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소재의 영화로 유명한 그리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Yorgos Lanthimos)가 새 영화 <가여운 것들>(Poor Things)로 찾아온다. 그는 만든 <롭스터>(2015), <킬링 디어>(2017) 등은 국제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문제작들이었지만 대중성과 다소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최근 <더 페이버릿: 왕의 여자>(2018)는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거머쥐어 1억 달러에 근접하는 박스오피스 성적을 거두면서 상업성을 겸비한 감독으로 거듭났다. 이제 엠마 스톤(Emma Stone)을 연이어 캐스팅한 신작 <가여운 것들>은 로튼토마토 95%, 메타크리틱 93점의 극찬을 받으면서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기대작으로, 드디어 올해 12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의 어떤 점을 주목해야 하는지 알아보았다.

영화 <Poor Things>(2023) 예고편

 

앨러스데어 그레이(Alasdair Gray) 원작

소설 <Poor Things>(1992)를 읽고 영화로 제작하고 싶었던 란티모스 감독이 2009년 스코틀랜드로 작가 앨러스데어 그레이(Alasdair Gray)를 찾아가면서 프로젝트가 시동을 걸었다. 작가는 30여 년 동안 미술교사, 벽화 화가, 방송대본 작가 등 다양한 예술인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집필한 장편 <라나크>(1981)을 출간하여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그 후에도 소설, 산문, 희곡 등 계속 저서를 출간했다. 2001년 이후에는 글라스고 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일하면서 스코틀랜드 문학과 예술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정을 받았다. 그가 1992년에 출간한 소설 <Poor Things>은 글라스고의 역사적 리얼리즘과 허무맹랑한 판타지를 엮은 걸작으로, 휘트브래드상과 가디언지의 소설상(Guardian Fiction Prize)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영화가 제작에 들어가기 전인 2019년 8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작가이자 예술가였던 앨러스데어 그레이를 소개한 <Magnificent Citizen> 영상

 

스팀펑크 블랙 코미디의 부활

이 영화의 배경은 19세기의 빅토리아 시대, 증기기관의 발달에 의한 산업혁명의 결과로 과학이 발전하고 상상에서만 존재하던 발명품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과학소설 작가 K. W. Jeter는 미래를 묘사한 ‘사이버펑크’(Cyberpunk)에서 사이버 대신 증기기관의 증기를 합쳐서 ‘스팀펑크’(Steampunk)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1980년대 SF의 하위장르로 등장한 스팀펑크가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등 전 영역에서 인기 밈(Meme)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가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를 잡았다. 영화 <가여운 것들>의 티저 영상에서도 죽은 사람을 고압전류로 되살리거나 케이블카처럼 공중에 떠다니는 자동차나 바다를 항해하는 초대형 증기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은 완전하지 않아 되살아난 인간은 어린 아이의 불완전한 행동을 하게 되는 블랙 코미디가 된다.

영화 <Poor Things> 공식 티저

 

컬트 클래식 영화를 향한 오마주

감독은 영화 <Poor Things>를 제작하면서 다수의 컬트 클래식 영화에 대한 예우를 담아 그들의 톤과 느낌을 참고하였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감독의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E la nave va, 1983),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프랑스 영화 <세브린느>(Belle de jour, 1967) 그리고 멜 브룩스 감독의 <Young Frankenstein>(1974) 세 작품을 직접 거론하였다. 또한 미친 의사가 죽은 연인을 살려낸다는 유사한 설정의 고전 영화 <죽지 않는 뇌>(The Brain That Wouldn’t Die, 1962)에서 연인의 떼어낸 머리 부분의 설정을 참고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컬트 클래식 영화 <The Brain That Wouldn’t Die>(1962, Colored)