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아킨 피닉스는 할리우드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다. <글래디에이터>(2000)의 잔악무도한 로마 황태자 ‘콤모두스’부터 <그녀>(2013) 속 인공지능을 사랑한 ‘테오도르’까지 모두 그의 열연 덕에 탄생한 캐릭터다. 2018년 개봉한 <너는 여기에 없었다>에서 우울한 청부업자를 연기하고, 2019년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였던 <조커>의 ‘조커’ 역까지. 호아킨 피닉스의 지난 필모그래피를 두루 훑어봤다.

 

<악의 꽃> 질풍노도의 사춘기 학생

20대의 호아킨 피닉스는 반항적 분위기와 서툴고 순수한 면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의 굳게 다문 입과 다부진 턱, 선이 굵은 이목구비는 형 리버 피닉스와는 또 다른 인상을 준다. 그래서일까. 영화에서 형 ‘제이시’(빌리 크루덥)를 매사 의식하고 따라 하다가 사고를 치고, 점차 순수한 사랑을 배워가는 사춘기 학생 ‘더그 홀트’ 역이 그에게 꼭 맞는 옷처럼 잘 어울렸다.

<악의 꽃>(Inventing the Abbott> 예고편

복수심에 사로잡혀 마을 부호인 ‘애봇 가문’의 딸들에게 고의로 접근하는 제이시. 하지만 동생 더그는 순진한 마음으로 애봇 가의 막내 ‘파멜라’(리브 타일러)에게 끌리고, 두 사람은 주변의 반대에 부딪힌다. 호아킨 피닉스와 리브 타일러는 영화를 통해 실제로 3년간 교제하기도 했다.

 

<글래디에이터> 비열하고 잔악무도한 로마 황태자

호아킨 피닉스의 악역 연기가 처음 돋보였던 것은 <글래디에이터>에서였다. 실제 역사 속 최악의 로마 황제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황태자 ‘콤모두스’ 역을 맡아 황제를 살해하고 나라의 영웅인 ‘막시무스’(러셀 크로)마저 죽이려는 악독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명장면 : 막시무스 vs 콤모두스

이 영화에서 호아킨 피닉스는 캐릭터의 비열한 모습 외에도 난폭하고 광인과도 같은 면모를 실감나게 표현해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이미 중견 배우였던 러셀 크로에게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발휘하며 ‘방송 영화 비평가 협회’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앙코르> 밥 딜런에게 영향을 미친 컨트리 음악의 전설

호아킨 피닉스가 영화의 주연으로서 연기를 인정받은 작품으로 <앙코르>를 꼽을 수 있다. 당시 비틀스, 엘비스 프레슬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미국 컨트리 음악의 전설 ‘조니 캐쉬’ 역을 맡은 그는 자신의 자유분방하면서도 순수한 이미지를 계속 이어갔다.

<앙코르> 예고편

조니 캐쉬는 많은 컨트리 가수들처럼 독실한 기독교인이면서도 약물 복용으로 인한 반항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뒤늦게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높이는 등 독특한 이력을 지닌 가수. 조니 캐쉬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에 ‘골든 글로브’는 남우주연상을 선사했다.

 

<마스터> 상처와 욕망이 가득한 사회 부적응자

<마스터>에서는 2014년 세상을 떠난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과 함께 불꽃 튀는 호연을 펼쳤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은 앞서 <카포티>(2006)로 호아킨 피닉스(<앙코르>)의 ‘아카데미’ 수상을 앗아간 장본인이었다.

<마스터> 예고편

섹스에 대한 과도한 집착 증세와 과거의 상처로 인해 술에 의존하며 하류 인생을 이어가는 ‘프레디 퀠’. 퀠은 우연히 밀항을 시도했던 배에서 수상한 집단을 이끄는 ‘랭케스터’(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을 만나고, 너무나 다른 듯 같았던 두 사람은 서로 강하게 이끌린다. 이 영화로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은 수많은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함께 거머쥔다.

 

<그녀>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외톨이 대필 작가

호아킨 피닉스가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캐릭터만 연기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에서 그는 귀여운 콧수염을 달고 초창기 <악의 꽃>에서의 순수한 이미지와 나약하고 지질한 면모를 극대화한 캐릭터 ‘테오도르’를 연기했다.

<그녀> 예고편

2025년, 테오도르는 연애 편지를 대필하는 외롭고 내향적인 성격의 작가다. 아내와 별거하게 된 후 더욱 외로움과 허무함에 몸부림치던 그는 최신 기술의 인공지능이 탑재된 운영체제를 구매하고, 인공지능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파격적인 SF 영화 같기도, 평범한 로맨스 영화 같기도 한 독특한 이야기가 호아킨 피닉스의 호연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한다.

 

<이레셔널 맨> 자기 기만에 빠져 엉뚱한 짓을 계획하는 철학교수

호아킨 피닉스가 맡았던 캐릭터들은 대개 늘 결핍이나 욕망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레셔널 맨>에서 그는 반대로 너무나 일찍 세상의 지식을 섭렵하고 성공함으로써 무력과 허무에 빠진 철학교수 ‘에이브 루카스’를 연기한다.

<이레셔널 맨> 예고편

자신을 연모하는 대학생 ‘질’(엠마 스톤)과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우연히 다른 테이블의 대화를 엿듣게 되는 에이브. 그는 자기만의 논리와 생각에 빠져 엉뚱한 일을 계획하고, 갑자기 매사 의욕이 넘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한다. 한 작품 내에서도 다양한 연기 변신을 해내는 호아킨 피닉스를 볼 수 있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 전쟁의 트라우마로 자살을 꿈꾸는 살인 청부업자

2018년 개봉한 <너는 여기에 없었다>에서는 끔찍한 유년기의 기억과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운 일상을 살아가는 살인 청부업자 ‘조’를 연기했다. 모처럼 몸을 만들고 덥수룩한 수염에 후드 티를 뒤집어쓴 채 어슬렁거리며 걷는 호아킨 피닉스의 모습은 영락없는 살인 청부업자를 떠올리게 한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 예고편

영화의 감각적인 스릴러 장르 연출이, 차가운 감성과 혼란스러운 내면이 완벽히 뒤섞인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와 어우러져 높은 긴장감을 선사한다. 그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조커> 할리우드 역사 최고의 광인 캐릭터

조커로 변신한 호아킨 피닉스의 모습 via 토드 필립스 감독 인스타그램

배트맨 시리즈의 주요 악당인 ‘조커’는 영화 역사상 손꼽히는 악역이자 광인 캐릭터다. 1960년대 드라마판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 역을 맡았던 시저 로메로부터 잭 니콜슨, 히스 레저, 최근 자레드 레토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명배우들이 조커 역을 거쳐 갔다. 당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맡았던 조커 역을 이번에는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했다.

<조커> 호아킨 피닉스 첫 메이크업 테스트 영상

개봉 전, 사람들은 호아킨 피닉스 캐스팅 소식만으로 열광했다. 실제로 영화 개봉에 앞서 공개된 메이크업 테스트 영상 속 무표정한 얼굴에서 갑자기 광기 어린 얼굴로 변화하는 그의 모습만으로도 높은 기대감이 납득된다. 결국 <조커>는 2019년 최고의 신드롬 중 하나가 되었고, 설령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ditor

정병욱 페이스북
정병욱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