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필립 로스는 미국 전후 작가들 중 단연코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저명한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필립 로스를 코맥 매카시,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와 함께 ‘미국 현대문학의 4대 작가’로 꼽은 바 있다.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전미비평가협회상, 펜 포크너상, 맨부커상 등 각종 문학상을 휩쓴 그는 미국의 역사가 개인과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파헤친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안녕 콜럼버스> <미국의 목가> <휴먼 스테인> 등으로 잘 알려졌다. 그는 또한 유대인 작가로서 유대계 이민자들이 미국의 중산층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무엇을 잃어버리고 또 어떻게 변해 갔는가를 탐색해 왔다. 로스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아메리칸 드림과 물질적 성공의 혜택은 누리지만 결국은 미국 사회의 변화와 역사의 격랑 속에 휩쓸려 파멸한다. 

필립 로스의 젊은 시절 ⓒThe LIFE Images Collection / Getty Images 

필립 로스는 1933년 미국 뉴저지의 폴란드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시카고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졸업 후, 아이오와와 프린스턴,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지속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창작 활동을 계속했다. 1959년 유대인의 풍속을 묘사한 단편집 <안녕 콜럼버스>를 발표하며 데뷔한 로스는 이듬해 이 작품으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 후 1969년 어느 변호사의 성생활을 고백한 <포트노이 씨의 불만>을 발표하며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필립 로스 via ‘The Wall Street Journal’ 

필립 로스는 1998년 <아메리칸 패스토럴(미국의 목가)> 로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그해 백악관에서 수여하는 문화예술훈장(National Medal of Art)을 받았고, 2002년에는 존 도스 파소스, 윌리엄 포크너, 솔 벨로 등의 작가가 수상한 바 있는, 미국 문학예술 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Arts and Letters)에서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상인 골드 메달을 받았다. 2007년에는 ‘지속적인 작업과 한결같은 성취로 미국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에게 수여되는 펜/솔 벨로 상을 받았다. 로스는 미국의 생존 작가 중 유일하게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Library of America, 미국 문학의 고전을 펴내는 비영리 출판사)에서 완전 결정판(총 9권)을 출간한 작가다. 필립 로스의 작품은 영화계에서도 인기를 끌어,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여럿 개봉하기도 했다. 그중 몇 작품을 소개한다.

*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메리칸 패스토럴>

American Pastoralㅣ2016ㅣ감독 이완 맥그리거ㅣ출연 이완 맥그리거, 제니퍼 코넬리, 다코타 패닝

필립 로스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작품 <미국의 목가>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는 이완 맥그리거, 제니퍼 코넬리, 다코타 패닝이 주연으로 나온다. 최근에 나온 영화 <쉐이프 오브 워터>에서 아름다운 OST로 아카데미상을 탔던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음악을 맡았다.

베트남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1960년대 말 미국, 아름다운 아내 ‘던’(제니퍼 코넬리), 사랑스러운 딸 ‘메리’(다코타 패닝)와 함께 여유와 행복을 모두 누리며 살던 ‘스위드’(이완 맥그리거)의 삶은, ​마을에서 일어난 폭발 테러 살인사건이 딸 메리의 반정부 운동 개입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 불거진 후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사건 이후, 자취를 감춰버린 버린 딸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자신의 인생을 쏟아붓는 스위드는 자신의 삶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목격한 뒤에도, 딸을 결코 포기하지 못한다. 그 와중에 아름답던 부인은 충격으로 정신을 놓고 만다. 끈질기게 딸의 행방을 찾던 스위드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 노숙자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딸을 만나 집으로 돌아가길 간곡히 설득했으나 딸은 더 이상 가족과의 인연을 이어갈 의지가 없었다. 결국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딸의 뒷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끝나고 만다. 미국 사회에 동화된 유대인이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미국 사회의 문제로 인해 파멸되어가는 것을 바라본다는 아이러니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에 출연했던 세 배우(왼쪽부터 제니퍼 코넬리, 이완 맥그리거, 다코타 패닝) ⓒEric Charbonneau/Invision for Lionsgate/AP Images
<아메리칸 패스토럴> 예고편

 

 

<휴먼 스테인>

The Human Stainㅣ2003ㅣ감독 로버트 벤튼ㅣ출연 안소니 홉킨스, 니콜 키드먼, 에드 해리스

<휴먼 스테인>은 2000년 출판되었고 2003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피부색은 희지만 실은 흑인인 ‘콜먼 실크’ 교수(안소니 홉킨스)가 유대인 행세를 하며 백인 여자와 결혼하고 대학의 학장까지 되지만 결국은 파멸한다는 비극적 이야기이다. 콜먼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대학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콜먼은 자신도 흑인이면서 흑인을 차별하는 인종주의자로 몰려 징계를 당하게 된다. 콜먼이 교수직을 그만두자 충격을 받은 아내는 심장마비로 죽고 만다.

외로운 콜먼은 37세 연하인 대학 청소부 ‘포니아’(니콜 키드만)와 연인이 되는데, 이 또한 같은 대학의 교수로부터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행위라고 비난을 받는다. 휴먼 스테인은 자신만 옳고 남은 틀렸다는 왜곡된 정의감과 독선이 어떻게 타자에게 폭력이 되며,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출간 당시 자기들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듯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성 추문을 맹렬히 비난하던 대학가의 분위기를 배경으로 깔고 있다.

작가 필립 로스와 함께한 주인공 니콜 키드만 via ‘long Pauses’ 
<휴먼 스테인> 공식 트레일러

 

 

<엘레지>

Elegyㅣ2008ㅣ감독 이자벨 코이젯트ㅣ출연 벤 킹슬리, 페넬로페 크루즈, 소냐 베넷

필립 로스가 2001년 발표한 소설 <죽어가는 짐승>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소설은 주인공의 대사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는 벤 킹슬리와 페넬로페 크루즈 주연으로 2008년에 만들어졌다. 나이 든 교수와 젊고 아름다운 제자와의 사랑 이야기이며 얼핏 보기엔 진부해 보일 수도 있는 줄거리이다. 주인공은 필립 로스가 소설을 쓸 때와 비슷한 60대 후반의 대학교수이자 저명한 비평가인 ‘데이빗 케페시’(벤 킹슬리). 데이빗은 섹스를 통해 고독과 나이 듦을 잊어버리고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그 속에서 사랑을 찾게 된다.

젊은 제자와의 섹스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삶을 살던 그는 ‘콘수엘라’(페넬로페 크루즈)라는 제자를 만나면서 자기가 놓은 덫에 갇힌 짐승처럼 콘수엘라에게 집착한다. 이 작품은 늙고 죽는 것에 대한 인간의 서글픈 통찰이다. 젊은 여주인공이 나이 든 남자주인공보다 일찍 죽게 되는 설정은 필립 로스가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다룬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주인공의 나이가 작가와 비슷한 것을 두고 작가의 마음이 많이 투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세간의 수군거림도 있었다.

<엘레지> 공식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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