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망했어’ ‘혐생’ 등에 내포된 감정이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가 되었다. “다음 생엔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아!”라고 외치는 자를 위해 알아봤다. 동물의 삶은 과연 녹록할까? 자연을 깊숙이 들여다보자.

 

바다이구아나

바다이구아나 vs 뱀

남아메리카 동태평양 갈라파고스 제도에 자리한 페르난디나섬. 이곳엔 바다이구아나가 산다. 성장을 끝낸 바다이구아나는 단단한 피부 덕에 천적이 없을 만큼 강하지만, 새끼는 다르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모래 속에서 하나둘 부화해 세상에 나온 새끼 이구아나들은 태어나자마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닥뜨린다. 굶주린 뱀들이 새끼 이구아나가 몸을 드러낼 순간만 기다리고 있기 때문. 죽기 살기로 바위 위에 도달하기 위해 달리는 새끼 이구아나와 악착같이 달려드는 뱀 떼의 모습은 웬만한 추격전 못지않게 숨통을 조인다(심지어 뱀 이름조차 갈라파고스 레이서(Galapagos racer)다). 세상 빛을 보자마자 목숨을 건 레이스라니, 바다이구아나의 삶도 만만찮다.

 

턱끈펭귄

남극 대륙 끝에 있는 자보도프스키섬은 턱끈펭귄 150만 마리의 보금자리다. 화산섬인 이곳엔 온종일 거센 파도가 들이치고, 턱끈펭귄은 그 파도에 맞서 끊임없이 바다로 뛰어들어야만 한다. 이유는 제힘으로 먹이를 찾지 못하는 새끼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심지어 이 새끼 펭귄은 신선한 먹이만을 먹기 때문에, 부모 펭귄이 9~10시간마다 교대하며 바다에 뛰어들어 먹이를 잔뜩 구해올 수밖에 없다. 부모 펭귄은 먹이를 제 뱃속에 저장해 운반하므로 몸무게가 출발하기 전보다 30%나 늘어난다. 무거워진 몸으로 파도를 넘었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육지에 올라서도 3km가 넘는 길을 짧은 다리로 타박타박 걸어서야 가족에게 닿을 수 있다. 심지어 백만 마리가 넘는 펭귄 중에 제 가족을 찾아내기도 쉽지는 않은 일, 턱끈펭귄의 하루도 고단하긴 마찬가지다.

 

자이언트판다

동글동글한 배, 누워서 뒹굴뒹굴하며 대나무를 씹는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판다. 마냥 여유로울 것만 같은 자이언트판다도 나름대로 엄청 노력하며 산다. 자이언트판다는 편식을 심하게 해서 대나무만 먹는데, 문제는 이 대나무의 영양소가 충분치 않다는 것. 이 때문에 자이언트판다는 하루 중 14시간 이상을 대나무 먹는 데 써야만 한다. 살기 위해 하루의 반 이상을 먹고 있어야 한다는 건 자이언트판다가 짊어진 숙명이다.

 

그런데도 아름다운, 삶

위 모든 이야기는 BBC에서 제작한 자연 다큐멘터리 <지구: 놀라운 하루>에서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무려 1095일간 22개국을 오가며 촬영한 이 다큐멘터리는 자연이 ‘경이’ 그 자체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강바닥 진흙 깊숙한 곳에서 3년을 기다리다 단 하루, 환상적인 군무를 보여주는 긴꼬리 하루살이나 1분에 1mm씩 자라나는 대나무의 성장 속도, 거센 강물을 헤치는 새끼 얼룩말의 야무진 걸음은 그 자체로 감동을 안긴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이 오래오래 흐르려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경각심과 함께.

다 힘들다지만 나무늘보만은 조금 부러워질지 모른다

더불어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지루할 거란 생각은 오산. 목으로 싸우는 기린의 모습이나 귀차니스트로 유명한 나무늘보가 잽싸게 움직이는 장면은 웃음을 터지게 하고, 포식자들이 사냥에 나서는 신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촬영에 쓰인 DVD만 12300장, 공중촬영에 동원된 드론은 무려 200대다. 각고의 노력으로 지구 곳곳에서 채취한 자연의 모습을 배우 이제훈이 조곤조곤 짚어주는 내레이션과 함께 만나자.

배우 이제훈 <지구: 놀라운 하루> 내레이션 현장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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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