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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ove Supreme>(1964) 녹음 당시 콜트레인과 함께 한 아치 셰프

올해로 나이 팔십에 들어선 재즈 색소폰 레전드 아치 셰프(Archie Shepp, 1937~)는 고등학교 시절 콜트레인의 음반을 듣고 인생의 행로를 정했다. 콜트레인의 공연에 쫓아다니며 파로아 샌더스(Pharoah Sanders), 웨인 쇼터(Wayne Shorter)와 함께 콜트레인 사단의 일원으로 재즈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콜트레인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그의 걸작 앨범 <A Love Supreme>(1964)과 <Ascension>(1965) 녹음에 참여하였고, 콜트레인이 공동 프로듀서로 지원한 ‘임펄스 레이블’ 첫 음반 <Four for Trane>(1964)이 평론가의 격찬을 받으며 일약 재즈계의 루키로 떠올랐다.

아치 셰프는 공연에서 노래를 하거나 시를 낭송하기도 한다(1994년)

 

프리재즈, 아프리카 근본주의 그리고 사회 운동

아치 셰프는 콜트레인의 프리재즈 걸작 <Ascension>에 참여하면서 프리재즈의 세계에 깊이 빠져든다. 프리재즈 피아니스트 세실 테일러(Cecil Taylor)의 밴드에서 연주하였고, 오넷 콜맨(Ornette Coleman), 돈 체리(Don Cherry)와 함께 뉴욕 컨템퍼러리 파이브(New York Contemporary Five, 1962~1964) 라는 이름의 앙상블 활동을 하면서 프리재즈 운동의 기수가 되었다. 아프리카 근본주의, 인권 운동에도 깊숙이 개입하였고, 음반 <The Magic of Ju-Ju>(1967)에서는 아프리카 근본주의를, <Attica Blues>(1972)에서는 아티카 교도소 폭동 당시 인권탄압에 대한 항의의 메시지를 담았다. 1971년부터는 뉴욕 주립대(버펄로), 메사추세츠 주립대(올버니)에서 약 30여 년 간 교수 생활을 겸하면서 아프리카 근본주의와 문화를 가르쳤다.

콜트레인과 함께한 앨범 <New Thing at Newport>(1965)의 수록곡 ‘Call Me by My Rightful Name’

 

마일스가 두려워했던 카리스마

아치 셰프는 콜트레인으로부터 존중과 사랑을 받았지만, 당시 콜트레인보다 위상이 높던 마일스 데이비스가 두려워했을 정도로 강한 성격과 음악적인 카리스마를 지녔다. 이안 카(Ian Carr)의 저서 <Miles Davis>에 따르면, 마일스는 “아치 셰프의 연주를 듣고 나면 청중들은 미친 사람이 돼. 나는 미친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고 싶지 않아.”라며 연주 순서를 정할 때 한사코 아치 셰프의 뒷 순서에 연주하기를 마다했다. 한번은 마일스 콤보의 클럽 공연 때 마일스가 아치 셰프의 콤보 참여를 거부하며 대기실에서 관계자와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다. 하지만 공연 도중 아치 셰프가 불쑥 나타나 콤보의 연주에 꼈고, 그 날 마일스는 말도 없이 공연에서 사라져 찾을 수가 없었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당시 성공에 도취하여 현실에 안주하던 마일스가 아치 셰프의 활력에 자극을 받았다는 것이다.

<Deja Vu>(1992)에 수록한 ‘Sous le ciel de Paris’(파리의 하늘 아래). 아치 셰프는 프랑스에 자신의 레이블을 설립하면서 많은 활동을 했다

 

영혼이 포효하는 색소폰 소리

그의 1960년대 음악은 사회적 불평등과 인권 탄압에 대한 분노에 가득 차 비타협적이고 강렬했지만, 1970년대에 접어들어 유럽을 오가면서부터는 프리재즈에서 점차 벗어나 R&B에 가까운 부드러운 음악으로 변해간다. 1990년대에는 소울과 발라드를 주로 연주하며 젊은 시절 그의 음악에서 묻어나던 분노와 격정의 요소는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음반 <Blue Ballads>(1995)와 <Black Ballads>(2000) 는 그의 팬이라면 소장할 가치가 있는 명반이다. 느릿한 발라드 연주지만 한때 프리재즈를 주도했던 그의 격정적인 멜로디가 곳곳에 드러난다. 한 평론가는 그의 연주를 가리켜 ‘영혼이 포효하는 소리’라 불렀다.

<Blue Ballads>에 수록한 ‘Alone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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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로커 프랭크 자파(Frank Zappa)와 함께 연주하는 아치 셰프

그는 현존하는 재즈 파이오니어 중 한 명이다. 프리재즈의 선구자이자 자신의 전공을 살린 뮤지컬 제작자였으며, 재즈 공연에서는 시를 낭송하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한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인권 운동에 앞장섰으며 대학에서 아프리카 문화를 강의하였고, 최근에는 온라인에서 젊은 재즈 학도를 대상으로 자신의 경험담을 전파하며 노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아치 셰프는, 역대 재즈 아티스트 중 ‘가장 깨어 있는 활동가’를 거론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 중 한 명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