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지우는 기계(<이터널 선샤인>), 1초 타임머신(<수면의 과학>), 칵테일을 제조하는 피아노(<무드 인디고>)처럼, 프랑스 영화감독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의 작품은 달콤한 상상력이 넘쳐난다. 그가 구현한 세계는 독특한 상상력에 감탄할 때 내뱉는 ‘공드리스럽다’는 표현이나, 혁오밴드가 그에 대한 존경을 담아 만든 ‘공드리’ 같은 곡에서 보듯 젊고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우리에겐 영화감독으로 잘 알려졌지만, 그에 앞서 프랑스 인디밴드의 드러머로,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광고 제작자로 활약했던 그. 일상의 모든 예술을 붙들고 그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공드리의 독특한 세계관을 뮤직비디오 몇 편으로 들여다보자.
1. Oui Oui ‘Les Cailloux’(1989)
미쉘 공드리는 음악 애호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전자오르간 가게를 운영했고, 재즈 음악가인 아버지는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을 비롯한 여러 팝 음악을 즐겨 들었다.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드럼 세트를 선물 받은 공드리는 훗날 파리 아트스쿨에 진학하여 Oui Oui라는 밴드를 만든다. 그는 드럼 연주자로 활동하며 총 여섯 편의 Oui Oui 뮤직비디오를 찍었는데, 영상에는 밴드가 출연하는 대신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사람과 사물들이 등장한다. 상큼한 분위기의 곡 ‘Les Cailloux’는 돌을 던지면 건물과 나무가 생긴다는 동심 어린 발상이 돋보인다.
2. Björk ‘Human Behavior’(1993)
사실 Oui Oui는 10년 동안 다수의 앨범을 발표했지만,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해체했다. 하지만 밴드 슈가큐브스를 나와 솔로 데뷔를 준비하던 비요크(Björk)는 Oui Oui의 뮤직비디오에 큰 관심을 보였고, 공드리에게 데뷔곡 ‘Human Behavior’(1993)의 뮤직비디오를 부탁한다. 비요크의 독특한 보이스와 공드리의 초현실주의 동화 같은 영상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고, 이후 두 사람은 ‘Crystalline’(2012)까지 총 여섯 번의 작업을 같이 했다.
3. The White Stripes ‘Hardest Button To Button’(2003)
실험 정신이 강한 공드리는 특히 프레임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기로 유명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Hardest Button To Button’이다. 박자에 맞춰 등장하는 드럼과 기타 앰프는 복사해서 붙여넣기한 마냥 지하철, 계단, 거리로 이어진다. 앞서 밴드의 또 다른 곡 ‘Fell in love with a girl’(2001)에서는 레고로 아트미디어를 선보이기도 했다. 손이 많이 드는 이러한 작업물에는 비주얼이펙트 작업을 도운 동생 올리비에 공드리(Oliver Gondry)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이 영상은 2004년 ‘MTV 비디오뮤직어워드’ 베스트 혁신비디오를 비롯한 6개의 상을 받았다.
4. Paul McCartney ‘Dance Tonight’(2007)
공드리의 발칙한(?) 상상력을 100% 구현한 작품. 한적한 시골집에 온갖 유령들이 등장하여 북새통을 이루는 모습이 폴 매카트니의 어쿠스틱 사운드와 맞물려 으스스한 분위기 대신 흥겨움과 위트를 자아낸다. 배우 나탈리 포트만과 함께 공드리 역시 카메오로 출연했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는지 찾아보자.
5. The Chemical Brothers 'Go'(2015)
영국 일렉트로닉 신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케미컬 브라더스와 협업하여 만든 최신작이다. 봉 하나를 들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여인들의 모습을 보라. 데칼코마니를 이룬 의상과 동작들, 음악에 맞춰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는 칼 군무는 마냥 넋 놓고 보게 한다.
(메인 이미지= HP 광고, 미셸 공드리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