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나는 어떤 음악들을 듣고 있나, 한참 생각했다. 평소에 듣는 음악과 디제잉을 위해 듣는 음악, 샤워할 때 듣는 음악 등 내가 듣는 모든 음악을 적기란 한계가 있기에, 내가 듣는 음악 중 비교적 팝 성향을 띠는 곡 위주로 골라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꼽아보았다. 열일곱 살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어떤 음악들을 들었고 또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1. Zed Bias ‘Neighbourhood’(feat. Nicky Prince & MC Rumpus) (MV)

2000년에 발표한 Zed Bias의 Garage 장르 앤썸(Anthem) 트랙이다. 안타깝게도 난 이 트랙을 발매할 당시 9살 정도였다. 한창 Cakeshop 디제잉 스케쥴이 많을 때 UK Garage와 UK Funky에 빠져 있었는데, 우연히 이 트랙을 유튜브를 통해 들었다. 현재의 Zed Bias를 떠올린다면 굉장히 팝적인 트랙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사실 그런 점이 트랙을 좋아하게 된 이유다. 실제로 Cakeshop에서 자주 플레이하기도 했으며, 12inch 바이널도 소장하고 있다.

 

2. Jamie xx ‘Gosh’ (MV)

2015년 영향력 있는 모든 매체에서 베스트 앨범으로 꼽혔던 Jamie XX의 앨범 <In Colour>의 수록곡이다. 나는 사실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기 전부터 앨범 수록곡 중 이 곡을 가장 좋아했다. 서사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긴 호흡과 Jamie XX 특유의 튀지 않고 묵직한 사운드 텍스쳐는 이 곡에서 가장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엔 M.I.A.와 Justice의 뮤직비디오 제작자이자 영화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Romain Gavras가 디렉팅한 버전의 새로운 ‘Gosh’ 뮤직비디오를 Apple Music에 공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새로운 뮤직비디오는 중국에서, 400여 명의 배우와 실물 크기의 에펠탑 모형을 제작해 CG 없이 촬영했다.

 

3. Caribou ‘Our Love’ (MV)

이제는 모두가 아는 Caribou의 <Our Love>와 동명의 타이틀곡이다. 화려한 구성 없이 “Our Love”란 가사가 Garage 스타일의 4/4박자 리듬과 함께 끊임없이 반복된다. 드럼을 비롯한 여러 악기를 직접 연주하여 만든 이번 앨범은 평소 Daphni라는 이름으로 디제잉을 하기 위한 곡이 아닌 라이브를 의식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추억이 깃든 앨범이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큰 거부감 없이 추천해줄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4. SBTRKT ‘Temporary View’(feat. Sampha)

SBTRKT의 최근 신보를 들었다. 전작 <Wonder Where We Land>를 워낙 좋게 들었던지라 이번 앨범은 딱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Garage 영향이 보이는 투스텝 스타일의 'Temporary View'는 <Wonder Where We Land> 앨범 수록곡 중에서도 싱글 컷으로 가장 먼저 들었던 곡이자 지금까지도 꾸준히 듣고 있는 곡 중 하나다. 이런 곡을 들을 때면 이렇게 일을 하다가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든다. 언제나 함께해온 단짝 Sampha가 함께 하며 좀 더 팝의 성향을 띄게 되었다.

 

5. Tame Impala 'Cause I'm A Man’

얼마 전 Rihanna가 자신의 앨범에 이들의 커버곡을 수록하면서 대중에게 더욱 사랑받게 된 호주 출신 밴드 Tame Impala의 3집 타이틀곡이다. 1980년대 사이키델릭 록에 큰 영향을 받은 리더 Kevin Parker는 리버브와 딜레이를 이용한 넓은 공간감의 신스 사운드를 통해, LSD로 대표되었던 기존 사이키델릭 록 형식에 팝적인 멜로디를 더한 Tame Impala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완성했고, 2015년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찬사를 받았다. 음악이 주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공간감을 컨셉으로 한 뮤직비디오 또한 일품이다.

 

6. Disclosure ‘Boiling’(feat. Sinead Harnett)

얼마 전 지산밸리록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내한하기도 했던 연년생 형제 프로젝트 그룹 Disclosure의 2012년 첫 데뷔 앨범 수록곡이다. 팝 성향이 크게 자리 잡은 Disclosure의 요즘 곡들에 비해 ‘Boiling’은 좀 더 하우스와 개러지 성향이 짙었다. 폭염의 날씨 덕에 요즘 부쩍 이 곡을 자주 듣는다. 드라이브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는 미끄러지는 듯한 신스의 사운드스케이프는 현재 Disclosure의 시그니쳐 사운드가 되었다.

 

7. Nosaj Thing ‘N R 2’

지금은 거물급이 되어버린 Kendrick Lamar와 Kid Cudi, Chance the Rapper 등과의 작업으로 더욱 유명해진 LA 비트 신의 주역 중 한 명인 프로듀서 Nosaj Thing. 최근작 <Fated>를 발매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8분가량의 <No Reality> EP를 갑작스레 공개했다. N R 2는 수록곡 중에서도 Detroit Techno의 영향이 가장 돋보이게 드러나는 트랙이며, Nosaj Thing 특유의 신비스러운 신스 텍스처는 4/4박자 스타일의 비트에도 잘 녹아 들어있다.

 

8. Mark Pritchard ‘Beautiful People’(feat. Thom Yorke)

지난 5월 와프레코즈를 통해 발매한 Mark Pritchard의 <Under The Sun> 수록곡이다. 화려한 곡 구성을 자랑하는 요즘 음악들과는 달리, 많지 않은 악기 구성에 존재감까지 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마침 음악을 만들며 지쳐있던 귀의 피로함을 날려주는 트랙이었다. 다른 수록곡인 ‘Sad Alron’ 과 ‘Under The Sun’을 같이 들으며 그의 이번 프로덕션을 충분히 느껴보는 것을 추천한다.

 

9. Lone ‘Jaded’

가끔 음악을 듣다가 보컬은 언제 나오지? 하며 기다리게 되는 때가 있다. 안타깝게도 LONE이 보컬과 협업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연주곡 같은 구성의 곡들은 언제나 인스트루멘탈로서의 비중이 가장 크다. Cakeshop을 통해 두 번이나 내한했던 그는 잇따른 투어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이 같은 곡들을 꾸준히 발매하는 편이다. 꿈을 꾸는 듯한 사운드가 시그니쳐라 할 수 있는 그의 음악은 어떤 장면이나 상황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게 한다. 2014년에 발매한 이 곡은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에 들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10. James Blake ‘I Need A Forest Fire’(feat. Bon Iver)

8월 6일 한강 난지공원 젊음의 광장에서 열린 서울인기페스티벌에서 디제잉을 했다. 내가 플레이하는 시간대는 맨 마지막인 새벽 3시였고, 그 시간에 큰 버드나무들이 자리 잡은 그곳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이 음악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이 음악을 듣고서야 서서히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Writer

GRAYE는 군산 출신의 프로듀서다. 비트 신의 음악을 탐구하는 것으로 시작해, 전시와 무용 등 다방면의 예술 세계를 만나는 것으로 꾸준히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013년 [MON] EP로 인상적인 데뷔를 치렀고 [{notinparis}], [Junk Pixel/Empty Space] 등의 음반을 발표했다. 토키몬스타(TOKiMONSTA), 온라(Onra) 등의 내한 파티에서 오프닝을 맡는 동시에 '소음인가요', 'Crossing Waves' 등의 전시에 참여하고 'Fake Diamond' 무용 공연에 뮤직 수퍼바이저로 참여하는 등 현재 한국 비트 뮤직 신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2014년 GQ KOREA는 그를 ‘6인의 비트메이커’로 선정했고, [Junk Pixel/Empty Space]는 린 엔터테인먼트가 꼽은 2015년 한국 팝 싱글 1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