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도 친구도 연애도 뭐 하나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17세 소녀의 지질하고 유별난 사춘기를 유쾌한 터치로 그려낸 영화 <지랄발광 17세>는 네티즌들의 청원에 힘입어 영화관에 개봉된 영화다. <겟 아웃>에 이은, 또 하나의 ‘강제 개봉작’인 셈이다. 국내 극장 개봉 없이 바로 DVD로 직행하려 했으나 개봉 문의가 쇄도하자 소니픽쳐스는 결국 제작해 둔 DVD를 전량 폐기하고 개봉으로 방향을 틀었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95%, 골든토마토 올해의 코미디 영화 TOP5에 빛나는 화제작 <지랄발광 17세>의 관전 포인트를 몇몇 키워드로 미리 만나보자.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네이딘’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17세도 참 적잖이 ‘지랄’ 맞았다. 이상하게 유독 ‘나’에게만 불행이 들이닥쳤고, 누구 하나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사춘기의 흔한 ‘발광’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던 가족이 제일 야속했다. 영화의 주인공 ‘네이딘’(헤일리 스테인펠드)이 느끼는 감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자식보다 본인 인생이 더 중요한 엄마, 잘 생기고 인기 많은 데다 공부까지 잘하는 ‘엄마아들’(오빠), 이런 엄마아들과 눈이 맞아버린 10년지기 ‘베프’, 고민 상담을 해도 전혀 도움도, 위로도 안 되는 ‘팩트폭격기’ 역사 선생님까지, 네이딘의 주변에는 ‘답 없는’ 인간들 투성이다.

그래서 네이딘은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퍼붓는다. '지랄발광'을 넘어 한 대 때려주고 싶을 만큼 얄미울 때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 누구보다 유별나고 극성스러웠던 우리들의 17세가 떠올라 찡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마냥 유쾌하고 상큼 발랄한 청춘물은 아니지만 군데군데 박아 놓은 코믹 장치 덕에 100분의 러닝타임이 지루할 틈 없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지랄발광 17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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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리 스테인펠드

영화 속 헤일리 스테인펠드는 네이딘 그 자체다. 여드름이 그대로 드러난 수수한 민낯에 선생님마저도 질색하는 촌스러운 파란색 재킷을 꾸역꾸역 걸쳐 입고 “평생 이 얼굴로 살아야 하다니 이번 생은 망했다”며 절망한다. 그러나 한편 "힘든 사람은 나뿐이라고 생각하게 돼. 그럼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 같으니까." 같은 측은한 대사들은 어쩐지 나도 이 지랄발광의 시기를 채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동질감마저 들게 한다. 헤일리 스테인펠드는 <비긴 어게인>(2014)에서 주인공 ‘댄’의 딸 ‘바이올렛’ 역으로 국내 팬들에게도 눈도장을 찍은 차세대 연기파 배우로, <지랄발광 17세>로 골든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여성영화비평가협회시상식 최우수 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북미 개봉된 <피치 퍼펙트 3>와 후반 작업 중인 <트랜스포머>의 스핀오프 <범블비>에서도 그의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다.

Hailee Steinfeld 'Love Myself' MV

알고 보면 헤일리 스테인펠드는 2015년부터 꾸준히 크고 작은 앨범을 발매하며 활발한 음악 활동을 이어온 역량 있는 뮤지션이다. 데뷔 싱글 ‘Love Myself’로 시작해, 팬들이 자신을 부르는 애칭인 ‘헤이즈’를 딴 EP <Haiz>를 포함, 최근까지 총 5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개성 있는 마스크와 또렷한 매력으로 미우미우(Miu Miu), 게스(GUESS), 갭(GAP) 같은 패션 브랜드의 모델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우디 해럴슨

네이딘이 유일한 친구 ‘크리스타’를 친오빠에게 빼앗겼을 때나, 짝사랑 남에게 실수로 낯뜨거운 문자를 보내고 자살소동을 벌일 때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건 역사 선생님 ‘브루너’(우디 해럴슨) 뿐이다. “제가 와서 말 상대 해주니까 좋죠?”라는 물음에 “원숭이가 온 것보다는 낫지”라며 시니컬하게 맞받아치는, 핑퐁처럼 통통 오가는 둘의 대화를 지켜보는 것 또한 흥미롭다. 영화의 무게감과 재미를 균형 있게 저울질하며 시크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우디 해럴슨의 농익은 연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초청작

여차해서 네이딘은 짝사랑 남으로부터 데이트 신청을 받기에 성공한다. 그런데 데이트에 마냥 들뜬 네이딘과는 달리, 남자는 잠자리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뒤늦게 정신이 든 네이딘은 '사랑 없는 섹스'는 불가능하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린다. 이 영화가 '여성영화제'에 초청 상영된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춘기 소녀가 겪는 성장통을 1인칭 시점으로 사려 깊게 풀어낸 웰메이드 하이틴 코미디 <지랄발광 17세>는 2017년 개봉되어 8만 3천명의 관객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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