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시리즈 <성난 사람들>(Beef)이 프라임타임 에미상 3관왕을 차지하면서, 쉽게 우울해지고 화를 내는 현대인에 관한 이야기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이 드라마는 운전 중 벌어진 사소한 시비가 연쇄적인 복수로 이어져 논란이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과정을 담고 있으며, 넷플릭스에서 예상 외의 인기를 끌었다. 공포와 불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점은 영화감독들이 언제나 주목하는 사실 중 하나다. 이웃과의 사소한 다툼이 점점 확대되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발전하게 되는 영화를 모아 보았다. 이 영화들이 공통으로 강조하고 있는 포인트는 다름 아닌 ‘이웃’(neighborhood)이다.

 

<퍼시픽 하이츠>(1990)

퍼시픽 하이츠(Pacific Heights)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금문교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있는 부유한 동네다. 영화는 이곳에 빅토리아 양식의 호화주택을 어렵게 구입한 부부와 이를 이용한 사기꾼 세입자 간의 치열한 공방을 다룬다. 개봉 당시 ‘여피’(Yuppie)들의 공포 영화 혹은 퇴거 스릴러(Eviction thriller)라는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미국으로 진출한 영국 거장 존 슐레진저(John Schlesinger) 감독 작품으로, <배트맨> 영화 시리즈의 배트맨 역으로 부상한 마이클 키튼(Michael Keaton)의 냉혈한 악인 연기는 볼 만하다. 감정이 앞서 상대에게 역이용당하는 남편(매튜 모딘)과는 달리, 차분하게 상대를 응징하는 아내 역을 멜라니 그리피스가 연기하였다. 로튼토마토 52%로 만족스럽지 않은 평가를 받았으나, 박스오피스에서 대작 <좋은 친구들>(Goodfellas)를 밀어내면서 5,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영화 <퍼시픽 하이츠>(1990) 예고편

 

<레이크뷰 테라스>(2008)

레이크뷰 테라스(Lakeview Terrace)는 로스앤젤레스 주변에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동네 이름으로, 1991년 백인 경찰에 의한 ‘로드니’ 킹 구타 사건으로 오명을 얻은 지역이다. 이 곳을 영화의 제목으로 선정한 만큼, 영화 내용은 인종 문제와 무관하지는 않다. 새로 이사를 온 백인 남자(패트릭 윌슨)와 흑인 여자(케리 워싱턴) 부부를 탐탁치 않게 여긴 이웃에 사는 경찰(사무엘 잭슨) 간 사이가 점점 틀어지면서 이야기가 파국으로 치닫는다. 편견에 빠진 흑인 경찰은 이웃집 남자가 흑인 여자와 결혼한 점이나 백인이 힙합 음악을 듣는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다. 2002년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비극으로 끝나는 영화와는 다르게 이웃 경찰이 해고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로튼토마토 44%의 평점으로 좋지 않았으나, 극장에서 선방하여 4,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영화 <레이크뷰 테라스>(2008) 예고편

 

<캣파이트>(2016)

캣파이트(Catfight)라는 제목이 의미하듯 여자들 간의 싸움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한 칵테일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 동창 간 자존심에 흠집을 내는 사소한 감정 다툼이 치고 받는 심각한 물리적 싸움으로 번지는 내용을 담았다.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인 산드라 오(Sandra Oh)와 앤 헤이시(Anne Heche)가 주인공을 맡았다. 산드라 오는 두 번의 골든글러브상을, 앤 헤이시는 토니상과 에미상에 노미네이트된 뛰어난 연기력의 배우들로, 서로 주먹질과 발길질을 주고받는 무자비한 연기를 무리 없이 연출하였다. 어떤 이는 우스개소리로 영화 <파이트 클럽>(1999)의 여성 버전으로 부르기도 했다. 2016년에 토론토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후 로튼토마토 74%의 호평을 받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되었다.

영화 <캣파이트>(2016)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