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를 배우다 보면 때때로 이런 의문이 생겨나곤 한다. 시대적인 배경과 새로운 기법의 창조 등의 이유로 어떤 그림들은 ‘명작’이라 칭해지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그림으로 언급되고, 기획 전시회가 열릴 때면 대표 작품으로 소개되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끈다. 하지만 똑같은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그림들은 중요한 작품이 아니며 그 값어치도 다르게 평가된다. 물론, 기술적인 부분의 차이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세상 만물에 관하여 평가를 하길 원하고, 예술에 대해서도 우열을 나누는 기준을 세우길 원하니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 갔던 전시회에서 수없이 많은 ‘중요한’ 그림들이 걸려 있음에도 작은 종이 한 장 정도의 그림이 그 어떤 ‘명작’이라고 칭해지던 그림들보다도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던 순간이 있다.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름은 처음 보는 낯선 이름이었던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푸르고 창백한 배경의 그림 속으로 녹아 들어가듯 그려진 사람과 꽃의 모습은 다른 어떤 화가들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기묘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었다.

<Self Portrait> (1880)

오딜롱 르동은 르누아르, 모네 등 눈에 보이는 일상의 세계를 그려내는 데 집중하던 인상주의자들이 득세하던 19세기에 살았지만, 그들과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는 ‘상징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화가이다. 그는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광경들보다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상상의 세계를 그려냈다. 동시에 자신보다 앞서 활동한 귀스타브 모로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으나, ‘살로메’ 혹은 ‘오르페우스’ 등 신화 속 인물들의 형상과 그들의 이야기를 연극적이고 분명하게 그려내는 데 집중한 모로와는 달리, 훨씬 더 모호하고 불분명한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는 차이가 있다.

1840년 프랑스 남부 보르도에서 출생한 르동은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부모에 의하여 가족 소유 농장으로 보내져 외삼촌과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낸다. 르동에게 태어날 때부터 지병이 있었다거나, 어머니가 장남을 너무 사랑해서 차남인 르동을 다른 곳으로 보냈다거나,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어쨌건 어린 시절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서 버려진 그 경험은 르동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Eye-Balloon> (1878)
<Spider> (1881)

작품 활동 초기 르동은 주로 판화를 활용하여 어두운 흑백 세계의 광경을 그려냈다. 학교 교육을 받으며 보들레르, 에드가 앨런 포 등을 탐독했고 아카데미 미술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다 판화가 로돌프 브레스댕을 만나게 된다. 그에 의하여 뒤러, 렘브란트, 고야 등 판화에 있어서 중요한 화가들을 접한 영향들과 스스로의 개인사가 뒤섞여 표출된 ‘검은 색(Noirs)’이라 불리는 이 시기의 그림들은 기묘하고 독특한 그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개별적인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오늘날 대중들에게 보다 더 익숙한 르동의 그림들은 그의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겨우 다양한 색채를 활용하게 된 후기의 작품들이 많다.

<Portrait of Madame Redon> (1880)

이처럼 르동의 작품 세계가 검은색의 세계와 색채의 세계라는 뚜렷한 두 개의 형태로 나뉘는 이유 역시 그의 개인사적인 부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880년 마흔의 나이였던 르동은 늦은 나이에 카미유 팔트라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1889년 49세의 나이에 아들을 얻으면서 개인적인 생활도 안정을 찾게 된다. 또한, 1886년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에서 고갱을 만나면서 색채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다.

예술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르동의 개인적인 삶이 그의 작품 세계에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고, 동시에 누구에게나 공감 가는 일이기도 하다.

<Closed Eyes> (1890)
<Apollon chevauchant un monstre vert> (1910)
<Muse auf Pegasus> (1900)
<Mystical Conversation> (1896)

르동의 후기 작품들은 주로 파스텔과 유화에 의해 그려진 다양한 색채의 신화적 인물들을 그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창조한 그림들과 꽃 그림이 주를 이뤘다. 동시에 본래 무명 화가였던 그를 사람들이 발견하게 된 계기가 문학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 때문이었던 만큼, 문학적인 그림을 그리던 화가로 평가받기도 한다.

<The Chalice of Becoming> (1894)
<Buddha> (1905)
<Reflection> (1900)
<Butterflies> (1910)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크기가 작고 주류 미술 운동이라고 할 만한 흐름에 동참하지 않았기에, 오늘날에도 르동은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하다거나, 대가로 불린다거나 하는 위치의 화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독자적이고 고유한 아름다움을 한번 알게 된 이들에게는 쉽사리 그 환상을 떨쳐 낼 수 없을 만한 특별함을 소유한 화가이기도 하다.

르동의 그림 속 특유의 채도 낮은 푸른빛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눈에 보이지 않는 환상의 세계 속에 빠져 들어본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처럼 지그시 눈을 감은 채로, 생경한 색채들 속에서 헤엄쳐보는 것도 좋으리라.

<Ophelia Among the Flowers> (1905-1908)
<Girl with Chrysanthemums> (1905)
<Flower Clouds> (1903)
<Ophelia> (1900-1905)

 

Writer

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 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작업자.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 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 중. 2018년 9월부터 그동안 병행 해오던 밴드 '유레루나'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작업에 더 집중하여 지속적인 결과물들을 쌓아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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