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어떤 영화로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 기억할까. 아무리 따뜻하고 정겨운 의미와 축복으로 가득 찬 날이라고 한들 굳이 매해 똑같은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 리스트에 지겨워할 필요는 없다. 꼭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라도, 조금 비뚤어져도 좋은 블랙 크리스마스 영화 몇 편을 소개한다. 

 

<아담스 패밀리>

The Addams Family | 1991 | 감독 베리 소넨필드 | 출연 안젤리카 휴스턴, 라울 줄리아, 크리스토퍼 로이드, 엘리자베스 윌슨, 크리스티나 리치
<아담스 패밀리> 포스터

 가족의 의미를 훈훈하게 되새기는 크리스마스 전통에 가장 익숙한 크리스마스 영화는 <나 홀로 집에>(1991)일 것이다. 그러나 가족영화로 포장했지만 어린 주인공을 홀로 집에 버려두는지도 모른 채 흉악한 강도들을 상대하게 하는 잔인한 영화를 보고 있을 필요는 없다.
<나 홀로 집에> 다음 해 개봉한 <아담스 패밀리>의 가족들은 절대 사랑하는 자식들을 방치하지 않는다. 단지 죽음과 고통을 열렬히 사모하는 크리스마스 전문 코스튬 가족일 따름이다. 기괴한 가족의 엽기적인 일상을 가볍고 유쾌하게 그린 영화 '아담스 패밀리 시리즈'는 1930년대 신문 만화를 원작으로 해, 1964~1966년에 ABC 방송국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던 코미디 영화다. 1편은 아담스 일가에서 오랫동안 실종되었던 삼촌 ‘페스터’를 되찾는 내용을 다루고 있어 크리스마스 가족영화로 안성맞춤이다.

<아담스 패밀리> 공식 트레일러

 

 

<아이즈 와이드 셧>

Eyes Wide Shut | 1999 | 감독 스탠리 큐브릭 | 출연 톰 크루즈, 니콜 키드먼, 시드니 폴락, 말리 리차드슨, 라드 세르베드지야
<아이즈 와이드 셧> 스틸컷
영화 내내 혼란스러워하는 윌리엄의 표정을 지켜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에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고 외치는 <러브 액츄얼리>(2003)의 커플 천국 선포를 언제까지 좌시해야 할까. 사랑을 믿지 않는 절대다수에게도 크리스마스는 허락되어야 한다. 이들에게는 거장 스탠리 큐브릭이 죽기 직전 완성했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1999)을 추천한다.
당시 실제 부부이기도 했던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출연했지만 이 영화는 결코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크리스마스 시기 뉴욕의 젊은 의사 ‘윌리엄’(톰 크루즈)가 우연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상류층 인사들의 은밀한 성적 유흥을 엿보게 되고 동시에 아내 ‘앨리스’(니콜 키드먼)가 다른 남자와 외도하는 망상에 시달리며 혼란을 겪는 이야기이다.

<아이즈 와이드 셧> 공식 트레일러

 

<배트맨 2>

Batman Returns | 1992 | 감독 팀 버튼 | 출연 마이클 키튼, 대니 드비토, 미셸 파이퍼, 크리스토퍼 월켄, 마이클 고
<배트맨 2> 스틸컷
이 영화는 배트맨이 아닌 펭귄맨과 캣우먼의 영화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나 드라마 역시 크리스마스 특선 시리즈로 인기다. 하지만 DC 엔터테인먼트의 유일한 희망인 배트맨의 모던 클래식 작품 팀 버튼의 <배트맨 2>(1992)이 그보다 크리스마스에 더 잘 어울리는 히어로 영화다.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배트맨 ‘브루스 웨인’(마이클 키튼)보다 빌런인 ‘펭귄맨’(대니 드비토)이나 ‘캣우먼’(미셸 파이퍼)의 사연과 스토리에 훨씬 많은 할애를 한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돌연변이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려진 펭귄맨, 여성을 학대하는 남성들에게 복수를 꿈꾸는 캣우먼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를 향하는 크리스마스 스토리의 시선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배트맨 2>의 엔딩 신은 브루스 웨인이 특별히 여성들을 향해 성탄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배트맨 2> 극장용 공식 트레일러

 

 

<브라질>

Brazil | 1985 | 감독 테리 길리엄 | 출연 조나단 프라이스, 킴 그리스트, 이안 홈, 로버트 드 니로, 밥 호스킨스
<브라질> 포스터

산타클로스와 루돌프가 날아다닐 것만 같은 크리스마스의 환상적인 모험 영화를 기대한다면 수년째 크리스마스 안방을 사수하는 '해리포터 시리즈' 대신 SF 모험물 <브라질>(1985)을 추천한다. 역시 크리스마스에 벌어지는 해프닝이 주된 스토리인 이 영화는 공권력이 사람들을 과잉 통제하는 미래 세계의 평범한 소시민 ‘샘 라우리’(조나단 프라이스)가 꿈에서 본 여인을 우연히 현실에서 마주치면서 그를 구하기 위해 공권력에 대항하게 되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브라질> 공식 트레일러

 

 

<캐롤>

Carol | 2015 | 감독 토드 헤인즈 | 출연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카일 챈들러, 제이크 레이시, 사라 폴슨
<캐롤> 스틸컷

블랙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어둡고 괴상한 영화만 추천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두 여자 주인공 엘사와 안나의 <겨울왕국>(2014)을 대체할 영화로, 블랙까지는 아니어도 명도 짙은 무드의 <캐롤>(2016)을 권할 것이기 때문이다.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주인공의 이름이 애초부터 '캐롤'인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에 제격일 수밖에 없는 영화다.
영화는 맨해튼 백화점에서 일하던 ‘테레즈’(루니 마라)와 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갔던 캐롤(케이트 블란쳇)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과정을 황홀한 카메라와 화면 연출로 잡아낸다. 비록 테레즈와 캐롤을 대하는 세상의 시선은 ‘블랙’ 크리스마스라고 할 법하지만 적어도 카메라를 통해 둘을 대하는 관객의 시선은 총 천연의 진한 색으로 물들어 서로를 향한 두 주인공의 시선과 다름없게 된다.

<캐롤> 공식 예고편

 

 

<블랙 크리스마스>

Black Christmas | 1974 | 감독 밥 클락 | 출연 올리비아 핫세, 케어 둘리, 마곳 키더, 존 색슨, 마리언 왈드맨
<블랙 크리스마스> 포스터

아예 '블랙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기도 하다. <로미오와 줄리엣>(1968)으로 유명한 올리비아 핫세 주연의 영화로 장르영화사적 의미가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이는 추천하지 않기로 한다. 이색 추천 리스트이기는 하지만,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로 피 튀기는 70년대 슬래셔 무비를 추천할 용기는 없는 까닭이다. 당시엔 혁신적인 영화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나 고전 작품이 되어버린 영화이니만큼 스토리 구조는 뻔하다. 그러나 당시 올리비아 핫세의 모습이 궁금한 장르 팬이라면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도전해 볼만은 하다.

<블랙 크리스마스>(1974) 공식 트레일러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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