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전혀 다르지만,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흥겨운 캐롤, 반짝이는 불빛으로 장식한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와 그 아래 수북하게 쌓인 선물들. 루돌프와 함께 썰매를 끌고 지구 곳곳을 누비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와 펑펑 내리는 하얀 눈까지.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대체로 온갖 낭만적인 것들이 떠오른다. 분명한 건 크리스마스는 대목이라는 거다. 물건을 팔아야 하는 기업들에도. 그 기업들의 광고를 만들어야 하는 광고업계에게도. 그러니 전자제품을 파는 기업도, 음료수를 파는 기업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팔아야 하는 백화점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너도나도 광고를 만드는 거다. 이런 대목을 놓칠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수많은 크리스마스 광고들 사이에서 유난히 반짝반짝 빛나는 광고를 몇 편 모아봤다. 매년 보는 <나 홀로 집에>를 보는 것보다, 매년 듣는 캐럴을 듣는 것보다 훨씬 흥미로울 거라 장담한다.

 

하비 니콜스(Harvey Nichols)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광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느라 바삐 뛰어다니는 크리스마스 시즌. 이렇게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에 바쁜 이때, ‘너 자신을 위해 돈을 쓰라’고 꼬드기는 백화점이 있다. 이름은 하비 니콜스. 영국의 고급백화점이다. 영국의 백화점이라니. 크리스마스 광고로 유명한 존 루이스 백화점이 떠오른다. 따뜻하고 감동적인 광고로 매년 크리스마스의 중심에 서는 바로 그 백화점 말이다. 존 루이스 백화점 크리스마스 광고를 흉내 내는 수많은 아류들 사이에서 하비 니콜스 백화점은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거금을 들여 선물을 하는 그 관습을 깨버리겠다고. 그래서 광고 캠페인의 제목은 <미안, 나를 위한 선물을 사는데 돈을 다 써버렸어!(Sorry, I Spent It On Myself!)> 얄밉지만 얼마나 매력적인가! 아무도 말은 하지 못했지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했던 그 속내를 시원히 긁어주는 말이 아니던가. 역시 천사의 잔소리보다는 악마의 속삭임이 더 끌리는 법. 많은 사람들이 이 캠페인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해는 금물. 나를 위해 선물을 사버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친구와 가족들에게 아예 선물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크리스마스인데! 하비 니콜스는 자기 자신을 위한 선물을 사버린 이런 이기주의자들을 위해 가족과 친구들에게 줄 선물 컬렉션을 친히 마련해준다. 2유로도 되지 않는 아주 저렴한 고무밴드, 이쑤시개, 싱크대 마개, 수세미, 클립 등이 바로 그것이다. 거기에 성심성의껏 고급스러운 이름도 붙여준다. 이를테면, ‘100% 원목 이쑤시개’라든지, ‘방수기능의 싱크대 마개’, ‘금속 도금 클립’처럼 말이다. 이 캠페인을 만든 Adam&eve DDB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리처드 브림(Richard Brim)은 한 인터뷰에서 가장 받고 싶지 않을 법한 선물을 생각해내면서 아주 즐거웠다고 했는데 선물에 붙여진 이름에서 그 즐거움이 물씬 느껴진다.

하비 니콜스 백화점의 <Sorry I Spent It On Myself' Gift Collection>

이 선물 컬렉션을 소개하는 광고 영상이 나간 후, 모든 상품이 품절되는 데까지는 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2주 뒤인 12월 2일 온에어 된 광고는 무려 며칠 만에 60만 명이 보며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트위터는 온통 이 캠페인 이야기뿐이었다. 훈훈한 크리스마스 광고들 사이에서 많은 이들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이 삐딱한 광고가 도드라진 것이다. 2013년 당시 존 루이스의 크리스마스 광고 <토끼와 곰(Hare & Bear)>이 7백만 파운드의 제작비가 들어갔던 것과 비교하면 제작비는 얼마 들지도 않았으니 가성비 또한 다른 백화점들이 보기엔 얄미울 정도다.

하비 니콜스 백화점의 <Sorry I Spent It On Myself> 광고 영상

이 캠페인의 얄미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2014년 칸 광고제에서 4개 부문(Integrated, Promo & Activation, Film, Press) 그랑프리를 가져가면서 그해 가장 많은 그랑프리를 수상한 캠페인으로 선정된 것이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의 전통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루함을 느껴왔는지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Deutsch LA의 CCO(chief creative officer)이자 칸 광고제 심사위원인 피트 파바트(Pete Favat)는 하비 니콜스의 2013년 크리스마스 캠페인에 대해 “백화점의 매출이 가장 큰 시즌을 맞아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놀랄 만큼 대담한 일”이라고 칭찬하며 이 캠페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기존의 것을 부수고 속마음을 드러낸다는 건 이처럼 용감한 일이다. 그리고 가끔 그 용감함은 큰일을 해내기도 한다. 하비 니콜스가 그랬던 것처럼.

하비 니콜스 백화점의 <Sorry I Spent It On Myself> 캠페인 케이스필름

그다음 해에도 하비 니콜스는 그 이전 해의 반골 기질을 이어받아 앱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 앱을 사용해서 자신만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 수 있었는데 이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자신이 갖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콕 집어 써넣을 수 있다. 이를테면 뻔하디뻔한 크리스마스 카드 안에 교묘히 “새해인사…는 아주 어색해질 거야. 네가 만약 샬롯 올림피아 실버 옥타비아 샌들을 선물로 주지 않으면’ 같은 문구를 넣을 수 있게 한 거다. 하비 니콜스의 크리에이티브 마케팅 이사인 샤디 할리웰(Shadi Halliwell)은 "올해, 우리는 우리 고객들이 크리스마스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이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로부터 받는 선물을 좋아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는 멋진 선물을 원하고 올해 하비 니콜스는 당신의 크리스마스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곳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티 내지는 않지만 마케팅 이사의 말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받고 싶은 선물을 받는 게 뭐 어때서? 라는 악마의 속삭임과 함께.

하비 니콜스 백화점의 2014년 크리스마스 광고

 

Apple의 크리스마스 광고

애플의 광고가 남다른 건 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니까. 애플의 크리스마스 광고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2013년도 애플의 크리스마스 광고는 역대 가장 인상 깊은 크리스마스 광고 탑10 같은 조사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순위에 꼭 드는 광고다. 크리에이티브 아츠 에미상(Creative Arts Emmy)은 물론 2014년 칸 광고제 필름 부문 은상을 거머쥐기까지 했다. 제목은 <오해(Misunderstood)>. 가족이 한데 모이고 따뜻한 시간을 보낸다는 뻔한 내용의 크리스마스 광고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반전이 숨어있다. 가족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언뜻 보기에는 스몸비처럼 보이는 사춘기 남자아이가 알고 보니 아이폰5S로 가족들의 크리스마스 영상을 만들고 있었던 것. 아이가 찍은 영상을 가족들이 다 같이 보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괜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렇게 기능에 대한 설명 한 줄 없이 아이폰5S의 뛰어난 카메라 성능과 iMovie의 편집기능, TV와 연결 가능한 Airplay까지 은근슬쩍 모두 담아낸다. 과연 애플이다.

Apple의 크리스마스 광고 2013 <Misunderstood>

게다가 이 광고를 좋아했던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 영상도 만들었다. <해리스 가족의 연말>이라고 불리는 영상은 광고 속에서 소년이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던 영상의 풀버전이다. 광고 속 설정과 똑같이 아이폰5S로만 촬영했다. 영상을 보다 보면 미국 어딘가에서 정말 해리스 가족들이 이토록 따뜻하고 아름다운 연말연시를 보낼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Apple의 광고 속 영상 <A Harris family holiday>

애플의 광고답게 애플의 크리스마스 광고들은 음악도 잘 쓴다. 흔하디흔한 캐럴 없이도 말이다. 샘 스미스의 ‘Palace’를 배경음악으로 했던 작년 크리스마스 광고 <Sway>를 보자.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선율만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흠뻑 묻어나온다. 2013년도의 광고와 마찬가지로 에어팟의 기능에 대한 설명은 단 한 줄도 없다. 광고가 나올 당시만 해도 아직 출시되지 않은 아이폰X 또한 보일 듯 말듯 숨어있다. 그저 같은 음악을 공유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음악에 빠진다는 것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 것과 닮아 있는지 보여줄 뿐이다. 한 쌍의 에어팟이 마치 한 쌍의 커플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Apple의 크리스마스 광고 2017 <Sway>

재미있는 건 이 광고의 커플이 실제 부부라는 것. 어쩐지 범상치 않은 합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부부의 케미는 숨길 수 없나 보다. 이 둘의 실제 로맨스 스토리도 <Sway> 광고만큼이나 낭만적이다. 무려 오디션장에서 만나 그 길로 세계 곳곳에 투어를 다니면서 8년을 연애했단다. 2014년 결혼에 골인한 이 풋풋한 신혼부부의 이름은 Lauren Yalango-Grant와 Christopher Grant. 이 이름들을 유튜브에 검색하면 아름다운 공연 영상을 대거 발견할 수 있다. 애플의 안목이란. 역시는 역시다.

올해는 또 어떤가. 올해 애플이 야심차게 내놓은 크리스마스 광고는 픽사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킨다. 자신의 작품을 드러내기 꺼리던 소피아가 키우던 강아지의 장난으로 세상에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는 이야기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타이틀은 <Share Your Gifts>. 선물을 뜻하는 Gift와 재능을 뜻하는 Gift. 중의적으로 쓰였다. 애플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자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애플의 제품을 선물하라는 뜻이겠지.

Apple의 크리스마스 광고 2018 <Share your gifts>

게다가 이 광고에 깔린 ‘Come out and play’를 만들고 부른 Billie Eilish(빌리 아일리시) 또한 이 광고의 메시지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인물이다. 11살에 애플의 제품들을 활용해 곡을 쓰기 시작했고 14살의 나이에 작업했던 곡들을 발표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올랐으니 말이다. (그는 현재 열여섯. 2001년생이다.)

빌리 아일리시

메시지에만 신경 쓰다 보면 이 아기자기한 애니메이션의 아름다움에 대해 놓치기에 십상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무려 수작업한 세트에 CG 캐릭터를 합성해 만들어졌는데 메이킹 필름을 보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재능을 세상과 공유하라는 메시지가 메이킹 필름에마저 녹아 있는 듯하다.

Apple의 크리스마스 광고 2018 <Share your gifts> 메이킹 필름

 

Coca Cola의 크리스마스 광고

코카콜라만큼 크리스마스에 잘 어울리는 브랜드가 또 있을까. 코카콜라의 색상과 로고는 물론 브랜드가 주는 이미지는 크리스마스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게 과연 우연일까? 천만에. 무려 1931년부터 코카콜라가 기울여온 노력의 결과물이다. 사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는 코카콜라가 처음 만들었다. 1931년 당시 코카콜라는 코카콜라가 한겨울에도 상쾌하게 마실 수 있는 음료이길 원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겨울이 오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산타클로스. 코카콜라는 미국의 화가 해던 선드블룸에게 산타클로스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렇게 종교적이고 엄숙한 산타클로스는 지금 우리가 아는 그 익숙한 모습의 산타클로스가 되었다. 1964년 해던 선드블룸의 최종 버전 산타클로스가 나오기까지 코카콜라는 매년 크리스마스 광고에 산타클로스를 활용했다. 33년에 걸친 긴 세뇌였다. 2001년에는 1963년 버전의 해던 선드블룸의 산타클로스 그림을 애니메이션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이쯤 되면 코카콜라야말로 크리스마스 광고의 원조쯤 된다고 볼 수도 있을듯하다.

Coca Cola의 2001년 크리스마스 광고

코카콜라의 크리스마스 광고는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TV 광고라는 틀마저 벗어던진다. 2013년 크리스마스 시즌, 벨기에의 대형 쇼핑몰에는 특이한 옥외광고가 설치된다. 선물을 포장할 수 있도록 포장지 재질로 만들어진 옥외광고였던 것. 누구든 필요한 만큼 이 포스터를 찢어갈 수 있었다. 가뜩이나 크리스마스 쇼핑에 정신이 없어 따로 포장지를 챙기기 힘들었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광고 포스터를 가져갔고, 옥외광고가 설치되고 첫 주말, 3km가 넘는 포스터가 누군가의 포장지가 되어 사라졌다. 심지어 코카콜라는 이 포스터의 디자인을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코카콜라의 빨간색과 흰색은 이미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기에는 충분하니까. 처음 산타클로스를 만들어냈던 그때처럼 아주 작은 시도로 큰 인상을 남긴 것이다.

Coca Cola의 <The poster that turned into wrapping paper> 캠페인

그뿐만이 아니다. 2010년에는 이런 이벤트도 진행했다. 타이틀은 <산타의 잊힌 편지(Santa’s Forgotten Letters)>. 40년 전 산타클로스에게 보낸 편지를 찾아 편지 쓴 사람들에게 선물을 전해주는 것. 편지를 쓴 당사자는 이미 산타클로스 따위는 믿지 않는 어른들이었지만, 40년 전 또박또박 적어 내려간 편지와 당시 애타게 갖고 싶던 선물을 맞닥뜨렸을 때 울컥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40년이란 숫자가 말해주듯 쉬운 이벤트는 아니었다. 일단 40년 전 산타클로스에게 쓴 편지를 찾기 위해 인디애나주의 작은 마을에 있는 산타클로스 박물관까지 가야 했고, 그곳에 보관된 6만 개의 편지 중 75개를 골라내야 했고, 그 편지의 주인이 현재 어디에 살고 있는지 찾아내야 했고, 마지막으로 그 편지에서 요청했던 선물(지금은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그런 장난감들)을 구해 전달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을 하는데 몇 주의 시간이 걸렸다. 33년 동안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던 전적을 떠올려보자면 참으로 코카콜라다운 지극정성이 아닐 수 없다.

Coca Cola의 <Santa’s Forgotten Letters> 캠페인

크리스마스는 핑계다. 12월의 25일이 10월의 25일이나 4월의 25일이나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있기에 우리는 오글거린다고, 쑥스럽다고 평소에는 전하기 힘들었던 마음을 전할 수 있다. 그렇게 잠시나마 따뜻해질 수 있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크리스마스를 핑계로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해볼 수 있다. 평소엔 하기 힘들었던 낭만적인 이야기도 담을 수 있고, 조금은 삐딱한 메시지도 던질 수 있다. 이 얼마나 좋은 핑곗거리란 말인가.

 

Writer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카피 쓴다는 핑계로 각종 드라마, 영화, 책에 마음을, 시간을 더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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