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서 매시업(mashup)은 둘 이상의 다른 곡들을 알맞게 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전에 소개했던 ‘사운드 콜라주’나 ‘플런더포닉스’ 등 샘플링 바탕의 장르들과 같은 선상에 있긴 하지만, 굳이 형식적으로 비교하면 원본을 한 번에 알아차리기 힘든 다른 음악에 비해 매시업은 조합하는 곡들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따라서 매시업은 해체와 재조합이라기보다, 많은 노래를 새롭게 접합하거나 연결하는 과정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1990년대, 2000년대 초반을 풍미한 팝스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개러지 록밴드 스트록스

매시업이 일종의 창조적 방법론으로 확실히 정립된 건 2000년대 초반부터다. 그만큼 대중음악사에 합칠 수 있는 곡들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21세기가 막 시작되었을 때,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스트록스를 합친 “A Stroke of Genie-us”이 매시업 열풍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스트록스의 개러지 록 연주에 아킬레라의 팝 소울 노래를 합친 이 곡을 필두로 영미권 대중음악에서 각기 다르게 떨어져 있는 노래들을 불러와 다양하게 매시업하는 시도들이 많아졌다.

이후 2000년대 중반에는 비틀즈의 <The Beatles>, 이른바 ‘화이트 앨범’과 제이 지의 <The Black Album>을 합친 데인져 마우스의 <The Grey Album>처럼 클래식 록과 당대의 힙합을 섞는 경우가 꽤 많아졌다. 걸 토크처럼 아예 수많은 곡을 샘플링하며 매시업 자체로만 음반을 만드는 경지까지 닿기도 했다.

비욘세부터 퀸까지 수많은 곡을 매시업한 걸 토크의 대표곡 ‘What It's All About’

인터넷이 발달하고 유튜브에 대중음악 데이터베이스가 더욱더 쌓이면서, 매시업은 유튜브를 등에 업고 널리 퍼져 나갔다. 한 해에 유행했던 인기곡들을 메들리처럼 길게 매시업한 ‘Year End Mashup' 류의 영상들이 대표적인 형식이다. 그중 Daniel Kim의 Pop Danthology 시리즈가 유명하다.

인기 매시업 곡 ‘Pop Culture’로 데뷔한 마데온

한편 런치패드 매시업(Launchpad Mashup)이라고 부르는 매시업이 등장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시작은 2011년에 프랑스에 사는 17살 위고 르끌레르가 유튜브에 ‘Pop Culture’라는 곡을 올리면서부터였다. 39개나 되는 많은 곡을 런치 패드로 매시업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은 유튜브의 바이럴 히트가 된다. 이후 르끌레르는 ‘Pop Culture’ 덕에 마데온(Madeon)이라는 이름의 유명 DJ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후에도 이러한 매시업 기법을 그의 곡들에서 써먹기도 한다. 이를 기점으로 비슷한 맥락에서 수많은 곡을 가져와 런치 패드로 매시업하는 사례들이 많아졌는데, 150개나 넘는 샘플들을 가져와 매시업한 숀 와사비(Shawn Wasabi)의 ‘Marble Soda’나 일비스(Ylvis)의 ‘The Fox’를 공동 프로듀싱한 것으로 알려진 M4SONIC의 ‘WEAPON’이 대표적이다.

현재 거의 50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마데온의 ‘Pop Culture (live mashup)’

다른 한쪽에서는 영미권 인터넷에서 발달한 수많은 밈 중에서도 음악 기반의 밈들을 매시업하는 경우들도 생겨났다. 이는 대부분 인터넷의 인사이드 조크들을 모조리 합치는 거대한 장난과도 같았지만, 오히려 유튜브는 밈의 지위에 오른 곡들의 시대와 장르와 국적 등을 전혀 상관하지 않았던 덕에, 넓은 범위에서 수많은 곡을 자유롭게 합쳐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유튜브를 바탕으로 생겨난 이 거대한 ‘밈-매시업’은 먼저는 무한한 농담에 가까웠지만, 생각해 보면 그 각기 다른 ‘밈-뮤직’들이 깔끔하고 자연스럽게 합쳐지며 한 덩이가 되는 매우 훌륭한 매시업이기도 했다.

스매시 마우스

가장 인기를 끈 대표 ‘밈-뮤직’은 스매시 마우스의 ‘All Star’였다. 수많은 밈-매시업에 다양하게 등장해온 이 곡은 단순히 밈으로 쓰이는 것을 넘어, 인터넷에서 오랫동안 다방면으로 활동해온 닐 씨시레가(Neil Cicierega)의 이른바 ‘마우스 트릴로지’라고 불린 세 장의 음반에 매우 정교하고 세밀하게 매시업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 덕에 씨시레가의 음반들은 단순한 농담이 아닌 가장 훌륭하게 구성된 매시업 음반 중 하나로 평가받게 되었다.

DaymanOurSavior의 ‘EXTREME MEME MUSIC MEGAMASHUP’

매시업이 유튜브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가운데 국내 아이돌 팝을 바탕으로 매시업을 하거나 한국에서 활동하는 매시업 음악인들도 나타났다. 꽤 당연하게도 이들도 주로 유튜브에서 활동한다. 먼저 아이돌 팝을 매시업하는 대표적인 채널들인 김동우나 GMIXMASHUP을 비롯해 MWM, Miggy Smallz 등이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둘이나 셋 정도 되는 아이돌 팝들을 매시업 하는 식이다. 김동우가 샤이니의 “View"와 에프엑스의 “4 Walls"의 공통적인 딥 하우스 사운드 바탕으로 두 곡을 안정적으로 매시업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렇게 한 팀의 곡들이나 같은 소속사의 그룹들, 비슷한 장르나 구성의 다른 곡 등 나름대로 상상해볼 수 있는 조합을 깔끔하게 매시업하는 경우들이 꽤 잦은 편이다.

물론 엑소의 “Monster"와 포미닛의 “싫어”를 합치는 GMIXMASHUP이나 NCT의 “Black On Black"과 세븐틴의 “숨이 차”를 합치는 MWM처럼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창의적인 조합을 매시업한 경우도 있다. 더 나아가 GMIXMASHUP이나 Miggy Smallz는 ‘메가 매시업’이라는 이름으로 주로 그 해에 나왔던 아이돌 팝 곡들을 전부 다 모아서 합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GMIXMASHUP은 2018년의 메가 매시업에 거의 150곡을 섞은 다음 무려 18분이나 되는 거대한 매시업 메들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GMIXMASHUP의 ‘REWIND 2018 K-POP MEGA MASHUP (148 Songs)’

앞선 예시와 다르게 유튜브 내부에서 어느 정도 유명해진 런치패드 매시업과 ‘밈-매시업’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런치패드 매시업의 경우 마데온의 ‘Pop Culture’를 아이돌 팝의 방식으로 오마쥬한 TAK의 ‘K-Pop Culture’가 대표적이다. 마데온처럼 TAK 또한 ‘K-Pop Culture’에서 런치 패드로 아이돌 팝을 샘플링해 정교한 매시업을 들려줬고, 이후에는 서태지의 ‘Christmalo.win’ 리믹스 대회에서 우승한 후 메이져 신으로 올라와 아이돌 팝 작곡가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Christmalo.win’ 리믹스 대회에서 무려 이박사의 노래와 ‘Take On Me’ 등을 합쳐 특별상을 수상한 또 다른 매시업 아티스트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요한 일렉트릭 바흐다. 스타일적으로는 일종의 유머러스한 ‘밈-매시업’적 농담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지만 요한 일렉트릭 바흐는 그만의 독보적인 방식으로 매시업을 진행한다. 보통은 기본적으로 하드코어한 비트들에 NCT의 곡들부터 임창정이나 마미손을 시작해 트로트와 민요에 ‘야 놀자’의 CM송처럼 같이 매시업을 상상하기 힘든 노래들을 혁명적으로 합쳐내는 식이다. 이렇게 특유의 방식으로 인지도를 올리던 요한 일렉트릭 바흐는 ‘전국 Handclap 자랑’의 대히트로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지금도 그는 자기만의 매시업 혹은 리믹스의 기묘한 가능성을 계속해서 들려주고 있다.

NCT 127의 ‘Simon Says’, 민요 ‘옹헤야’, 사이먼 앤 가펑글의 ‘The Boxer’를 매시업한 요한 일렉트릭 바흐의 ‘옹헤야 Says (feat. 성창순, 전정민 & Simon And Garfunkel’

매시업은 2000년대에 들어서 많은 형식으로 시도되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음악이 새로운 맥락과 위치에서 다양하게 결합했고, 샘플링 뮤직처럼 창조적인 인용과 재조합의 과정으로써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이제 매시업이나 샘플링처럼 이미 레디메이드로써 존재하는 음악들을 활용하는 일종의 포스트 프로덕션적 방법론들이 이후의 대중음악에서 더욱 다양하고 색다르게 나타날 미래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이미지Discog
메인이미지 Djs From Mars ‘Best Songs Of 2018 Rewind Megamashup (40 tracks in 5 minutes)’ 썸네일

 

Writer

어설픈 잡덕으로 살고 있으며, 덕심이 끓어 넘치면 글을 쓴다. 동시대의 대중 음악/한국 문학을 중심으로 애니메이션, 인디 게임, 인터넷 문화, 장르물 등이 본진(중 일부). 웹진 weiv에서 대중 음악과 비평에 대해 쓰고 있고, 좀 더 재미있고 의미 있게 창작/비평하고자 비효율적으로 공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