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미니시리즈 <향수>의 한 장면

데이비드 핀처의 최신작 <킬러>(2023)에서 히트맨은 프랑스 파리에서 독일 관광객처럼 옷차림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닌다. 아무도 그에게 접근하거나 말을 걸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독일 사람이 주는 인상은 대체로 강직하고 고지식하다고 알려졌으며, 그 때문인지 독일에서 만든 영화나 드라마는 재미없다는 편견이 만연했다. 그러다 넷플릭스가 제작에 나선 최초의 오리지널 독일 미스터리 드라마 <다크>(2017~2020)가 인기를 누리게 되면서, 2018년 이후에는 독일어로 제작된 오리지널 콘텐트가 제법 늘어나고 있다. 인접 지역인 노르딕 누아르(Nordic Noir)의 영향을 받아, 형사와 범법자가 쫓고 쫓기는 스릴러 장르에서 호평을 받는 드라마가 호평을 받고 있다. 독일에서 최근 제작된 범죄 스릴러 드라마 중 인기 리에 방영된 다섯 편을 선정하였다.

 

<Babylon Berlin>(2017~2023)

역대 최고의 독일 누아르 작품으로 평가받은 범죄 드라마로, 폴커 쿠처(Volker Kutscher)의 데뷔 소설을 바탕으로 하였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게레온 라트 형사는 고향 쾰른에서 베를린으로 파견되어, 193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말년의 혼란한 독일 사회상을 배경으로 당시 정치 사회의 부패 고리, 마약 거래, 무기 밀매, 포르노 범죄 등 복합적인 사건을 풀어 나간다. 당시 시대상을 재현하여 독일의 스카이 채널에서 인기리에 시즌 4(2023년)까지 방영하였으며, 넷플릭스에서 방영권을 구매하여 일부 국가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방영 지역에서 제외되어 있다. 로튼토마토 100%의 평점을 과시하고 2018년 독일 텔레비전 어워즈에서 다관왕이 되었으며, 서울에서 열린 국제 드라마 어워즈에서 대상을 차지한바 있다.

드라마 <Babylon Berlin> 시즌 1(2017) 예고편

 

<Dogs of Berlin>(베를린의 개들, 2018)

미스터리 드라마 <다크>(2017)에 이어 넷플릭스가 일주일 만에 선보인 두 번째 독일 시리즈물로, 서로 이질적이고 개인적 문제를 안고 있는 두 사람의 경찰을 중심으로 살인 사건을 풀어간다. 가장 쿨(Cool)한 도시, 대안문화의 성지, 세기말적인 광란이 가득한 도시라 불리는 베를린의 언더월드 세계를 배경으로 하며, 제목의 의미하듯 개인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계층 구조를 역설한다. 독일에서 최대 이민 사회를 형성한 튀르키예 민족 간의 문화 충돌 또한 드라마의 중요한 요소다. 세 시즌으로 확장된 SF <다크>보다 낮은 로튼토마토 81%의 성적에 머물러 첫 시즌의 열 편으로 마무리하였다. 네오-나찌스(Neo-Nazis), 광란의 레이브 뮤직 클럽, 광적인 축구 팬과 승부 조작, 튀르키예 마약 마피아, 프렌츨라우어 베르크(Prenzlauer Berg) 지역 등 베를린의 이면을 엿볼 수 있다.

드라마 <Dogs of Berlin>(2018) 예고편

 

<Parfum>(향수, 2018)

18세기 배경의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의 동명 소설(1985)과 영화 <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2006)를 현대로 옮겨와 리메이크한 6부작 미니시리즈다. 라인강 하류의 저택에서 체취의 분비샘을 절개당한 여성 가수 시신이 발견되는데, 이 사건 수사 팀의 여성 형사 ‘나디아 지몬’을 중심으로 현대판 ‘그르누이’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피살자의 친구 다섯 명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이야기가 진행되어 전반부에 따라잡기에 애를 먹을 수 있으나, 영화 <Perfume>을 미리 보면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로튼토마토 70%로 영화 대비 상대적으로 평점이 좋지는 않았지만, 에로틱 스릴러 장르로 나름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성에 대한 폭력 행사나 비정상적인 대인 관계 등 불편한 장면이 종종 등장하며 남성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영화라는 비판이 일기도 하였다.

미니시리즈 <Parfum> 예고편

 

<Dear Child>(사랑하는 아이, 2023)

여성 작가 로미 하우스만(Romy Hausmann)의 데뷔작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원작 <Liebes Kind>(2019)을 여섯 편의 미니시리즈로 제작하였다. 2023년 9월에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올라와 드라마 차트 톱에 올랐던 화제작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납치되어 수년 동안 감금된 여인 ‘레나’가 납치범을 스노우 글로브로 내리치고 함께 감금되었던 12세 소녀 ‘한나’와 외딴 숲 속의 창살 없는 감옥을 탈출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며, 진범과 사건의 진상이 마지막까지 밝혀지지 않는 등 긴장감이 계속 유지된다. 또한 형사, 피해자, 피해자 가족 등 등장인물 대부분이 범죄의 피해자들이며 이야기 구성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관점에서 다루어져, 우울하고 황폐한 분위기의 비극적인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미니시리즈 <Dear Child> 예고편

 

<Sleeping Dog>(2023)

과거에 종결되었던 살인 사건 관계자가 교도소에서 사망하자 노숙 생활에서 돌아와 숨겨진 진실을 다시 파헤치는 전직 형사 ‘마이크’와 신참 검사 ‘율레’ 이야기다. 이스라엘 드라마 <The Exchange Principle>(2016)을 바탕으로 독일에서 리메이크하였다. 모두 여섯 편으로 제작되어 2023년 6월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올라왔다. 화제작 <그리고 베를린에서>(2020) 제작진이 만든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진부한 클리셰로 구성된 이야기 전개가 이어져 로튼토마토 67%의 평범한 성적에 그쳤다. 배두나가 출연했던 할리우드 SF 드라마 <센스 8>(2015~2017)에서 독일인 초능력자 ‘볼프강’으로 출연했던 막스 리에멜트(Max Riemelt)가 주인공 ‘마이크’ 역을 맡았다.

드라마 <Sleeping Dog>(2023)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