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늠하기 어려운 매체 중 하나다. 누군가는 소리가 눈에 보이지 않아 가늠이 어렵다면 정수기의 물과 비유하라고 했다. 어떠한 방법의 필터링을 거치느냐에 따라 수질이 달라지듯, 소리 또한 과정에 따라 음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이 더러우면 마실 수 없듯 소리도 더러우면 들을 수 없다고 가정한다면, 좋은 사운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내일 당장 음악을 발매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이 사람을 가장 먼저 찾아갈 것이다. 2012년 나의 첫 앨범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호흡을 맞추고 있는 엔지니어이자, Keith Ape, Beenzino, Peejay, B-FREE, 서사무엘, 김반장, 윤석철트리오, 다이나믹듀오 같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성지가 되고 있는 ‘Boost Knob’의 대표 박경선 엔지니어다.

‘Boost Knob’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나?
초기엔 대학 졸업하고 망원동에 ‘Slick Sound’라는 이름의 작은 스튜디오를 만들어 일하다, 2013년 남산으로 옮기게 되면서부터 ‘Boost Knob’이라는 이름을 지었고,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사실 이름에 딱히 큰 의미는 두지 않았다. 그냥 이름이 질리지 않고 멋있어서 그렇게 지었다.

힙합 프로듀서에서 엔지니어가 되기까지 큰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첫 음악을 힙합으로 시작했다. 리스닝 시절을 거치고, 돈을 모아 MPC 사서 샘플링 작법으로 한창 비트를 만들던 시기가 있었다. 나중엔 베이식(Basick)의 믹스테잎, 일탈, 여포 같은 힙합뮤지션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다 j-dilla(제이 딜라)를 무척 좋아하게 되어 ‘어떻게 하면 저런 질감의 소리를 만들 수 있을까?’ 연구하다 자연스럽게 믹싱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렇게 두 가지 일을 병행하다 어느 순간 음악적인 요소보다는 음향적인 요소들에 더 매력을 느껴 아예 엔지니어링으로 전향했다.

Boost Knob 스튜디오의 가장 큰 메리트는 녹음부터 믹싱, 마스터링까지 한 스튜디오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보통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라는 인식이 있지 않나. 어떻게 하다 녹음에서부터 믹싱, 마스터링까지 전부 할 생각을 하게 된 건가?
내 곡을 마스터링 함으로써 믹싱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고, 새롭게 알게 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믹싱에서 마스터링까지 하게 됐다. 클라이언트에게 충분한 버짓이 있다면, 더 좋은 사운드를 위해 해외의 좋은 마스터링 엔지니어들한테 보내보고 싶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스튜디오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궁금해한다. 본인이 생각하는 프로듀서와 믹싱 엔지니어의 역할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스튜디오 안의 좋은 프로듀서는 곡만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곡을 잘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레코딩 프로덕션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가 있는 사람이어야 하며, 매번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서도 판단을 잘 내릴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다. 음악적인 것들 이외에도 아무래도 스튜디오도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기 때문에 심리적인 것도 잘 알아야 하고, 리더십도 있어야 한다. 모든 영역에 있어 제일 위에서 컨트롤 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능력이 출중해야 한다. 믹싱 엔지니어의 역할은, 프로듀서에게 받은 악기 소리들을 정확한 밸런스와 위치로 잡아주는 것이다. 감성적인 표현은 그다음이라고 생각한다. 클라이언트가 지적하거나 요구하는 바를 손실 없이 표현하는 것도 믹싱 엔지니어의 큰 역할 중 하나다. 사실 좋은 사운드라는 것은 사람이나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에게는 *등청감곡선이라는 것이 있어 잘 들을 수 있는 소리와 잘 들리지 않는 소리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이런 부분에 있어 엔지니어가 중심을 잃고 취향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면 절대 만족하는 결과물을 낼 수 없다.
(*등청감곡선- 같은 크기의 소리를 들었을 때 사람이 귀로 인지하는 소리 크기의 차이를 주파수 대역별로 환산한 그래프)

지금까지 작업한 곡 중 베스트 3를 꼽는다면 어떤 곡이 있을까?

1. Keith Ape ‘It G Ma’ (녹음, 믹싱, 마스터링)
당시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믹싱을 진행하던 중간에 다른 곳에서 녹음했던 보컬 트랙들 중 찢어지는 부분이 있어, 재녹음까지 하며 2박 3일을 스튜디오에서 다 같이 보냈다.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사운드적인 부분에 있어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곡이 공개되고 난 후 피드백이 점점 많아지는 걸 직접 보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재미있던 에피소드로 기억에 남아있다.

2. Beenzino ‘We Are Going To’ (믹싱, 마스터링)
사실 이 곡의 작업을 맡게 되었을 때, Beenzino라는 아티스트와 프로듀서 Peejay라는 이름만으로도 알게 모르게 부담이 있었다. 더군다나 ‘We Are Going to’의 컨셉이 두 곡을 하나의 곡으로 합친 형태였기 때문에 컨셉을 이해하는 데 있어 시간이 꽤 걸렸다. 마찬가지로 시간이 촉박했던 상황에서 쉽지 않은 컨셉의 곡을 드라마틱하게 잘 표현한 것 같아서 꽤 만족스러운 작업물 중에 하나로 꼽고 싶다.

3. Raw by Peppers ‘Spaceship Out Of Bones’ (album) (믹싱, 마스터링)
음악을 가려듣는 편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힙합 위주의 작업물들이 많다 보니, 밴드 사운드를 맡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로바이페퍼스는 내가 맡은 몇 안 되는 밴드앨범이다. 지방에 있는 로바이페퍼스 지인의 개인 작업실에서 녹음한 소스들을 가지고 작업에 들어갔는데, 녹음된 파일들을 확인해보니 이미 악기 소리에 어느 정도 이펙팅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사운드를 크게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대신 하드웨어 아웃보드들을 활용해서 최대한 아날로그 질감의 느낌들을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결과 또한 마음에 들었다.

엔지니어로서 집에서 음악을 만드는 베드룸 프로듀서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팁을 하나 준다면?
믹싱을 위해서 스튜디오에 자신의 곡을 트랙킹한 소스를 보낼 때, 플러그인 이펙터를 걸고 보내야 하는지, 뺴고 보내야 하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많더라. 믹싱 과정에서 프로듀서들이 불필요한 시간과 손실을 줄일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컨셉만 확실하면 트랙에 이펙터를 건 채로 보내줘도 상관은 없다. 대신 어떠한 이유로 그 이펙터를 사용했는지 엔지니어에게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엔지니어라고 해서 프로듀서들이 사용하는 모든 이펙터들을 가지고 있진 않기 때문에 때로는 프로듀서가 생각한 사운드를 구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도 하다. 집에서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실질적으로 아날로그 성향의 스튜디오에서 구현하기 힘든 오버 프로세스의 사운드를 레퍼런스로 제시하면서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으면 믹싱을 하는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난감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곡에서 사용한 악기 소스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플러그인 이펙터를 빼더라도 자기의 의도를 확실히 전달할 수 있어야 원하는 사운드에 가까워질 수 있다.

박경선 엔지니어의 믹싱, 마스터링을 거친 5곡

1. MASTA WU ‘야마하(YAMAHA)’ (Feat. Red Roc, Okasian) MV



2. Keith Ape ‘잊지마(It G Ma)’ (feat. JayAllDay, Loota, Okasian & Kohh) MV



3. 서사무엘(Samuel Seo) ‘Sandwich’ (Feat. 정인) MV



4. Beenzino ‘We Are Going To’ [바로가기]

5. jayvito ‘The SUN’ MV [바로가기]


Boost Knob 홈페이지 www.boostknob.com


Writer

GRAYE는 군산 출신의 프로듀서다. 비트 신의 음악을 탐구하는 것으로 시작해, 전시와 무용 등 다방면의 예술 세계를 만나는 것으로 꾸준히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013년 [MON] EP로 인상적인 데뷔를 치렀고 [{notinparis}], [Junk Pixel/Empty Space] 등의 음반을 발표했다. 토키몬스타(TOKiMONSTA), 온라(Onra) 등의 내한 파티에서 오프닝을 맡는 동시에 '소음인가요', 'Crossing Waves' 등의 전시에 참여하고 'Fake Diamond' 무용 공연에 뮤직 수퍼바이저로 참여하는 등 현재 한국 비트 뮤직 신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2014년 GQ KOREA는 그를 ‘6인의 비트메이커’로 선정했고, [Junk Pixel/Empty Space]는 린 엔터테인먼트가 꼽은 2015년 한국 팝 싱글 1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