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가 라디오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는 시대가 지난 지도 오래다. 그동안 음악에 다양한 장르가 파생하는 동시에 뮤직비디오는 더 높은 수준으로 진화하고 그 영향력을 더욱 키워왔다. 가사를 곱씹어 보고 곡 안에 감춰진 면면을 파헤치는 음악 감상을 벗어나, 뮤직비디오는 곡에 대한 새로운 감상법을 제시하고 시각을 확장한다. 곡의 멜로디를 따라 색채, 안무 그리고 영상 기술로 시각화를 하거나 곡의 스토리에 살을 붙이는 것이 가능하다. 주객전도로, 최근 들어서는 음악을 소개하기 이전에 티저(teaser) 영상으로 곡에 대한 인트로를 제시하기까지 한다.

새로운 미디어로의 이동엔 항상 상상력이 가득하다. 음악이 영상화되면서 의미를 넓히는 가운데 그 안에 또 다른 재해석을 더한 뮤직비디오들이 있다. 기존에 발매되었던 영화를 패러디 혹은 오마주 하면서 곡에 입체감을 더한, 여러 팝 뮤직비디오를 살펴보자.

 

Ariana Grande ‘thank u, next’ MV

 

여러 유명인들과의 연애, 당시의 추억을 꾸준히 자작곡으로 전해왔던 것에 나아가 그 실명들을 하나하나 읊고 그들에게 감사한다. 옛사랑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깨닫고 더욱 힘을 얻어 인생의 제2 막을 시작한다는 곡 ‘thank u, next’는 진정성 있는 셀러브리티의 고백과 담백한 편곡으로, 발매 이후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의 이 트랙은 유튜브에 공개 직후 ‘일일 최다 시청자 수’ 기록을 경신할 정도. 뮤직비디오는 십 대들의 짧고 강렬한 사랑, 가십과 싸움으로 이어지는 성장스토리를 다룬 하이틴 영화들, <퀸카로 살아남는 법>과 <금발이 너무해> 등 총 4편의 영화를 오랜만에 재조명했다. 최대한 원작의 구성을 구현하려 노력하면서도 몇 장면은 아리아나 그란데의 자유로운 연출과 그 감정선을 이어가도록 했다고 한다. 뮤직비디오는 당시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와 여러 지인들이 등장해 더 화제가 되었지만, 너무 많은 소재를 다루다 보니 다소 정돈되지 않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쉬움이 남았다.

 

Queen ‘Radio Ga Ga’ MV

80년대풍 신스팝 트랙, 드러머 로저 테일러가 쓴 밴드 퀸(Queen)의 곡 ‘Radio Ga Ga’는 늘 청취율을 위해 히트곡만 틀고 창의적인 큐레이션 없이 경쟁에 과열된 라디오 시장에 대한 비판을 위해 제작했다고 한다. 동시에 뮤직비디오 시장의 개척을 열었던 MTV의 개국 이후 아이들이 라디오 없이 영상으로 음악을 듣는 세태를 풍자한다. 놀랍게도 곡의 뮤직비디오가 중간중간 흑백인 것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서 관중들이 모두 떼창할 때 손을 높게 치켜드는 것은 모두 연결된다. 퀸이 등장하는 장면을 배제한 나머지는 모두 프리츠 랑이 만든 최초의 장편 공상영화 <메트로폴리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20세기 초 작품을 가져오기 위해 독일 정부에 개런티까지 준 이유는, 곡이 전하는 획일화된 일상에 대한 경고를 원작의 주제와 결부시키려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마돈나의 ‘Express Yourself’를 포함해 ‘Radio Ga Ga’ 이후로도 영화 <메트로폴리스>는 대중예술에서 꾸준히 소비되어왔다.

 

Muse ‘Pressure’ MV

긴박감 있는 클래핑 비트와 거친 베이스라인으로 숨 가쁘게 내달리는 트랙. 영국 밴드 뮤즈(Muse)의 신곡 ‘Pressure’는 오랜 팬들의 기대에 갇혀 고통에 겨워하는 밴드의 현재 심정을 담았다. 이전 발매작들이 앨범 전체의 큰 그림에 집중했다면, 뮤즈는 지난 11월에 발매한 8집에서 개별 곡들의 이미징에 신경 쓰고 영상 그래픽과 디자인을 십분 활용했다. 특히 80년대 공상과학 작품에 대한 오마주가 두드러지는데, 각 싱글에서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뮤직비디오를 시작으로 영화 <크리터스>, <틴 울프>를 거쳐 Pressure에서는 <백 투 더 퓨처>의 홈커밍 파티 장면과 <그렘린>을 다룬다. 영화의 주인공이 밴드가 되려던 자신의 꿈과 인생의 목표를 시간 여행에서 깨달은 것처럼, 뮤즈도 초기 결성 당시의 밴드명을 내걸고 활동할 때의 관객 호응, 돌변해 밴드를 잡아먹으려는 팬들에게 사로잡히는 장면을 통해 자신들의 의지를 확인한다.

 

Bombay Bicycle Club ‘Home by Now’ MV

영국 인디밴드 봄베이 바이시클 클럽(Bombay Bicycle Club)의 영민한 프로듀싱 능력이 빛을 발한 곡, ‘Home by Now’는 찰랑거리는 비트감과 포근한 멜로디 그 자체로 힐링이다. 곡 작업 당시에 아이폰의 한 음악 제작 프로그램으로 간단하게 소스를 만들면서 전체 곡을 완성하였고, 거기에다 간드러진 보컬 하모니를 쌓으며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꿈결 같은 트랙이 완성되었다. 미니멀한 감성은 뮤직비디오에서도 이어진다. 스탠리 큐브릭의 대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5학년 학생들의 연극으로 펼쳐내며 원작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무엇보다도 작품의 미장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어린아이에게 자칫 난해할 수 있는 원작을 바라보는 순수한 시각을 잘 담아냈다. 뮤직비디오에서 곡은 그 자체로 배경음악이 되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Cage the Elephant ‘Mess Around’ MV

미국 밴드 케이지 디 앨리펀트(Cage the Elephant)의 사이키델릭 넘버 ‘Mess Around’는 한 매력적인 여성이 자신의 강점을 앞세워 스스로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이야기를 다룬 곡이다. 그리고 뮤직비디오는 전설적인 시각의 마술사 조르주 멜리에스의 영화 <달나라 여행>과 그의 작품을 오마주하고자 영화의 장면들을 그대로 가져왔다. 제작 초기에 밴드 멤버 맷 슐츠가 영화를 보고 감명받은 나머지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지만, 현대 공상과학의 시초와도 같은 영상 기술을 시도하기엔 너무 수작업이라 어려웠다고 한다. 당시 영화는 흑백의 대조가 두드러지는, 하이 콘트라스트에 하나하나 색을 덧입혀서 제작되었으며 덕분에 풍부한 표현력을 갖게 되었다. ‘Mess Around의’ 가사 몇 구절이 뮤직비디오에 삽입한 장면들과 오버랩되고, 멜랑콜리하면서도 긴박한 멜로디가 영화의 판타지에 잘 어울린다.

 

Blur ‘The Universal’ MV

클래식의 웅장한 기품과 브릿팝의 아릿한 감성을 모두 담아낸 곡 ‘The Universal’은 영국 밴드 블러(Blur)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다. 밴드는 브릿팝의 과도기에서 끊임없이 실험 정신을 더하면서도, 이 곡을 통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자 하나의 쉬어 가는 템포를 갖길 원했다고 한다. 마냥 우아할 것만 같은 곡은 사실 뮤직비디오에서는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 있다. 하얀 순백의 이미지, 눈 밑에 드리운 짙은 아이라이너, 광기 어린 표정만으로도 연상되는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역시 앞서 소개한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이다.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되는 곳은 원작에서 사람들이 약물을 즐기던 밀크바. 난폭한 성격에도 집에서는 클래식을 듣는 주인공의 모습이 트랙과 꽤나 조화롭다. 결국 앨범 <The Great Escape>가 지향하는 메인스트림에서의 ‘대탈출’이자, 일탈의 즐거움을 표방한 것이 아닐까. 역시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대부분은 꾸준히 음악계에서 재해석되고 있다.

 

 

Writer

실용적인 덕질을 지향하는, 날개도 그림자도 없는 꿈을 꾸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