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버이자 사진가인 댄 페르후번(Daan Verhoeven)의 사진

바닷가에서 즐길 수 있는 레포츠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다이빙은 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더 각별한 운동이다. 스노클링과 바다 수영, 서핑 등 수면에서 할 수 있는 스포츠가 많지만, 다이빙은 미지의 탐험 같은 이미지가 강하다. 전용 슈트와 오리발을 착용하고 거기에 스쿠버 탱크를 등에 진 채 입수하는 사람들. 물속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불과 몇십분, 그나마 더 깊이 내려갈수록 짧아진다. 

이제 해저는 어둠과 미스터리로 가득 찬 공간만은 아니다. 물 아래로 내려가는 장비가 발달하고, 강한 용기와 호기심을 뒷받침하는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사람들이 한계를 돌파한 덕분에 점차 인간은 더 깊은 바닷속으로 발을 딛고 있다. 액티비티 카메라의 보급은 해저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고가의 장비 없이도 자신이 본 아름다움을 나누고 보관할 수 있게 한다. 사실 해저의 모습을 잘 구현한 수족관에만 가더라도, 해저의 이미지가 얼마나 보편화하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보편화한 해저의 이미지는 한편으론 전형화, 신비화된 것이기도 하다. 30m 아래의 바다에서 사람들은 ‘뷰 포인트’를 찾는다. 우리가 보길 원하는 풍경을 찾아가는 것은 육상의 여행과 다르지 않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깊은 바다를 상상하고, 더 예상치 못한 풍경을 기대한다.

월드 챔피언 출신의 프리 다이버 기욤 네리(Guillaume Néry)와 그의 동반자 쥘리 고티에(Julie Gautier)가 2014년 제작한 수중 영상 <Ocean Graivity>. 두 사람 모두 프리 다이버로, 대부분 영상은 실비 고티에가 함께 다이브해 직접 촬영한다. 우주처럼 고요한 바다의 모습을 감상해보자

프리다이빙(Free Diving)은 스쿠버 탱크 없이 잠수하는 다이빙의 한 종류다. 복잡한 장비가 필요한 스쿠버다이빙(Scuba Diving)과 달리, 슈트와 마스크, 오리발로만 다이빙한다. 수면에서 충분히 호흡한 후 숨을 참고 자신이 견딜 수 있는 만큼 깊이 들어갔다가 돌아오는 스포츠다. 그런 만큼 깊이 들어가기 위해 싸워야 할 대상은 자신의 신체다. 뇌가 보내오는 신호를 받아들이면서도 정신적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고요한 해저와 명상적인 다이버. 프리다이빙의 심오하고도 위험한 매력이다. 익스트림 스포츠로 분류되고, 많은 사람이 더 깊은 바다에 닿으려다 세상을 떠난다.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도 매혹적이지만, 무제한 프리다이빙처럼 하강 기구를 타고 얼마나 깊이 들어갈 수 있는지를 가리는 종목에서는 그 비장함에 말 그대로 숨이 막힐 정도다. 바닷속으로 빠져들며 점차 죽음과 가까워지는 다이버들의 얼굴에 떠오른 평안함은 스포츠 그 이상의 숭고함에 대한 감각을 선사한다. 여전히 이 지구는 얼마나 거대한가.

오드리 메스트르와 피핀 페레라스. 메스트르의 사후, 그의 삶과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만들어졌고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 1954~)은 영화를 제작할 것이라고 2003년 공언했지만, 오랫동안 미뤄졌다. 감독 프란시스 로렌스, 배우 제니퍼 로렌스가 참여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영화의 가제는 <The Dive>

노련한 프리다이버들도 삐끗하면 사망에 이르는 스포츠. 무제한 종목에서는 두 여성 다이버가 유명하다. 먼저 현재까지 무제한 종목에서 깨지지 않은 기록을 가진 월드 챔피언 타냐 스트리터(Tanya Streeter, 1973~). 1990년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 지와 촬영한 화보가 무제한 프리다이빙 장르를 세상에 널리 알렸지만, 그보다 그는 거의 무시무시한 다이버다. 2002년 스트리터가 세운 160m의 기록은 남녀 통틀어 최고 기록이었다. 당시 스트리터의 맞수는 오드리 메스트르(Audrey Mestre, 1974~2002). 남성 프리다이버이자 월드 챔피언이었던 쿠바 출신의 피핀 페레라스(Francisco “Pipin” Ferreras, 1962~)의 부인이기도 했다. 프리다이빙으로 의기투합한 부부는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으나 스트리터의 2002년 기록에 초조해진 나머지, 미처 보조 요원과 장비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이빙을 감행한다. 남편을 능가하는 선수였던 메스트르는 비공식 166m 기록의 연습을 거친 뒤 171m 기록에 도전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상승 장치(lift balloon)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사망했다. 당시 타냐 스트리터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 다이버들은 16명, 메스트르의 경우 단 2명에 불과했다. 여러모로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물론 스트리터의 말처럼, “충분히 안전한 환경에서 다이빙한다면 블랙아웃도 목숨을 앗아갈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안전하다고 한들, 인간 신체와 정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프리다이빙이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2015년 지중해에서는 프리다이버 나탈리아 몰차노바(Natalia Molchanova, 1962~2015)가 실종되었다. 세계 기록을 41차례나 세워 프리다이빙계의 ‘여제’로 불렸던 그에게 35m는 어려운 깊이도 아니었다. 그러나 바닷속으로 들어간 그는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영하의 북극해에서 돌고래들과 교감을 나누는 나탈리아 아브셴코

다이버들이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과학자들인 천문학자 중에서 종교를 갖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처럼, 먹먹하도록 광대한 대자연의 품에서 다이빙을 해온 이들이 환경론자가 되지 않기가 오히려 어려울 것. 러시아의 프리다이버 나탈리아 아브셴코(Natalia Avseenko)는 2011년 영하의 북극해에 잠수해 두 마리의 벨루가 돌고래와 10분 40초 동안 잠수해 화제를 모았다. 벨루가는 캐나다와 러시아 등에서 벌어진 과도한 포획으로 개체 수가 크게 감소한 종으로, 아브센코는 환경적 메시지를 타전하면서 돌고래와 직접 교감하는 경험을 했다. 인공적 물질에 닿으면 긴장한다는 돌고래의 특성을 고려해 옷을 모두 벗고 입수했는데, 당시 사진에서 자연적인 아름다움과 평화가 느껴진다.

바하마 제도의 블루홀. 블루홀은 바닷속에 깊게 푹 꺼진 복잡한 지형을 말한다. 빙하기에 카르스트 지형이었던 육지 위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만들어졌다. 전 세계의 다이버들을 끌어모으는 블랙홀이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한국의 프리다이버들 사이에서는 이집트 다합의 블루홀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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