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사망한 조지 로메로(1940~2017) 감독의 이른바 ‘시체 3부작’(1968~1985) 이래로 현대 좀비물은 비단 컬트 팬만이 아닌 대중에게도 꾸준한 사랑 받는 콘텐츠가 되었다. 물론 사랑을 받는 방식은 점차 변화한다. 사람과 좀비, 생과 죽음 사이 존재에 대한 고민과 고민보다 빠르게 번져 가는 공포와 혼돈을 표현해온 당대 좀비 영화들은 역사를 거듭할수록 그 무게감이 날로 가벼워지며 다양한 형태의 코미디로 진화해오고 있다.

 

아는 맛에 이끌리다

때 이른 더위만큼이나 일찌감치 극장가를 채우고 있는 공포영화들 틈 사이 좀비 영화가 살아남는 방식은 한없이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2000년대 초반 <28일 후>(2002), <새벽의 저주>(2004) 같은 멋진 작품도 있고, 파운드푸티지 형식을 취한 '알.이.씨' 시리즈처럼 장르를 변주한 경우도 있었지만 막상 오늘날 좀비 영화를 진지한 공포물로 창조하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밤의 황당한 저주>(2018)

The Night Watchmen | 감독 미셀 알티에리 | 출연 켄 아놀드, 댄 드루카, 카라 루이즈, 케빈 지게츠, 맥스 그레이 윌버, 제임스 레마, 맷 세비토, 티파니 셔피스

6월에 개봉하는 <한밤의 황당한 저주>와 같은 경우가 훨씬 보편적이다. 원제를 완전히 무시한 채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를 대놓고 카피한 제목을 앞세운 이 영화는 작금의 시대가 '좀비'라는 소재를 소비하는 방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한밤의 황당한 저주> 예고편

예고편만 봐도 왠지 영화 한 편을 다 본 것 같은 익숙한 서사와 장면들, 심지어 영화 <그것>(2017)의 ‘피에로’를 빼다 박은 캐릭터까지 등장하지만 관객들은 그래서 더욱 호기심이 동한다. 앞선 시대의 좀비 영화들이 좀비의 기원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좀비 사태 이후의 그로테스크하고 신선한 아비규환을 그리기에 집중했다면, 이제 그 혼돈의 현장마저 수없이 반복된 현재에는 익숙한 감각과 공식들을 마치 콩트나 불량식품처럼 가벼운 태도로 받아들이길 즐기는 것이다.

 

익숙함을 뒤틀다

'한밤의 황당한 저주'라는 제목에 아이디어를 제공한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좀비 코미디 영화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영화로, 이 작품 역시 <시체들의 새벽>(1978)을 근간에 둔 영화다. 다만 보다 적극적인 패러디와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전개로 영화를 가득 채워 관객으로 하여금 단지 좀비물의 익숙함을 즐기는 수준을 넘어서게 한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

Shaun Of The Dead | 에드가 라이트 | 출연 사이먼 페그, 케이트 애쉬필드, 닉 프로스트, 루시 데이비스, 딜란 모란, 니콜라 커닝햄, 피터 세라피노윅, 아르빈드 도시

<베이비 드라이버>(2017), <스콧 필그림>(2010) 같은 작품들로 통통 튀는 감각을, <뜨거운 녀석들>(2007) 같은 작품들로 독특한 유머 감각을 선보인 감독 에드가 라이트가 그의 절친이자 페르소나 배우인 사이먼 페그, 닉 프로스트들과 첫 호흡을 맞춘 영화이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 예고편

생사를 다투는 심각한 상황에 밝고 경쾌한 록 넘버가 흘러나오고, 일상의 소재들이 엉뚱한 순간에 상황 적절한 익살로 활용된다. DJ가 되는 것이 꿈이던 주인공 숀이 수집해왔던 레코드판들을 좀비를 공격하는 무기로 날리면서 그 와중에 아껴야 할 판을 고민하는 식이다.

 

두려움을 없애다

이러한 가벼움 속에서도 여전히 좀비물이 심장 쫄깃하고 무섭다면, 그것은 좀비 몸의 비현실적이고도 기괴한 혐오감과 이성을 잃은 좀비의 비인간적인 속성, 그리고 그것의 타깃이 주인공이나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웜 바디스> (2013)

Warm Bodies | 감독 조나단 레빈 | 출연 니콜라스 홀트, 테레사 팔머, 존 말코비치, 애널리 팁튼, 데이브 프랭코, 코리 하드릭트, 랍 코드리, 돈 포드


때문에 이 같은 일말의 불편함마저 해소시키는 영화들도 하나둘 생겨났다. 주인공이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일찍부터 좀비가 되고, 대신에 이성과 마음을 유지해 좀비화에 대한 두려움을 원천차단하는 영화들이다.

 

<리틀 비트 좀비> (2012)

A Little Bit Zombie | 감독 캐시 워커 | 출연 숀 로버츠, 크리스토퍼 터너, 크리스탈 로우, 크리스튼 헤거, 스티븐 맥허티, 에밀리 울러럽


좀비로 변해버린 주인공이 사랑에 빠져 심장이 뛰고 의식이 생겨난다는 독특한 설정의 <웜 바디스>나 모기에 의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지만 영화 제목처럼 그야말로 약간만 감염되어 인간의 지성과 감정이 남은 주인공을 그린 <리틀 비틀 좀비> 같은 영화의 노골적인 당당함이 두려움 없는 즐거움을 부여한다.

<리틀 비트 좀비> 예고편

 

 

일상을 뒤흔들다

좀비와 코믹이 만나는 의외의 결정적인 지점은, 좀비 사태가 도리어 복잡하고 힘든 일상과 사람들 간 불화를 날려주는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단조로운 목표의식과 끈끈한 연대감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 인사에 생존이라고 답하는 앞선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한 장면이나 단지 나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누군가가 순식간에 좀비로 변하는 순간을 걱정해야 하는 긴박한 비일상은 복잡한 우리네 일상을 송두리째 뒤바꾼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2015)

Scouts Guide to the Zombie Apocalypse | 감독 크리스토퍼 랜던 | 출연 타이 쉐리던, 로건 밀러, 조이 모건, 사라 두몬트, 데이비드 코에너, 할스톤 세이지, 클로리스 리치먼, 니키 코스

사실 이는 그동안 좀비 영화의 철학적 빈곤함을 꼬집는 비판적 요소가 되기도 했다. 좀비영화 속 좀비 설정들은 대부분 생존자와 좀비가 된 자를 단순히 이원화하여 서로가 서로를 고민 없이 학살하는 일차원적 자극만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예고편

허나 반대로 이처럼 고민의 여지를 줄이는 좀비와 좀비 세계관의 스펙터클함은 이를 활용하는 부차적인 재미 요소를 얼마든지 자유롭게 늘어날 수 있게 만들었다. 뱀파이어, 미라, 늑대인간 등 다른 어떤 호러 단골 캐릭터들보다도 좀비가 오래 살아남고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는 까닭인 것이다.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네이버 파워블로그를 수상했고,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아주경제> 신문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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