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록 역사의 여성 로커 리스트에는 제퍼슨 스타십의 그레이스 슬릭(Grace Slick)이나 조안 제트, 수지 쿼트로 등 여러 이름이 등장한다. 이 중 ‘하트’(Heart)의 앤과 낸시 윌슨 자매는 밴드의 시대에 전면에 등장한 사상 최초의 여성들이다. 두 사람은 앞서 활동 중이던 밴드 하트에 뒤늦게 합류해 보컬과 기타를 맡으며 전면에 나섰고, 대부분 곡을 작곡, 작사하면서 밴드의 음악적 방향성을 결정하는 등 밴드 자체가 되었다. 1970년대 히피의 복장으로 포크와 하드록을 결합하여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고, 1980년대에는 팝을 수용하여 록 발라드로 음악 차트 상위권을 점령했다. 이후 라이브 중심의 밴드로 명맥을 이어온 자매는 2012년, 케네디센터의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명예훈장 축하공연 무대에 올랐다. 두 사람은 존 본햄의 아들 제이슨 본햄의 드럼 연주와 함께 명곡 중의 명곡 ‘Stairway to Heaven’을 연주해 감격적인 장면을 끌어냈다. 이 영상은 현재 유튜브에서 2억 회를 넘어선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Heart ‘Stairway to Heaven’(Kennedy Center Honors, 2012)

 

로맨스로 시작된 밴드 ‘하트’

하트에서의 윌슨 자매 스토리는 로맨스에서 시작된다. 미국 시애틀 출신의 윌슨 자매와 캐나다 밴쿠버 출신의 피셔 형제 간의 이야기다. 오디션을 통해 하트에 합류한 앤 윌슨은 밴드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마이클 피셔와, 뒤이어 합류한 낸시 윌슨은 원년 멤버인 기타리스트 로저 피셔와 사랑이 싹트면서 이들 사이에 로맨스가 만개했다. 낸시와 로저는 리드 기타와 리듬 기타를 번갈아 맡으면서 밴드의 인기를 순식간에 견인했지만, 로저에게 다른 여자가 생기면서 이들 사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낸시는 드럼을 맡았던 마이클 드로지어(Michael Derosier)와 데이트를 했고, 밴드 멤버 간의 긴장이 극대화된 끝에 공연 도중 로저가 악기를 부수는 사태로 이어졌다. 멤버들의 논의 끝에 로저를 쫓아냈고, 이제 윌슨 자매는 원년 멤버들이 모두 떠난 밴드를 점유한 채 변화된 음악을 들려주며 1980년대에 또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전성기 시절 하트의 인기곡 ‘Barracuda’(1977)

 

앤 윌슨의 건강 이슈

1970년대의 앤 윌슨을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그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랄 수도 있다. 그는 역대 헤비메탈 보컬리스트 78위에 오를 정도로 높은 성량의 파워 보컬을 자랑했지만 어릴 때는 말더듬이로 고생했으며, 과체중으로 인해 놀림감이 되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20대의 젊은 시절에는 철저한 금식을 이행하고 다이어트 약을 복용하면서 날씬한 체형을 유지하였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 다시 늘어나는 체중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는 늘어난 체중 문제를 과도하게 염려하게 되면서 술과 약물 의존하게 되었다. 2009년에는 지나친 음주에 따른 간 손상과 공황발작 증상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그는 자서전 <Kicking & Dreaming>(2013)에 평생 체중과 약물과의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2009년부터 완전히 끊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하트의 초기 대표곡 ‘Crazy on You’

 

자매의 불화와 재결합

초창기 레드 제플린의 커버곡을 연주했던 지역 밴드 하트는 윌슨 자매를 차례로 영입하면서 독창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갖추게 되었다. 밴드는 시애틀과 밴쿠버를 벗어나 이제까지 3,500만 장의 음반을 판매한 슈퍼밴드가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나 사생활에 따라 좌지우지된, 실질적으로 자매 듀오나 다름없었다.

낸시는 1986년 영화감독 카메론 크로우(Cameron Crowe)와 결혼했는데, 남편의 영화 <제리 맥과이어>(1997), <바닐라 스카이>(2001) 등에 영화음악을 제공하면서 한동안 밴드 활동을 그만 두었다. 2016년에는 낸시의 10대 쌍둥이 아들이 앤의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면서 자매 사이는 벌어져 한 동안 밴드의 활동은 무기한 중단되었다. 이 기간에 낸시는 다른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고 앤은 솔로 활동을 이어 나갔다. 2019년에 두 사람은 다시 관계를 회복했고 하트의 공연은 계속되었다.

낸시 윌슨이 보컬을 맡아 빌보드 1위에 오른 ‘These Dreams’(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