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은 ‘독일 운명의 날’이라고 불릴 만큼 굵직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난 날이다. 그중에서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은 우리에게 매우 또렷한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다. 필연적인 실수와 오해로 담장은 무너져 내렸다. 동독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지금의 독일은 오스탈기(동독의 삶에 대한 향수)를 호소하는 주민들만큼이나 섬세하게 각종 박물관이나 기념비로 동독을 기록한다. 이런 기억과 자료를 바탕으로 많은 영화가 동독 시절의 생활상을 다시 그렸다. 독일의 흑역사 중 하나인 슈타지와 인간미를 함께 담은 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타인의 삶>

Das Leben des Anderen | 2006 |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 출연 울리히 뮤흐, 마르티나 게덱, 세바스티안 코치

1984년의 동독 베를린. 1980년대 유럽은 냉전체제가 완화되고 있었지만 동독의 정부는 주민들에게 여전히 고립과 억압을 강요했다. 개방의 물결 속에서 슈타지는 폭력보다 더 교묘한 방법으로 도청은 물론, 우편물을 검사하고 가족과 친구들까지 괴롭혔다. 집을 샅샅이 뒤지기도 했다. 이때 슈타지의 직원과 여기에 협력했던 밀고자는 모두 30만 명에 달했다. 직접 감시를 당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언제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알고 있는 것을 감춰야 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타인의 삶> 스틸컷

언론과 예술계도 이를 피할 수 없었다. 영화 속 감청 및 심문 전문가인 ‘비즐러’(울리히 뮤흐) 교수는 슈타지의 사주로 작가와 배우 부부인 ‘드라이만’ 부부(마르티나 게덱, 세바스티안 코치)를 도청하기 시작한다. 24시간 그들의 모든 소리와 움직임을 감시하던 비즐러는 그들의 책, 음악, 애정이 전하는 감정에 서서히 동화된다. 예술을 통해 감시자와 피감시자 사이를 오가는 섬세한 공감의 선과 오랜 기간 관련자들을 인터뷰하여 재현한 동독의 생생한 삶이 볼거리다. <굿바이 레닌>(2003)과 함께 잘 알려진 동독 관련 영화로, 2006년 유럽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각본상, 남우주연상, 2007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안았다.

<타인의 삶>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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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Barbara | 2012 | 감독 크리스티안 펫졸드 | 출연 니나 호스, 로날드 제르필드, 라이너 복

발트해와 맞닿은 영화 속 배경은 옛 로스토크 구의 어느 소도시다. 의사 ‘바바라’(니나 호스)는 서독으로 출국을 요청했다가 베를린 샤리테 병원에서 지방 소도시로 좌천되는 동시에 지독한 감시를 받게 된다. 바바라는 바다를 건너 덴마크에서 애인을 만날 계획을 세운다. 차디찬 발트해를 뗏목으로 건널 만큼 탈출은 간절했다. 오로지 서독으로의 탈출을 목표로 생활하던 바바라 앞에 지옥 같은 소년원에서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스텔라’(야스나 프리치 바우어)가 나타나고, 동료 의사와 마을 사람들의 삶이 바바라 곁으로 성큼 다가온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주하는 강렬한 인연의 끈은 이 영화에서 놓칠 수 없는 짙은 여운이다.

<바바라> 스틸컷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의 대표작이자 베를린국제영화제와 유럽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독일의 역사적 배경을 다루는 데 있어 실험적 기교보다는 상황에 둘러싸인 인물의 내면에 집중하는 펫졸드 감독의 섬세함이 잘 묻어난 영화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에서 열린 <21세기 젊은 거장 4인전>에 소개되기도 했다.

<바바라>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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