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를 한참 지나와버린 어른들은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던 때를 떠올리며 괜스레 옛 추억에 잠기곤 한다. 그래서인지 학교 안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학원물’ 장르는 우리 모두가 거쳤던 시기를 환기시켜 많은 이의 공감을 모은다. 한편 학원물은 어른들의 향수와 로망을 반영하기 때문에 오히려 청소년기를 정형화된 형태로 그리기도 한다. 학원물 안에서 청소년은 단순 폭력물 혹은 가벼운 연애물의 주인공이 되거나, 구조적인 폭력을 힘없이 당하는 약자로 나온다.

자극적이고 단발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웹툰의 성격상 학원물 장르의 콘텐츠가 속속들이 등장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그 가운데 기존의 학원물 장르의 자극성을 탈피해, 청소년이 서사의 주체가 되어 그들의 시선을 진솔하게 그린 작품들이 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직면하는 문제와 청소년기의 고민을 곁들이면서도 어른의 왜곡된 시선을 덜어내,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웹툰들이다. 한때 미성숙했던 추억 속 존재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며 성숙해지고자 노력하는 웹툰 속 주인공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둘러보자.

 

<야채호빵의 봄방학>

<야채호빵의 봄방학> 마지막 화 타이틀 이미지

올 9월에 완결된 박수봉 작가의 웹툰 <야채호빵의 봄방학>은 ‘야채’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그의 주변 친구들과 맺는 소소한 관계와 학교 안에서 생기는 다양한 고민을 담아낸다. 야채는 또래에 비해 덩치가 큰 푸근한 느낌의 캐릭터로 혼자 살며 요리를 하는 것이 취미인 학생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급식 대신 직접 요리한 음식으로 도시락을 싸 먹기 시작한 야채는 같은 반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싸 오는 ‘라비’, 그의 친오빠인 옆 반 ‘호랑’, 공부에 열중하는 ‘조연’, 반의 회장인 ‘봄’이와 도시락을 계기로 조금씩 가까워지게 된다.

급식 시간 중 교실에 둘이 남겨진 라비와 야채

<야채호빵의 봄방학>은 왕따, 입시, 성적, 진학 등 청소년들이 학교 안에서 겪는 고민을 다양한 각도에서 들춰낸다. 주인공들은 구도 속에 갇힌 약자가 아닌, 자기 나름의 사연을 갖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가는 입체적인 인물로 나온다. 특히 중학교 때 왕따를 당했던 라비가 덩치 큰 야채를 교실에서 처음 단둘이 마주쳤을 때 느꼈을 공포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두려움을 딛고 야채와 조금씩 친해진 라비는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위로를 주고받는 단단한 존재로 거듭난다. 이처럼 학교 폭력을 자극적인 사건으로 묘사하기보다 인물의 심리적 상처를 조심스레 풀어내기에 더욱 깊은 공감을 끌어낸다.

야채가 친구들을 위해 싸 온 유부초밥 도시락

저마다의 아픔을 지닌 <야채호빵의 봄방학> 속 캐릭터들은 야채가 싸온 도시락을 계기로 서로를 알아가고 보듬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챙기기 위해 요리를 시작했던 야채는 그의 정성 어린 도시락으로, 차가운 편의점 도시락을 싸 오던 아이들과 그를 바라보는 독자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녹여준다. 작품 마지막에 이르러선 다른 친구들 역시 점차 요리를 시작하며 친구들과 나눠 먹을 도시락을 싼다. 그 모습은 마치 마음을 들여다보고 챙기고 싶다면 한 번쯤 따뜻한 도시락을 직접 싸서 남과 나눠보라고 우리에게 권하는 것 같다.

<야채호빵의 봄방학> 속 친구들이 함께 도시락을 먹는 장면

 

<소녀의 세계>

<소녀의 세계> 타이틀 이미지

여성 간의 단단한 우정을 그린 작품을 찾기도 어렵지만, 그중에서도 청소년 여성들의 우정 이야기를 그린 작품은 더욱 드물다. 월요일마다 연재되는 웹툰 <소녀의 세계>는 고등학생 여성들의 일상과 고민, 그들의 진정한 우정을 다룬다. 주인공 ‘나리’는 어릴 적 뚱뚱했던 외모 때문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평범한 학생으로, 고등학교 입학 후 ‘미인’이라 불리는 3명의 친구 유나, 미래, 선지를 만나 친해진다. 웹툰은 그들과 어울리며 좌충우돌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고, 외모 비교로 인해 자존감이 떨어져 심리적으로 힘들어하기도 하는 나리의 관점을 중심으로, 주인공 4명의 관계와 우정을 그려 나간다.

<소녀의 세계> 1화 중 처음 유나, 미래, 선지를 만난 나리의 심정

나리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독자는 나리를 따라 유나, 미래, 선지를 소문난 ‘미녀’들이란 이미지로 바라보게 된다. 회가 지날수록 작품은 3명의 친구들이 안고 살아왔을 고통과 경험을 그리기 때문에 독자는 그들의 깊은 속내를 이해하고 그제야 셋을 입체적인 캐릭터로서 바라보게 된다. 이처럼 <소녀의 세계>는 사람을 외모로 쉽게 판단하는 시선을 비틀며 외모에 우위를 매기고 권력 관계가 생기는 냉정한 학생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또 상대의 진심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친구, 학생의 경제적 지위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선생님, 몰래카메라를 찍고 스토킹을 하는 남학생 등 ‘학교’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불순한 면들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소녀의 세계>는 학교생활 속 인간관계에 관한 크고 작은 사건들을 펼쳐내지만, 결국에 가장 중심이 되는 건 네 주인공의 관계와 각 캐릭터의 감정선이다. 과거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현재 그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지 각자의 사연을 가볍지 않게 담아내면서도, 서로 상처주고 또 위로받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린다. 이렇게 <소녀의 세계>는 10대 소녀들의 일상과 고민, 그리고 그들이 성숙한 개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전한다. 동시에 친구들과 함께 끈끈하고 안전한 세계를 구축한 4명의 우정은, 비슷한 관계를 꿈꾸고 있는 여성들에게 희망을 안긴다.

 

<연의 편지>

<연의 편지> 타이틀 이미지

<연의 편지>는 올 10월에 완결한 10부작 단편 웹툰으로, 위의 작품들보다 조금은 더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이야기는 주인공 ‘소리’의 시선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1화에서 소리는 학교폭력을 당한 친구를 위해 나섰다가 자신마저 왕따를 당하게 된다. 괴롭힘을 견딜 수 없었던 소리는 어릴 때 살던 시골의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도 트라우마로 또래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해 외로워한다. 자신의 울타리를 떠나지 못하고 겉돌던 소리는 우연히 책상 서랍 속에서 편지를 발견한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 주인공의 심리를 보여주는 장면

"안녕, 우리 학교에 온 걸 환영해. 이 편지는 네게 이곳을 소개하기 위해 쓰였어. 첫 번째로 우리 반이 있는 본관지도, 두 번째는 우리 반 애들 얼굴이랑 이름 카드야."

"P.S. 내 편지를 더 읽고 싶다면 두 번째 편지를 찾아줘."

처음 편지를 발견한 소리

편지는 마치 전학 온 소리가 이 자리에 앉아서 편지를 보게 될 거란 걸 알았다는 듯, 학교에 관한 정보를 족집게처럼 속속들이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 편지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아리송한 수수께끼로 전하며 편지를 찾아볼 것을 유도한다. 소리는 다음 편지를 찾기 위해 비밀을 캐는 탐정처럼 학교 곳곳을 누비고, 편지를 발견할 때마다 느끼는 기쁨으로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소리는 편지를 쓴 사람의 친구인 ‘동순’을 만나게 되며, 그들은 편지의 주인을 찾기 위해 함께 편지를 찾는 일에 동행한다.

편지를 함께 읽고 있는 소리와 동순

소리와 동순이 편지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은 마치 환상적인 모험을 떠나는 탐험가처럼 느껴진다. 학교 곳곳을 거닐 때 펼쳐지는 풍경 속 다양한 색감들이 동화의 한 장면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이처럼 작품에서 도드라지는 동화적인 배경은 소리와 동순이 학교 안에서 겪었던 폭력성과 대비되어, 그들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치유하는 과정을 부각시킨다. 조금은 기적 같고 환상적이더라도 진심으로 따뜻한 이야기가 필요할 땐 <연의 편지>에서 펼쳐지는 마법 같은 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어떨까.

 

Writer

소소한 일상을 만드는 주위의 다양한 것들을 둘러보길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이야기’들엔 사람들의 일상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믿음을 갖고 공연, 영화, 책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소개해, 사람들의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문화예술 큐레이터가 되길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