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의 20세기>는 자유롭고 순수했던 1979년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를 배경으로,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다섯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각 세대를 대표하는 세 명의 배우 아네트 베닝, 그레타 거윅, 엘르 패닝의 캐스팅 소식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이 영화는 이미 골든글로브 시상식 작품상 및 여우주연상,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1970년대 공기를 감각적으로 재해석한 영상과 거의 모든 장면에 영감이 넘쳐나는 매력적인 비주얼로 관객들을 사로잡을 <우리의 20세기>의 관전 포인트를 몇몇 키워드로 살펴보았다.

 

1. 안나푸르나 픽쳐스와 A24

영화는 일찍이 국내 개봉 당시 36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아트버스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영화 <그녀(Her)>(2014)를 내놓았던 ‘안나푸르나 픽쳐스’가 제작을 맡아 기대를 모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의 20세기는> 현재 예술영화 팬들에게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는 안나푸르나 픽처스의 안목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 북미 배급은 <문라이트>(2017)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으며 믿고 보는 배급사로 자리매김한 ‘A24’가 맡아 더욱 든든한 크레딧을 확보했다. 영화의 예고편을 보자. 단번에 느낌이 올 것이다.

 

2. 타고난 비주얼리스트, 마이크 밀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마이크 밀스 감독은 탁월한 감각과 뛰어난 연출력으로 폭스바겐, 아디다스, 나이키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의 광고를 만들고 마크 제이콥스, 오노 요코 등 스타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등 전방위 아티스트로서 활약해왔다. <비기너스>(2011)가 노년의 나이에 커밍아웃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던 작품이라면, <우리의 20세기>는 감독 자신을 키워준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음악, 의상, 소품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체크하고 완벽을 기하는 마이크 밀스의 완벽주의자적 기질은 그의 영화를 완성하는 중요한 덕목이고, 덕분에 할리우드의 내로라 하는 배우들이 그와 함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3. 왜 1979년 산타바바라인가

미국 사회에서 1979년은 과도기였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마지막 임기가 시작된 해였고 이란에서는 이슬람 혁명과 함께 미 대사관 인질 사태가 일어났다. 값싼 에너지를 거의 마음대로 사용해 오던 미국인들은 석유 파동으로 에너지 위기에 대한 불안감에 빠졌다. 나라 전체가 불황이었다. 마이크 밀스 감독의 설명처럼 “70년대 후반은 ‘현재’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그러나 부를 열망했던 80년대, 에이즈의 비극, 인터넷의 영향, 9.11 사건, 빈부격차들과 같은, 그 이후에 펼쳐질 시대, 바로 다음에 펼쳐질 미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이 영화가 우리가 절대 돌아가지 못할 시대와 순수에 대한 애가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4. ‘도로시아’ 아네트 베닝

제목대로 영화는 1979년 산타바바라에 사는 세 여성의 삶을 서사적 중심에 놓는다. 그중에서도 ‘도로시아’는 이야기를 전개하고 주도하는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다. 아네트 베닝은 세련된 패션 감각으로 버켄스탁을 신고,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반항적인 펑크 록에 희열을 느끼는 등 새로운 것을 보고 경악하면서도 재미있어하고 호기심을 감추지 않는 진취적 여성 ‘도로시아’를 능수능란하게 연기했다. 데뷔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동시대 영화인으로서 흉내 낼 수 없는 커리어를 완성해온 아네트 베닝은, 이 영화로 또 한번 ‘인생 캐릭터’를 경신하며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5. ‘애비’ 그레타 거윅

그간 <프란시스 하>(2012),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 <매기스 플랜>(2017) 같은 영화에서 엉뚱하지만 볼수록 정이 가는 캐릭터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하며 사랑스러운 매력을 보여준 그레타 거윅은 이 영화에서 펑키한 아티스트 '애비'로 분했다. 그동안 그가 맡아온 캐릭터와 외양부터 완벽히 구분되는 애비는 뉴욕에서 사진을 전공한 젊은 아티스트다. 당시 뉴욕의 무대에서 연극을 준비하고 있던 그레타 거윅은 시나리오를 접한 뒤, 꿈을 가지고 뉴욕으로 향한 어린 예술가 애비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껴 단번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빨간 머리(숏컷)를 하고 강렬한 펑크 록에 춤을 추는 자유분방함, 자신의 주관을 굽히지 않는 강인한 태도, 그러나 한편 흔들리는 ‘제이미’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넉넉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면모까지. 이쯤 되면 그레타 거윅의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이 모두 응축된 영화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6. ‘줄리’ 엘르 패닝

쉬지 않고 새로운 작품을 내놓고 있는 대세 할리우드 스타, 엘르 패닝이 연기하는 '줄리'는 흔히 재현되는 소녀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동갑내기 남자애 ‘제이미’보다 한 뼘은 더 큰 키와 차분한 눈빛으로 조용하면서도 강인하게 극에 무게감을 더한다. 냉소적이면서 순수한 면이 있는 줄리를 연기하는 엘르 패닝에게서 꾸며낸 듯한 느낌은 전혀 찾을 수 없고, 그의 놀라운 집중력과 몰입력을 지켜본 아네트 베닝이 “줄리는 쇼킹했고 유쾌했으며 감동적이었다”며 연기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7. 사운드트랙

마이크 밀스 감독의 씨네필적 면모는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1979년은 펑크라는 서브 컬쳐가 언더그라운드에서 주류로 떠오르는 시기였고 로큰롤을 대체할 대중음악의 혁명이 시작될 때였다. 한때 주체적이고 선구적이었지만, 지금은 시대에 뒤처진 도로시아를 위해서는 험프리 보가트의 영화음악과 1930, 40년대 클래식이 쓰였고, 애비와 제이미가 듣는 곡으로는 데이비드 보위, 토킹 헤즈, 블랙 플래그 등의 노래를 틀었다. 어떤 음악이 나오건 그들은 함께 춤을 췄고, 영화 속 등장하는 댄스 장면들은 모두 이 과정에서 나왔다. 새 시대를 영접하는 것 같이 장엄하고 신선한 기운이 느껴지는 트랙 ‘Santa Barbara, 1979’가 인트로에 흘러나올 때 당신은 이미 영화에 마음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영화의 인트로에 쓰인 곡 ‘Santa Barbara, 1979’(Roger Ne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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