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HBO에서 방영한 미니시리즈 8부작 <트루 디텍티브>(True Detective) 시즌 1은 그해 에미상 5관왕에 오른 서던 고딕풍 형사물의 걸작이다. 서던 고딕(Southern Gothic)은 미국 남부 특유의 음습한 정서와 초자연적, 이교적 분위기의 문학 작품을 지칭하는데, 영화나 TV에서도 하나의 서브 장르를 이루며 <엔젤 하트>(Angel Heart, 1987), <스켈리톤 키>(The Skeleton Key, 2005), <럼블 피쉬>(Rumble Fish, 1983) 같은 영화들이 계보를 이었다. 국내 영화로는 악마, 무당, 폐쇄적인 집단성이 등장하는 영화 <곡성>(2016)이 해당될 수 있겠다. 신예 작가 닉 피졸라토의 탄탄한 각본과 할리우드의 중견 배우 매튜 맥커너히와 우디 해럴슨을 투톱으로 내세운 <트루 디텍티브> 시즌 1은 폐쇄적인 이교도 집단과 종교적 상징, 주술, 제물이 연계된 비정상적 환경에서 자라난 연쇄 살인마를 17년간 쫓는 두 명의 형사 이야기를 다뤘다.

<트루 디텍티브> 시즌 1 예고편

시즌 1은 방송되자마자 평단의 극찬과 스릴러 팬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HBO를 대표하는 형사 드라마가 되었다.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 출신으로 음산한 분위기의 미스터리 작가로 주목을 받은 닉 피졸라토는 AMC 채널의 형사물 <킬링>(Killing)의 에피소드 두 편을 쓰고는 프로듀서와 작가 간의 팽팽한 긴장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작가실을 나왔다. 그리고 수년간 혼자 틀어박혀 <트루 디텍티브> 원고를 완성하여 HBO에 넘겼다. 그는 19세기 미스터리 작가 엠브로스 비어스와 로버트 챔버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고, ‘카코사’, ‘옐로우킹’ 같은 컬트적 이미지와 서던 고딕 분위기를 제대로 드러냈다.

카코사(Carcosa)는 앰브로스 비어스(Ambrose Bierce, 1842~1914)의 소설 <An Inhabitant of Carcosa>(1886)에 등장하는 가상 도시다
옐로우킹(Yellow King)은 로버트 챔버스(Robert W. Chambers, 1865~1933)의 소설 <The King in Yellow>(1895)에서 콘셉트를 따왔다
두 형사가 범인의 '카코사'를 습격하는 마지막 장면

시리즈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아이를 잃은 슬픔과 아픔을 숨긴 채 냉소적이고 집요한 형사로 살아가는 러스트 콜, 바로 배우 매튜 맥커너히다. 할리우드에서 큰 키에 잘생긴 바람둥이 남자 역을 주로 맡아 연기 실력의 다양성을 의심받았던 그는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2013), <인터스텔라>(2014)에 이어 TV 시리즈 <트루 디텍티브>에서 찬사를 받으면서 배우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파트너 형사 우디 해럴슨의 가정적이고 현실 타협적인 캐릭터와 대비되는, 염세적인 러스트 콜 형사의 대사 연기는 시리즈의 아이덴티티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터넷에 올라 온 편집영상 <The Story of Rustin Cohle>

시즌 1의 성공에 고무된 HBO는 바로 다음 해 콜린 파렐, 레이첼 맥아담스를 내세운 시즌 2를 선보였다. 작가 닉 피졸라토를 재촉해 1년 만에 집필과 제작을 마무리한 <트루 디텍티브> 시즌 2는 이전의 서던 고딕이 아니라,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는 하드코어 형사물을 내세웠다. 물론 시즌 1의 인기와 화려한 캐스팅 덕에 시청률은 전작을 뛰어넘었지만, 전작보다 스토리의 힘이 떨어졌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트루 디텍티브> 시즌 2 예고편

그로부터 2년간 HBO는 후속작을 향한 팬들의 열망을 뒤로 한 채 서두르지 않고 계속 함구해왔다. 러스트 콜 형사 캐릭터를 다시 불러들인다는 설도 있고, 이미 에피소드 2개 분량을 완성했다는 소문도 들리지만, 2018년까지 작가 닉 피졸라트를 확보했다는 점만 확실할 뿐이다. 매튜 맥커너히가 다시 배역에 관심을 보였다거나, 영화 <문라이트>(2016)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마허샬라 알리가 캐스팅되었다는 기사 몇 개가 나온 게 전부다. 2년 동안 기다려온 수많은 팬의 마음과는 달리 2018년에 방영할 것으로 예고된 <트루 디텍티브> 시즌 3의 모습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Vice>가 제작한 미국 실존 사건 ‘트루 디텍티브’의 르포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