉴욕 MoMA에서 3개월 간의 퍼포먼스를 벌인다. ‘예술가는 현존한다(The artists is present), 2010’란 이름 아래 벌어진 이 퍼포먼스는 매일 7시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관객과 눈을 맞추는 행위예술이다.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지 않고 어떤 표정도 짓지 않은 채 타인을 응시하는 일은 736시간 30분동안 계속되었다.

아브라모비치 ‘The Artist Is Present, 2010’ Via ‘visiodivina

그는 눈을 감았다. 긴 침묵과 응시의 시간을 앞두고 가만히 눈을 떴을 때 그가 있었다. 22년만이었다. 한때 예술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벌이던 동료 예술가이자, 무대 뒤에서 숨죽인 응원을 던진 연인이었고, 그 후로 수만 번 이름을 되뇌었을 그 사람은 자신만큼 늙은 모습으로 그 앞에 앉았다. 순간 영원 같은 침묵의 언어가 주변을 둘러쌌고, 다 괜찮다는 듯 남자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그렇게 머물다 떠난다. 아브라모비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아브라모비치, ‘The artist is present’

헤어짐을 사랑의 종말이라 누군가는 말하지만, 사랑의 순간은 시간이란 바람 속에 영원히 흔적으로 남는다. 몸 아주 깊숙한 곳에 소리 없이 응어리진 그 흔적은 물리적 실체 없이도 제 안에서 비로소 완결된다. 오랜 후에 비로소 깨닫는다. 그 흔적은 웅크린 죄수처럼 숨죽이다 먼 훗날 또 다른 형태로 자신을 덮쳐온다. 아직도 미완으로 남았음을 그때야 안다.

 

Writer

유지우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